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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 -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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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원
도서번호
320267
ISBN
9791199541641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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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5-11-24
페이지, 크기, 무게 144쪽, 142*210mm, 18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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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이 지구상에 우리가 살았다는 흔적
지구가 멸망한다면
철새의 미래
끝까지 바라보기
새해맞이
지금보다 눈이 더 많이 오면
작은 것들의 힘
인간 멸종 보고서
영원한 여름
산불
초록색 강
식물의 말
작은 완두콩
죽은 새들의 노랫소리
멸종된 공룡을 찾아서

2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기 냄새
나의 발견
가장 슬픈 사람
새가 된다면
커피와 새
내 동생 까미
문
개의 부드러움
이웃집 미정 언니
가벼운 산책
스며드는 빛
좋은 결말을 맺고 싶다
오래된 편지

3부 너희랑 있을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아
혼자인 날
레몬의 눈부심
문버드
진짜 귀한 것
발자국들
창문 열어 두기
야작
산사태
우리의 꿈을 새겨 넣었다
가장 먼저 등교한 날
낙서의 흔적
몰래 놀러 간 날
수능 이후
끝까지 재생된 뒤에

4부 나도 사랑받는 딸이고 싶었어
너의 입장
깨고 싶지 않아
아픈 날
생각은 구름
어려운 일
일기장
오늘의 슬픈 일
오늘 아침 침이 고였다
비밀의 속성
진로 상담
건물주가 꿈이라고 하면
너의 믿음
내일의 꿈

5부 나는 가장 시고 못생긴 과일
나쁜 삶은 없어
월드컵 수영장
봄의 기억
백일장
불의 의미
베이비 박스
생활의 단맛
정전
스윙
아무도 빌려 가지 않은 책
첫 중고 거래
준비, 시작

시인의 산문
웃음을 잃지 않는 용기

독서활동지
저자소개
저자 : 주민현
책을 좋아하고 꿈꾸는 건 더 좋아했다. 공상과 산책이 특기이자 취미이다. 세상은 읽어도 읽어도 계속 페이지가 새로 생기는 책 같은 기분, 세상과 나를 탐구하기를 즐긴다. 시의 다정함과 반짝거림이 좋아서 시인이 되었다. 시집으로
출판사 서평
주민현 시인은 인간의 역사 그 이후를 상상하며, 멸종에 가까운 미래의 지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도 한다. “2179년 (중략)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맥박이 멈춘 것으로/최종 관찰되었다”(「인간 멸종 보고서」)고 말하는 시에서는 인간이 사라진 행성을 기계적 언어로 기록하며, 청소년들에게 지금 질문해야 할 윤리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냉혹한 전망과 함께, 시인은 가장 작고 연약한 생명에게서 다시 희망을 발견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식물은 새잎을 밀어낸다”(「이웃집 미정 언니」)는 문장은, 극한의 조건에서도 삶은 계속 자라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기후 위기라는 커다란 질문과 나란히, 이 시집은 청소년들의 아주 개인적인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우울함과 불안, 관계 속의 미묘한 상처들, 어른이 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시집에서 또 하나의 큰 축을 이룬다. “희수야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중략)/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해도 우리는/친구야”(「레몬의 눈부심」), “뉴스를 틀면 우울한 소식뿐/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일까 봐//그렇다면 외계인이 될래요”(「수능 이후」) 같은 시구들은 기후 위기와 청소년기의 감정이 어떻게 포개지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미래가 불안한 만큼 서로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 끝내 어딘가에서는 빛을 찾으려는 마음이 시에 담겨 있다.

류대성 인문학자는 추천사에서 “시가 정답을 말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가 건네는 공감과 위로는 힘이 세다”고 말한다. “나쁜 삶도/잘못 태어난 삶도 없어//내가 나에게 토닥토닥 말해 준다”(「나쁜 삶은 없어」)라는 시구처럼, 이 시집은 청소년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드문 목소리다. 지구의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개인의 마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은 그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마음을 받아 안아 주려는 시인의 다정함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은 멸망을 노래하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그 멸망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기록이다. 기후 위기와 개인의 상처가 나란히 놓인 지금, 이 시집은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어른들은 왜 그런지 궁금한 아이들에게”(「추천사」) 건네는 하나의 응답이다. 지구가 천천히 변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도 천천히 변하고, 천천히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독자는 지구를 걱정하는 ‘우리’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싶은 ‘나’이기도 하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려는 마음, 아무리 작은 흔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내일의 장면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주민현의 시는 그 믿음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밝힌다. 우리가 살았다는 흔적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미래의 지구 어디엔가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시집 전체에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책 속에서

세상에 겨울밖에 남지 않는다면

가을 구두코
여름의 땀 흘리기
봄의 자전거 내달리기

모두 사라진다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거나
한겨울 한파뿐이라면

세상의 계절이 두 개뿐이라면
그 계절이 무한정 길어져

우리가 끝없는 얼음의 가시밭길을 걷는 마음이거나
맨발로 불구덩이를 지나야 하는 마지막 인류가 되었을 때

우리는 걸으며 그런 미래를 상상한다

그래도 나랑 같이 있을 거지?
―「지구가 멸망한다면」 부분

지금이라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폭우와 폭설과 가뭄은
더 많이 반복될 거라는 뉴스가 나온다

지금보다 눈이 더 많이 오면
지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리면
남극의 해빙이 다 녹아 버리면

1층에 있는 우리 집은 축축이 젖을 것이다
지하에 고양이 가족은 꼼짝없이 갇힐 것이다
더 지하에 사는 존재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중략)
우리도 우리가 사는 길에 물길을 내고 숨길을 낸다
‘더 이상 무엇을 죽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정법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가정이 가능하다
―「지금보다 눈이 더 많이 오면」 부분

2179년 3월 1일 뉴스를 시작합니다
지난 새벽 0시 25분 서울의 상공을 지나던 드론 DK-35에 의하면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맥박이 멈춘 것으로
최종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간의 생존 한계 기온이 초과되고
남극의 빙하 붕괴로 해수면이 상승, 강력한 집중 호우로
전 세계의 작물 생산량 또한 급감했다고 지난 방송에서 전해 드렸는데요
이에 따라 야생에서의 생존 가능성은 0.03%입니다
지하 벙커 및 기타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을 생존자 여부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고 있으니
혹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생존자들을 위해 이 방송을 전합니다
부디 안전한 곳에 머물고 식량을 넉넉히 구비하십시오
이상 자동 촬영 및 자동 송출, 자동 저장되는 방송 여기서 마칩니다
시청자 여러분, 다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이 보고서는 드론에 의해 자동 촬영된 내용을 바탕으로 자동 기술되었음.
―「인간 멸종 보고서」 전문

새도 고양이도 집을 짓는다
떠밀려 온 곳에, 주저앉은 곳에,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곳에

때로는 가장 험하고 좁고 위태로운 곳에
자리 잡는다

불행의 더미에서도 어쨌거나
아주 약간의 햇빛과 물과 바람 속에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식물은 새잎을 밀어낸다

나에겐 언니가 그런 잎처럼 보여
어디에서라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웃집 미정 언니」 부분

희수야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더 모를수록 좋을 수도 있겠지
네가 뭘 좋아하는지 구석구석 소름 끼치게 싫어하는지
몰라도 같은 복도에 서서 아무 말이나 해도
말이 되지 않는 말을 해도 우리는
친구야 어젯밤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하고
상상 속에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를 했어도
같은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안개 낀 아무도 없는 늦은 밤거리를
텅 빈 가슴으로 달리며
신 레몬을 입에 가득 물어도
그게 눈부십이 아니어도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는 시와도 같아
눈을 감고 외우면 부를 수 있지
안개로 가득 차 안 보이는 길도
그냥 달려 보는 거지
친구야 네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해
자주 우울하고 한숨 나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도
아빠 사업이 망했대 이사 가야 된대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야 애써 웃으면서
오늘 우린 쓸쓸한 박쥐의 기분
―「레몬의 눈부심」 전문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뭘 할지 깊이깊이 고민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게 사실은 두렵기도 해요
어른이 돼도 별 볼 일 없을까 봐
뉴스를 틀면 우울한 소식뿐
우리가 사는 지구는 천천히 멸망 중일까 봐

그렇다면 외계인이 될래요
돌연변이가 될래요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살지 않을래요
―「수능 이후」 부분

시인의 말

내일의 기후는 보다 나쁘고
우리는 사랑스럽지요

2025년 겨울
주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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