나는 책에 단단히 빠졌어
나는 남들 앞에서도 책을 읽어
나는 무슨 물건이든 책갈피로 써
나는 허구와 현실을 혼동해
나는 도서관 연체료 미납자로 수배 중이야
나는 아이들 책을 훔쳐 읽곤 해
나는 살짝 신비스러운 리얼리즘이 좋아
나는 오래된 책 냄새가 좋아
나는 글 안 써지는 병의 특효약을 찾아 헤매고 있어
나는 문장부호에 신경을 많이 써
나는 고전을 읽고 말 거야(언젠가는)
나는 ‘국민 소설’이 될 작품을 쓰고 있어
나는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녀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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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그랜트 스나이더
낮에는 치과 의사, 밤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뉴욕 타임스》에 만화를 연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만화는 《뉴요커》, 《캔자스 시티 스타》 등에도 소개되었으며, 2013년 카툰 어워드에서 ‘최고의 미국 만화’에 선정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헤맨 나날을 촘촘히 그려 넣은 책 《생각하기의 기술》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재치 있는 글과 그림으로 전 세계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그가 이번에는 읽고, 쓰고, 그리면서 겪은 이야기를 《책 좀 빌려줄래?》에 녹여냈다. 시적인 문장과 위트 넘치는 그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책과 보낸 우리의 삶도 함께 환하게 빛나는 것만 같다.
역자 : 홍한결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책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쉽게 읽히고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옮긴 책으로 《인듀어런스》,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인간의 흑역사》 들이 있다.
읽고 쓴다는 것
책은 크게 두 가지 결로 나뉜다. 책에 푹 빠진 탐독가로서의 이야기와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절실히 느끼는 작가로서의 이야기다.
전반부 탐독가로서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늘 서점 장바구니에 수십 권의 책이 담겨 있고,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숙제처럼 쌓여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슬쩍 빠져나와 혼자 책을 읽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의 모습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온 우리들, 그래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나답다 느끼는 우리들의 모습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작가는 그 짧은 순간을 몇 컷의 그림으로 응축해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우정 어린 공감을 느낀다.
후반부 작가로서의 이야기는 읽고 쓰며 보낸 낮과 밤들에 대한 이야기다. 빈 노트나 컴퓨터에 무엇이든 끼적여본 사람은 창작의 길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안다. 책이 좋아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애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그 길은 때론 진흙탕이고 때론 블랙홀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창작자로서의 비애와 희열이 곳곳에서 빛나는 이 책에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책, 왜 읽어?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 OECD 최하위. 실질문맹율 OECD 최하위. 책에 몰두하고 있으면 젠체한다거나 괴짜라고 취급하는 사회.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텍스트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와 깊이 교감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사람들. 묵묵하고 조용해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커다란 불을 지피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한 책이다. 특히 시와 소설이 ‘쓸모’의 영역에서 한참 떨어져 나간 요즘,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보여준다. 물론 아주 재치 있는 방식으로.
이런 식이다. <세 줄기 빛(The Three Rays)>이라는 에피소드에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 화자가 글의 신을 찾는다. 그러자 하늘에서 빛(Ray)이 쏟아지며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 브래드버리가 내려온다. 그리고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하고 사라진다. 가령 레이먼드 카버는 글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는 질문에 ‘간결함’이라고 말하고,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냐는 질문에 ‘남자, 트럭, 강가’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빙고>라는 꼭지도 있다. 인간 VS 신(고전), 인간 VS 신의 부재(모더니즘), 인간 VS 작가(포스트모더니즘)이 실린 페이지는 SNS에서 수없이 패러디되어 책보다 더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문학, 장르 문학 독자들이 몇몇 에피소드를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이 책은 과거의 책들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전(Canon)이라는 죽은 백인 할아버지들만의 대포(Cannon)를 해체해 나만의 새롭고 더 강력한 대포를 만들어 다양한 인종과 성별에게까지 힘이 미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수많은 패러디와 작가와 책들의 향연이며, 결국 그 책들을 읽어온 우리들의 이야기다.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위트 있게, 때로는 감동적이다. 책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책을 더 좋아하고 싶은가? 책에 대한 이 짓궂은 세레나데에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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