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aszlo)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을 써왔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된다.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감독 벨라 타르, 미술가 막스 뉴만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War and War》(1999),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2008), 《라스트 울프The Last Wolf》(2009),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2013), 《뱅크하임 남작의 귀환Baron Wenckheim's Homecoming》(2016) 등이 있다.
그의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다양한 국내 및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Kossuth상과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의 이름을 따 제정한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베스텐리스테SWR-Bestenliste 문학상과 브뤼케 베를린Brucke Berlin 문학상, 스위스의 슈피허Spycher 문학상 등을 받았고, 2015년에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으며 2019년에는 내셔널 북 어워드에서 번역문학상National Book Award for Translated Literature을, 2021년에는 유럽문학상Austrian State Prize for European Literature을 받았다.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자 : 노승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박산호 번역가와 함께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으며, 《서왕모의 강림》 《에 우니부스 플루람》 《끈 이론》 《유레카》 《메타 페이스북》 《오늘의 법칙》 《바나나 제국의 몰락》 《약속의 땅》 《생명의 물리학》 《시간과 물에 대하여》 《향모를 땋으며》 《행동경제학》 《자본가의 탄생》 《트랜스휴머니즘》 《그림자 노동》 《새의 감각》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등 다수의 책을 한국어로 옮겼다. 2017년 《말레이 제도》로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한국과학기술도서상 번역상을 받았다. 홈페이지 socoop.net에서 그동안 작업한 책들의 정보와 정오표, 칼럼과 서평 등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이전 소설의 카덴차”라고 말한다. 카덴차는 악곡이나 악장을 마치기 직전에 연주자가 기교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구성된 화려하고 자유스러운 무반주 부분을 가리키는 음악 용어다. 원래는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했지만, 관습이나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쉬워서 작곡자가 직접 악보에 표시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 소설가로서 살아오는 동안 낙서한 것을 묶은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즉흥적이면서도, 라슬로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한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차례는 악보와 같다. 다소 낯설고, 꼭지마다 붙은 제목은 가사 같으며, 악기 소리와 합창단의 목소리를 배열해놓은 것 같다.
라슬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저장용으로만 활용한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1만 년의 살아온 결과라고요? 마이크, 노트북, 기술 사회가 전부인가요? 정말 슬프고도 실망스럽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아인슈타인, 부처에서 안드레 세레메디에 이르기까지, 인간 역사에 그토록 많은 천재가 있었는데 말이죠.”
라슬로는 길디긴 문장을, 쉼표와 말이음표로만 연결되어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굽이굽이를 머릿속에서만 다듬어낸다. 라슬로야말로 말의 리듬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그 호흡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놓을 줄 아는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귀향, 인간의 영원한 그리움
라슬로는 어린 시절 이후로 어느 곳에서든 집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집은 불안정한 공간이고, 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환상이다. 이 느낌은 원시적이고도 오래된 감정이다. 그렇기에 이런 느낌을 평생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자 행운이며 능력이다.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려면, 많은 것에 눈이 멀고,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집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애정은 안전의 문제다. 나를 보호해줄 가족이, 친척이, 친구가 없는 집은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도 벵크하임 남작은 집으로, ‘고향’으로 향한다. 더 이상 친숙하지도, 안전하게 보호해줄 대상도 없는 그곳으로, 다만 애정을 갈구하면서. 오래되고 잊힌 첫사랑이자 단 하나의 기억을 좇아, 그 또한 원시적이고 오래된 감정을 따라 다시 귀향한다.
귀향은 문학에서 거듭 되풀이된 아주 오래된 주제다. 이 소설은 가장 ‘헝가리적’인 문체로 가장 친숙하고도 오래된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담았다. 라슬로는 귀향을 다룬 선구적 작품들이 지닌 고전적 클리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벵크하임 남작은 평생 단 하나의 사랑을 품고 살아갔고, 그 사랑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 죽는다. 마치 오래된 발라드처럼, 기사도의 노래처럼 말이다. 그래서 벵크하임 남작은 변함없는 가치와 그것의 종말을 귀향과 죽음으로 보여준다. 오래된 것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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