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길상효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중편 소설 「소년 시절」로 2018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깊은 밤 필통 안에서』로 2021 비룡소 문학상을, 『동갑』으로 2022 웅진주니어 그림책상을 수 상했다. 글을 쓴 책으로 『점동아, 어디 가니』, 『최고 빵집 아저씨는 치마를 입어요』, 『그 말 내가 전할게』 등이, 옮긴 책으로 『산딸기 크림봉봉』, 『살아남은 여름 1854』 등이 있다.
그림 : 심보영
밤이 깊어질 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연필들이 사각사각 말을 한다.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스케치북에 그려 보고 싶지만 가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쓰고 그린 책으로 『대단한 수염』, 『앗, 내 모자』, 『식당 바캉스』, 『털북숭이 형』 등이 있으며, 『이상한 우주의 앨리스』, 『쿨쿨』, 『빨간 여우의 북극 바캉스』에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 서평
◆ 낯선 연필, 넌 누구냐?! - 오늘도 필통 안은 새로운 사건으로 들썩들썩
‘갖가지 상황 속에서 연필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하는 상상으로 쓰인 『깊은 밤 필통 안에서』에 이어, 『까만 연필의 정체』 역시 ‘정말 이런 일도 있겠구나!’ 싶은 온갖 상황을 다룬 세 가지 이야기와 이때 연필들이 가질 만한 생각, 느낄 만한 기분에 대한 다채로운 상상으로 가득하다. 담이의 필통 속 연필들은 여전히 순진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졌고, 또 솔직하다.
담이의 미술 가방 속에만 살던 까만 연필이 며칠간 필통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낯선 연필에 대한 경계심과 호기심이 드러나 웃음 짓게 한다.
“너 누군데 담이 필통에 들어왔어?”
그러자 까만 연필이 툭 내뱉었어요.
“담이 연필.”
연필들은 기가 막혔어요.
……(중략)
“자기가 담이 연필이라고 할 때 나 약간 소름 돋았어.”
“나도, 나도.”
_「까만 연필의 정체」 중에서
하지만 연필들은 이내 특유의 순진무구함과 다정함으로 까만 연필을 맞아들이고, 자신들을 대신해 고생하는 까만 연필을 격려하고 걱정해 준다.
친구를 걱정하는 연필들의 마음은 당근 연필이 옷장 밑으로 굴러 들어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때도 잘 드러난다.
“다른 데도 아니고 집 안에서 무슨 큰일이야 있겠어?”
“맞아. 담이 엄마가 빌려 갔을 수도 있고.”
“좀 더 기다려 보자.”
연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안심시켰어요. 하지만 그건 말뿐이었어요. 연필들은 밤늦도록 당근 연필을 기다리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_「깊은 밤 옷장 밑에서」 중에서
닳고 닳아 점점 짧아져 더는 글씨를 쓰기 힘들어진 연필의 쓸쓸한 심정을 담은 이야기도 있다. 마치 황혼에 이른 노인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도 연필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특별하고 기발한 상황이 연출되어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몽당연필이 되어 필통을 떠난 친구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장면은, 이들의 그리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과 어우러져 먹먹해지기까지 한다.
연필들은 딸기 연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필통이 열릴 때마다 목을 빼고 내다봤어요. 밤새 딸기 연필이 살그머니 돌아와 있지는 않을까 해서 자다가 한 번씩 눈을 떠 보곤 했어요. 넓지도 않은 필통이 텅 빈 것만 같았어요.
_「연필의 한살이」 중에서
◆ 담이의 연필이라서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이렇게 나름의 기분과 개성을 가진 연필들지만, 어쨌든 모두 담이의 필통 속에 사는 연필들. 이들의 관심은 온통 담이를 향해 있다. 밤이 되면, 그날 일기를 쓰고 온 연필이 다른 연필들에게 담이의 소식을 전하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다들 일어나 봐!”
늦게까지 일기를 쓰고 돌아온 초록 연필이 호들갑을 떨며 연필들을 깨웠어요.
“담이가 동시 숙제로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대!”
……(중략)
“눈에 보일 것처럼 풍경을 잘 표현했대. 먼 곳은 아스라하게, 가까운 곳은 또렷하게 느껴져서 좋았대, 선생님이.”
초록 연필이 마치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들뜬 얼굴로 말했어요.
_「까만 연필의 정체」 중에서
두 번째 이야기 「깊은 밤 옷장 밑에서」에는 담이가 훨씬 어릴 적에 처음으로 쓴 글자를 기억하는 연필이 등장한다. 시간이 멈춰 버린 옷장 밑에서 삼 년 내내 일곱 살 담이 걱정만 하고 지내던 어둠 속의 연필이, 새로 굴러 들어온 당근 연필에게 궁금했던 건 담이에 대한 것이었다.
어둠 속의 연필이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어요.
“열 살 담이는…… 어떤 아이야?”
그러자 당근 연필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어요.
“담이는 최고야!”
가만히 듣던 어둠 속의 연필이 말했어요.
“그럴 줄 알았어.”
_「깊은 밤 옷장 밑에서」 중에서
연필들이 그 무엇보다도 담이를 먼저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담이의 연필’이기 때문. 마치 영화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과 같이, 아이의 생활을 함께하고 성장을 지켜보며 한마음으로 울고 웃는 게 그들의 삶이다. 그러다 조금씩 낡아 가고 마침내 잊히기도 하지만, 몽당연필이 된 딸기 연필이 진심을 다해 일기장에 적은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라는 말처럼, 누군가의 연필로 살아가는 오늘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연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아차린 독자라면, 당장 오늘 밤 자신의 필통 속 연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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