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009
파리 021
슬링샷 037
랜디 트래비스 057
매니 페디 073
치-카-치! 093
우주가 이토록 잔인할 줄이야 105
세상의 가장자리 117
스쿨버스 기사 133
당신은 너무 창피해 145
으으으어어얼끄 157
주유소 165
저멀리 있는 것 181
지렁이 잡기 197
감사의 말 218
저자소개
저자 : 수반캄 탐마봉사
라오스계 캐나다 시인이자 소설가. 1978년 태국 농카이에 있는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한 살에 부모가 정부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자랐다. 2003년에 출간한 첫 시집 『작은 다툼Small Argument 』으로 리릿 어워드를, 2013년에 출간한 시집 『빛Light』으로 트릴리움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단편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으로 2015년 영연방 단편소설상 후보, 단편 「매니 페디」와 「파리」로 2016년 저니상 후보에 올랐으며, 단편 「슬링샷」으로 2019년 오헨리상을 받았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은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2020년 캐나다 최고 영예의 문학상인 스코샤뱅크 길러상을 받았다. 첫 출간작부터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인 탐마봉사는 소외된 이들의 서글프지만 꿋꿋한 삶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역자 : 이윤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난 사랑이란 걸 믿어』 『안에 있는 모든 것』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무도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슬픈 이야기일수록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좌절하는 약자로만 그려지던 소수자들의 욕망, 사랑, 승리를 그리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의 중심에는 소수자들이 있다. 영어를 읽지 못하는 난민 가정의 어린이(「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여성 노인(「슬링샷」), 실패한 복서(「매니 페디」), 모국어를 고집하며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민자(「우주가 이토록 잔인할 줄이야」 「세상의 가장자리」),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부모(「지렁이 잡기」) 등 소수자로서 사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이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여성’ ‘라오스인’ ‘직업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는 슬픔만이 가득할까? 작가는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의 14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래도 난 꿈꾸고 싶어. 기분이 좋거든. 오랫동안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어. 제길, 내게 기회가 없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그게 내가 헤쳐나가는 힘이야. 매시간, 매일을 헤쳐나가게 해. 나 같은 남자가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줄 필요 없어. 조금이라도 꿈꿀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91p, 「매니 페디」)
탐마봉사 소설의 주인공들은 욕망과 꿈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을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리를 거머쥔다. 「매니 페디」의 레이먼드는 복서로서 실패하고 누나가 운영하는 네일 살롱에서 일한다. 누나는 자신에게 실패한 인생이라며 꿈을 꾸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슬링샷」의 ‘나’는 일흔의 여성이다. 이웃에 사는 젊은 남자 리처드와 잠자리를 가지는 사이가 되지만, 리처드는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나’의 존재를 지운다. 손녀 역시 할머니는 노인일 뿐이라며 질책한다. 하지만 ‘나’는 주눅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리처드를 ‘나’의 삶에서 지우고, 홀로 당당히 존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의 조이는 부모님이 영어를 몰라 학교에서 책을 읽지 못하고, 혼자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부모를 원망하는 대신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갖는다.
소수자에게는 슬픔과 좌절이라는 견고한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자기를 부정당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는 사람들에게 패배주의가 만연할 것이라는 추측은 다수의 오만이다. 작가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서사를 통해 우리의 편견을 고발한다.
자기부정, 저항, 도피, 순응……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에는 인물들의 사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들은 이민자, 소수자, 여성, 어머니 등 단순히 한 단어로 뭉뚱그릴 수 없는, 개별적이고 다층적인 존재다. 각자의 상황, 성격, 가치관이 다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제각각으로 그려진다.
「파리」의 레드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동경한다. 이웃집에서 팔려고 내놓은 트럭, 상사 토미의 아내의 오똑한 코, 공장의 사무실 자리…… 레드는 라오스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한다. 「저멀리 있는 것」의 ‘나’는 어린 시절 친구 케이티와 같은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현실의 삶에 안주해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산다. 반면 「우주가 이토록 잔인할 줄이야」의 미스터 봉과 「세상의 가장자리」의 엄마는 라오스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 「랜디 트래비스」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허와 우울 때문에 죽음에 이른 아내와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은 남편의 모습이 자녀의 시선을 통해 그려진다.
라오인은 청첩장에 라오어를 쓰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어. 그리고 청첩장엔 진짜 자기 이름을 넣어야지. 그래, 이름이 길긴 해. 그래도 자기 이름을 넣어야 해. 진짜 이름은 사봉나바타카드인데 왜 수라고 적어? (본문 113p, 「우주가 이토록 잔인할 줄이야」)
“아이가 라오어를 알아들어요?” 엄마는 한 번도 라오스에 가보지 않은 내게 고국의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말했다. “이런 안 돼요, 안 돼! 아이고! 아이는 영어로 말을 떼는 게 좋죠. 학교에서 어떻게 어울리겠어요?!” 그 여자가 주방을 떠나자 엄마와 나는 그녀를 비웃었다. 그녀는 모두와 잘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본문 122p, 「세상의 가장자리」)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의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지위에서 냉혹한 현실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공동체의 경험이자 개인의 경험이다. 좌절하는 지점, 헤쳐나가는 방식, 경험 속에 형성되는 가치관은 각기 다르다. 작가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소수자들이 약자라는 지위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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