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여행과 물건들
1. 여행가방과 비밀들
2. 여행가방의 언어
3. 짐 꾸리기
4. 나의 여행가방
5. 잃어버린 여행가방: 앨라배마의 미회수 수하물센터
감사의 말
주
저자소개
저자 : 수전 할런Susan Harlan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학교의 영어학과 부교수. 『전쟁의 기억: 근세 초기 영국』(2016)의 저자이며, 가디언, 올(The Awl), 비터 사우서너, 모닝 뉴스, 커브드, 더 커먼, 퍼블릭 북스, 제저벨, 아틀라스 옵스큐라 등의 매체에 기고해왔다.
역자 : 최정수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마크툽』,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프랑수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기 드 모파상의 『기 드 모파상: 비곗덩어리 외 62편』, 아모스 오즈의 『시골 생활 풍경』 외에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우리 기억 속의 색』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노 시그널』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등 110여 권의 책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유아차, 인형, 먼지, 쇼핑몰 등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작가가 선택한, 아니 작가를 선택한 사물이 무대에 앉아 마치 감독이자 주연배우처럼 책의 장르와 연구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다. 그 결과 독자들은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지식산문 O’의 첫 책은 『여행가방』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시리즈의 한국어판을 선보이는 데 맞춤한 시작이다. 가방의 사연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누군가의 가방을 구경할 수 있다니, 한번 따라가보고 싶지 않은가?
여행가방의 역사와 문학, 잃어버린 짐들의 운명까지,
길 위에서 만나는 이야기들
비행기나 기차 표를 끊는다. 숙소도 예약한다. 여행지에서 할일을 계획한다. 방문할 곳을 정하고, 맛집들도 알아본다. 날짜가 다가오면 드디어 그 순서다. 여행가방 꾸리기. 까맣고 바퀴 달린 캐리어일 수도 있고, 큼직한 보스턴백일 수도 있고, 그저 배낭일 수도 있다. 여러분은 어디에 짐을 꾸리는가? 여행 때마다 반드시 가져가는 가방이 있는가? 왜 그 가방을 선택하는가? 누군가의 여행가방 이야기는, 반드시 여행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여행과 여행가방은 마치 출발과 도착처럼 함께하는 법이다. 그래서 저자 수전 할런이 여행가방 이야기를 시작하는 곳 역시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이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피로한 여행객들의 눈앞을 오가는 여행가방들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불안도 안고 있지만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여행을 하는 이유와 이동 방식에 따라 무엇을 가지고 갈지가 결정되었다. 여행을 위한 물품은 여행자의 필요, 욕구, 취향에 따라 발전해왔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때때로 문장紋章으로 장식된 궤를 가지고 여행했다. 그 상자들은 가죽이나 나무, 쇠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고, 악천후와 도난 사고로부터 물건들을 보호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_27쪽
순례, 그랜드투어, 부유한 유럽 귀족들의 크루즈 여행을 지나, 자동차와 비행기를 대중적으로 탈 수 있게 된 시대에 이르는 동안 여행가방은 단순해지고 가벼워졌으며, 또 표준화되었다. 하지만 여행자 각자가 지닌 수하물, 여행의 사연은 표준화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행가방들이 어떤 비밀을 지녔는지 소설과 영화를 통해 살펴보고, 여행가방에 얽힌 언어도 탐험할 것이다. 여행가방의 어원, 문학 안의 은유, 문학 밖의 사건(제인 오스틴과 헤밍웨이와 오르한 파묵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보라)이 펼쳐진다. 짐 꾸리기와 관련된 산업의 모습도 살펴봐야 한다. 여행가방 판매, 여행 산업, 짐 꾸리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패션 산업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여행가방과 여행의 사연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동안 한쪽에서는 다른 여행도 펼쳐진다. 저자인 수전 할런이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할런은 자동차로 셰익스피어 학회가 열리는 애틀랜타로 향한다. 자동차에 실을 커다란 트렁크에 짐을 싸고, 반려견 밀리를 태워 떠난다. 중간에 소도시 모텔에서 하루를 묵으며 밥도 먹고 기념품도 산다. 애틀랜타 학회장에 도착해서는 편한 옷에서 학회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토론을 하고 학회 일정을 해나갈수록 더러워진 옷들이 캐리어 한쪽 면에 쌓인다. “호텔방 안에서 나는 여행가방을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고 연 뒤 지금 무엇을 꺼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남겨둘지 고민한다. 옷장 안 작은 고리가 달린 호텔 옷걸이에 옷 몇 벌을 걸어놓는다.”(170쪽) 별다른 사건 없는 담담한 여행이지만, 이런 걸 구경하는 일을 마다할 수 있는 독자는 없으리라.
저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할런은 여행가방 컬렉터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절부터 전해내려온 오래된 여행가방들을 가지고 있고, 빈티지 가방들도 사곤 한다. 그가 산 빈티지 가방에서는 이전 주인이 그린 그림이 발견되기도 하고, 주소 적힌 라벨이 그대로 붙어 있기도 하다. 때때로 새 가방도 산다. 대학에 일자리를 얻어 이주해야 했을 때, 여행에서 너무 많은 물건을 사버렸을 때는 커다란 가방도 구했다.
여행가방의 이 모든 여정은 어디서 끝이 날까? 미국 앨라배마의 미회수 수화물센터다. 어떻게 해도 주인을 찾을 수 없는, 주인을 잃어버린 가방들의 종착지. 여기서 가방들이 어떻게 되느냐고? 그건 비밀이다. 수전 할런이 학회를 무사히 마쳤는지, 어떤 기념품을 사서 돌아갔는지, 그는 여행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푸는 타입인지 아닌지도 비밀이다. 책을 펴면 알 수 있으니 그렇게 오랜 비밀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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