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확신에 찬 투쟁과 경험에서 우러난 사유의 산물
열일곱 살 르 코르뷔지에의 대범함은 기와를 얹은 경사 지붕, 대칭적 구도의 외관,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문양을 선보이며 그의 첫작품 팔레 저택(Villa Fallet, 1905)을 탄생시켰다. 어린 시절, 나무, 돌, 벽돌과 같은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용도의 건물을 설계했는데, 이는 건설에 필요한 물질을 직접 경험하며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건축을 창조하고 이를 근대 건축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다.
서른두 살의 르 코르뷔지에는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 열정이 가득했고, 성실했고, 대담했고, 또한 용기 있었으며,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1920년에 창간한 전위적 성격의 잡지 『에스프리 누보(Esprit Nouveau)』는 이러한 충만한 열정의 결실이었다. 또한 이 잡지에 게재한 논문들을 모아 근대건축에 관한 건축가의 이론적 실천적 입장을 담은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1923)는 세상에 대한 분명한 선언임과 동시에 확고한 통찰이었다. 이 책은 그가 산업혁명의 여파에 따라 사회의 총체적 변화가 불가피했던 이십세기 초의 시대적 상황을 기계주의로 규정하고 서양 역사와 첨단 기술의 분석을 통해 미래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처음으로 집을 지은 이후, 모험의 연속이었던 그의 작업은 난관에 부딪혀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더러는 성공에 이르렀다. 그에 맞춰 찬사와 비판이 뒤따랐다. 흔히 르 코르뷔지에의 생애를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전기란 일차세계대전 이후 사부아 저택으로 대표되는 근대건축을 완성했던 시기로, 백색 상자의 기하학적 추상성을 지닌 건축적 형태로 대변되며, 후기란 이차세계대전 이후 위니테 다비타시옹, 찬디가르 행정 수도 등을 실현했던 시기로, 노출 콘크리트의 자유로운 표현성을 지닌 건축적 형태의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본문 어디에도 형태적 변화를 암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는 없다. 굳이 변화를 말한다면, 사회적 감수성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이것은 바로 인간에 관한 인식의 변화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말하자면 건축도 그에게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인식적 조건들을 탐색하고 숙고하는 인내의 자기훈련과도 같은 그의 노력이 ‘열린 손’처럼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애의 수준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일흔일곱이 되었을 때 그는 “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라는 문장을 남긴다. ‘사유’를 말할 때, 그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는 데에 머물지 않고 “항구적이며 영원한”, 말하자면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린다. 생명력의 근거는, 사유가 철학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고부동의 상징이듯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정신과 진실을 보장한다는 사실에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유하는 인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건축의 생명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그에게 모호하고 애매한 대상이 아니라 명확하고 분명한 대상이고, 불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확실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후학들에게 일시적으로 떠도는 유행이나 명성을 좇을 게 아니라 관찰하는 힘을 기르고 끊임없이 탐구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책은 “확신에 찬 투쟁의 산물이며, 경험에서 우러난 사유의 산물”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