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수록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가까이 있던 누군가를 잃거나 어떤 시간을 영영 빼앗기는 등 상실을 맞닥뜨린 인물의 이야기, 친숙한 상대에게서 뜻밖의 표정을 읽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 언어의 영(靈)이 들려주는 생경한 이야기 등이 김애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펼쳐진다. 작가생활 15년, 끊임없이 자신을 경신하며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 없는 김애란이 선보이는 일곱 편의 마스터피스.
목차
입동 _007
노찬성과 에반 _039
건너편 _083
침묵의 미래 _121
풍경의 쓸모 _147
가리는 손 _185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_223
작가의 말 _267
저자소개
저자 : 김애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이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주목받지 못한 작품상’을 받았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김애란은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이번 소설집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는 문장에서 비롯됐을 그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內〕을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버린 누군가의 얼어붙은 내면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집 처음에 자리한 단편의 제목은 ‘입동(立冬)’이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자리에 우리를 위치시키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싱그럽고 맑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슬픔을 느끼는 ‘부부’의 자리, 다른 하나는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그들을 ‘꽃매’로 때리는 ‘이웃’의 자리. 그리고 불가해한 고통을 겪은 타인을 대할 때, 실상 우리의 모습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되리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그 고통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을 때는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이 외면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을 닫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을 잃은 후 ‘시리(Siri)’에게 ‘고통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던 ‘나’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겨질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 수 있느냐는 것. 그 아득한 질문에 골몰해 있는 ‘나’는 제자 ‘지용’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은 후에야 줄곧 외면하려고 했던 어떤 ‘눈’과 마주한다. 계곡물에 잠기며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을 지용의 눈과 말이다. 그 마주침 이후 ‘나’는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게 되지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은 뒤 어찌할 바 모른 채,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어디로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이 나누어 가진 질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강아지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모습에서(「노찬성과 에반」), 한 시절을 함께한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여자의 모습에서(「건너편」)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지용이 죽기 전 움켜잡은 게 차가운 물이 아닌 사람의 온기였던 것처럼, 차가운 구(球) 안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시차’는 그간 익숙하게 여겨오던 생각이 깨어질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 「가리는 손」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시차는 잘 안다고 여겼던 인물과 우리 사이에서 생겨난다. 십대 무리와 노인과의 실랑이 끝에 노인이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목격자인 ‘나’의 아들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라는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다. 그러나 김애란은 그런 편견들 틈에서 때묻지 않은 깨끗한 자리로 아이를 이동시키는 대신, 또다른 편견으로 ‘어린아이’를, ‘소수자’를, ‘타인’을 옭아맸을 가능성에 대해 묻는다. 천진하다고만 생각한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 터져나온 ‘나’의 탄식 앞에서, 우리는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하며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해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연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바깥은 여름』은,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밀쳐둔 인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명료한 단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고자 한 안간힘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소설집 편편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배어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대다수의 작품들이 최근 삼사 년간 집중적으로 쓰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어느 때보다 벌어진 ‘안과 밖의 시차’를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김애란이 그 시기를 비켜가지 않고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가려 했던 다짐을 내비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 김애란은 등장 이후 줄곧 우리에게 그 각별한 체험을 선사했다. 이곳이 비록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가파른 절벽 위라고 하더라도, 그 언어가 화자(話者)가 한 사람밖에 남지 않은 소수언어처럼 타인에게 가닿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막막한 상황을 껴안은 채 써내려간 일곱 편의 단편이 『바깥은 여름』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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