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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오피스텔 룸에서 나오다 - 청어소설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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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96266
ISBN
9791168554993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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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8-25
페이지, 크기, 무게 320쪽, 148*210mm, 416g
목차
책머리에 5

나는,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10
그는 마지막 소설을 몸으로 썼다 34
그녀의 오피스텔 룸에서 나오다 58
헤헴 훈장님이 준 복 82
원형의 동굴에 가다 110
그해 여름의 추억 132
보이지 않는 손 178

편집후기 283
소설집 『그녀의 오피스텔 룸에서 나오다』를 발간하며 다시 최상규 소설가를 그리워한다
저자소개
저자 : 김영훈
솔뫼 김영훈은 1947년 충남 청양 미당에서 태어나 공주교육대학교 및 동대학원과 중부대학교 대학원(문학 박사)을 졸업했다. 초등교원으로서 42년을 근무하다가 대전변동초등학교장으로 정년했으며, 공주교대와 중부대학교, 대전시민대학에도 출강했다.
청소년기에 문학 동인 〈팔각정〉에서 소설을 썼으며, 대학 재학 중에는 대학문예공모전에서 소설 「도토리 깍지」가 당선(심사 최상규)되었다. 그 후, 1983년 월간 《아동문예》지에 소년소설 「꿈을 파는 가게」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그동안 동화, 청소년 소설, 일반 성인 소설 창작 및 문학평론에 힘써 왔다.
2008년에는 소설 「화해론」으로 호서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밖에 대전시문화상(문학 부문), 전영택문학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문학시대문학대상, 해강아동문학상, 김영일아동문학상, 박화목아동문학상, 대한아동문학상, 청동빛문학상, 한국PEN문학상, 서울언론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황조근정훈장, 모범공무원상(국무총리) 및 동아재단에서 주는 공산교육상(예술부문)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동화집 『밀짚모자는 비밀을 알고 있다』, 아동문학평론집 『동화를 만나러 동화 숲에 가다』, 소설집 『익명의 섬에 서다』, 문집 『솔뫼의 삶과 문학이야기』, 칼럼집 『그 젊은이와 함께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등 30여 권이 있다.
대전충남아동문학회장, 한국아동문학회부회장, 대전문인총연합회장 및 명예회장, 문학시대문학대상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국제펜한국본부대전시위원회장, 한국아동문학회지도위원, 계간문예 이사이며, 대전고등법원 조정위원도 맡고 있다. 또한 한국효문화진흥원, 대전시립박물관과 한밭수목원에서 해설 봉사도 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청소년 시절로 진입하던 해인 1961년,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에, 나는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읽으면서 이광수, 김동인, 이효석, 현진건, 염상섭, 김유정, 전영택 등을 만난다. 생애 최초로 문학 작품을 소설로 접한 셈이다. 당시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이 많던 그 시절에 읽은 이 소설들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 후부터 소설로 꿈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니, 현재까지도 그 꿈을 접지 않았다. 1964년 고등학교 시절에 쓴 습작소설 「포도원의 회상」을 교지에 활자화했으며, 1968년 대학문예 공모로 소설 작품 「도토리 깍지」가 당선되면서 심사위원인 최상규 소설가와 사제 관계를 깊게 맺었고, 그때부터 소설 쓰기에 더욱 몰두했다.
그 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교육자료》, 《새교실》 잡지에 유형을 바꾸어 같은 서사 장르인 동화를 썼는데 그 두 잡지에 추천되는 과정을 거쳤고, 1983년 3월 1일에는 마침내 월간 《아동문예》지를 통해 소년소설(동화) 「꿈을 파는 가게」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올해 44년째로 등단 나이 만 43세가 된 셈이다. 30대 중반에 글쓰기 길로 들어선 셈인데 그동안 동화집, 소설집, 평론집 그 밖의 저서까지 합해 30여 권을 출간하는 열정으로 삶을 꾸려왔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여든의 나이 산수(傘壽)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올해는 교직적인 삶 속에서 후진들을 키우는 일은 물론 글쓰기에 절대적인 힘을 보태준 반려자 이기순과 결혼을 한 지 53주년이 되는 해이다. 2남 1녀의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반백 년 넘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함께 살아왔다. 그 의미까지를 함께 담아, 이 소설집 『그녀의 오피스텔 룸에서 나오다』와 다른 한 권인 평론집을 동시에 독자에게 내놓는다.
이번에 펴내는 산수 기념 두 작품집 중에 이 소설집에는 중·단편을 합해 모두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말미에 편집후기로 내게 소설을 쓸 힘을 불어넣어 준 은사인 최상규 소설가를 모시고 싶어 그이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그동안 작가로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글을 써 왔다. 동화 작품 창작은 물론 소설, 평론, 수필, 칼럼 등을 열심히 집필했다. 그중에서도 아동소설, 청소년 소설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을 폭넓게 쓰면서 여러 번의 문학상 수상과 함께 소설 「달섬에 닻을 내린 배」가 극화되어 서울 KBS 방송국 드라마로 방영되는 등 아주 작은 문학적 흔적을 남긴 바 있지만, 이제 그 삶도, 문학도 노년을 맞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렇게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에겐 잃었던 동심을 회복할 수 있는 작품을 써왔다. 동화뿐만 아니라 내 문학의 시작이었던 소설 쓰기는 물론 평론 영역까지, 인간(사람)의 원초적인 마음과 그 마음 따라 움직인 삶이 생성해낸 사유의 세계를 언어예술로 끊임없이 담아왔다. 이러한 열정으로 다시 이 ‘소설집’을 출간해 독자 앞에 내놓는다. 앞으로도 이 창작 작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글쓰기에 정진하려고 한다.

2026년 성하의 계절에 솔뫼마을에서
김영훈

책 속에서

헤헴 훈장님이 준 복

나는 그날 헤헴훈장님의 말씀을 들은 후부터 복이라는 걸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 꽁보리밥을 먹지 않는 게 복은 복이다. 삭수제비를 먹지 않아도 되는 것도 복은 복이다. 멀리 금강을 건너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침만 먹으면 칠갑산으로 먼산나무를 하러 우리 마을을 지났지만, 그런 중에도 낫 한 번 잡아 보지 않는 것도 복은 복이었다. 맞다. 그것도 복은 복이다. 일꾼 아저씨의 꼴짐을 따라 커다란 암소나 더러 끌고 용못골 절터에 올라가 풀을 뜯길 때마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었다. 우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김정구 아저씨의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복은 복이었다.
하지만 소꼴을 뜯기느라 용못골 절터에 올라가면 소꼴이나 뜯기면 되었지 절터의 돌탑을 돌며 아버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복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툭하면 외갓집으로 가시어 달포나 머물다 올 때마다 기다림에 지쳐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것은 더구나 복이 아니다. 나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문득 나의 어머니가 낯설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어머니가 낯설어도 할 수가 없다. 그 대신 둘째 큰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보다 가깝게 다가든다. 하긴 나의 둘째 큰어머니, 중백모께서 다른 아이들처럼 들판에 나가 거머리를 뜯기면서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그것은 복이다. 더러 부엌에 들어가 군불을 때기도 했고, 남새밭에 나가 일꾼 아저씨를 도와 잡풀을 뽑기도 했지만, 둘째 큰어머니는 내가 일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공부해 주기를 바랐다. 어머니보다 더 그걸 원했고, 늘 부추겨 주었으니 그렇다면 헤헴할아버지 말대로 복을 타고 난 셈이었다.

“너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고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길이니?”
영호 형네 집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어머니는 역정을 내면서 야단을 쳤다.
“글방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글방?”
나의 어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둘째 큰어머니는 좀 달랐다.
“오라, 훈장님께 뭐 재미있는 말씀이라도 듣고 오나 보구나.”
둘째 큰어머니는 성급하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글방에서의 헤헴훈장님에게 걸었던 기대가 별로였었는지라 그저 헤부죽이 웃고는 머리만 흔들어댔다.
“아니, 저 녀석이 왜 저러는 거여?”
둘째 큰어머니인 중백모는 나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느꼈는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저 저에게 헤헴훈장님이 복된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씀하시기에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 갔었을 뿐이에요.”
“복된 세상? 이렇게 나라가 어수선하고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하는 세상인데 무슨 복된 세상여?”
“그러게 말이요. 이 대통령이 어서 물러나야 나라가 좀 안정될 것 같잖아요?”
“하지만 내놓고 할 말은 아니니까 입조심을 해야지.”
어머니는 큰어머니 그리고 둘째 큰어머니와 셋이서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어리둥절했다. 그러는 나에게 둘째 큰어머니는 또 아침의 그 떡 바구니를 쑥 내밀었다.
“떡이나 먹으렴. 복 타령은 그만하고.”
“아니야. 밥을 먹어야지. 식전에도 넌 떡이었잖여?”
나의 어머니는 급히 부엌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침에 먹은 떡 탓인지 밥 생각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복 이야기가 더 입맛을 당겼다.
“큰어머니, 정말 복이란 게 사람마다 제각기 정해져 있을까요?”
“있지, 네 둘째 큰어머니를 봐라. 부모님이 독립운동을 하고도 그 공이 모두 그림자에 가린지라 그 공이 솟아나지 못하고 있잖니? 그게 다 복을 타지 못함이 아니겠니?”
그건 그랬다. 맞다. 둘째 큰어머니의 친정아버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독립운동가요 개화기에 청년 운동을 한 분이었다. 친정어머니도 경기여고를 나온 후,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여성운동을 편 분이었다. 두 분이 모두 옥살이를 하다가 둘째 큰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떴다고 하였다. 좌파 쪽이라 빛을 못 본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좌가 뭔지 우파가 뭔지 모르던 나이였다.
하지만 그 두 분은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가 생전에 두 분의 활동 상황을 분명히 기억해 추모하고 동아일보 지면에 회고할 만한 분들이었다. 더구나 친정어머니는 암행어사 박문수의 7대 종손집 딸이기도 했기에 이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둘째 큰어머니였다. 하긴 조실부모했으나 둘째 큰어머니는 외가에서 자라며, 배화여고를 나와 한때 조선총독부 통계국에 근무한 경력도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 둘째 큰어머니를 곧잘 군수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 푹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보면 타고난 복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둘째 큰어머니, 큰어머니 말씀대로라면 둘째 큰어머니께서도 복이 없어서 이곳에 묻혀 계시는 건가요?”
나는 떡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으면서 다시 복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복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여전히 헤헴훈장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 큰어머니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복이란 애써 구하는 자에게 더러 찾아와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개 어느 한 사람의 뜻으로는 이렇게 저렇게도 할 수 없단다. 그게 다 운명이지.”
운명이란 말은 둘째 큰어머니에게서 툭하면 듣는 소리라서 이미 내 귀에도 익숙해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 어떤 운명 속에 갇혀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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