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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과 마탐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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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403492
ISBN
9791124052327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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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9-21
페이지, 크기, 무게 376쪽, 152*225mm, 489g
목차
작가의 말

경마장과 마탐바카 / 9
이 겨울의 밝은 창 / 33
거울 앞에 앉은 여인 / 61
고뇌하는 뻐꾸기 / 83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다 / 105
대기 병실 / 129
희망의 별 / 145
에브리 데이 / 177
퍼즐 한 조각 / 195
신장실에서 있었던 일 / 213
내 몸속의 가시 / 235
꼰대와 장맛비 / 259
수상쩍은 후배 / 281
집게손가락을 사랑한 그녀 / 303
옹이 자국 / 327
연 등 / 355
저자소개
저자 : 임옥희
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결국은 무엇에 쫓기다시피 세상의 모진 비바람을 다 맞고, 누군가의 쏟아지는 비를 가려줄 수 있는 커다란 ‘우산’ 같은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한 권의 소설집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돌아보니 평생 헤매 돌아온 이 먼 길마저도 소설을 깊게 만들기 위한 귀한 자양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제 안에서 묵묵히 자라준 이야기들이 이제 독자 여러분의 비 내리는 마음에 따스한 우산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사

김지연 (소설가·前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임옥희 작가의 「경마장과 마탐바카」에서 특히 여성들의 삶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편 앞에 무릎 끓어 월급 봉투를 받기를 강요받은 여자. 신장 이식받는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 정리해고당한 남편을 대신해 삶을 견디는 아내,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입양한 아이를 키우는 여인… 작가는 이들을 불행 속에 가두지 않는다. 상처를 품고도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으로 그려낸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등장인물의 얼굴 위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세밀하면서도 담담한 문장은 인물의 마음 가까이에 조용히 머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또 한 사람의 손길이라는 믿음, 그것이 임옥희 작가의 소설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다.

김호운 (소설가·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임옥희 작가의 첫 소설집 「경마장과 마탐바카」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사람들의 삶이 있다. 경마에 빠졌다 일상으로 돌아온 세탁소 일꾼, 고슴도치와 살아가는 김 여사, 대기 병실의 환자, 지체 장애인 도우미, 가족의 질병과 죽음을 견디는 사람들까지. 작가는 이들의 아픔을 과장하거나 삶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 가까이 다가가 오래 바라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되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 절제 된 문장 속에서 상처와 온기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다시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 삶임을 보여주는 임옥희 작가의 소설은 평범한 생의 이면에서 깊은 진실을 건져 올린다.

책 속에서

아내와 결혼하고 민다나오에서 일 년 남짓 살다가 한국으로 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첫아이 유진이를 가졌을 때 고향에서 먹던 ‘마탐바카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필리핀에서 찌개, 구이, 튀김으로 흔하게 먹던 국민 생선이다. 아내와 함께 혜화동 로터리 성당 앞에서 필리핀 주민을 위한 반짝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아내는 필리핀의 타갈로그 말로 부르는 마탐바카 생선 앞에 섰다. 은빛으로 빛나고 몸통이 통통하게 생긴 한 마리를 고르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요리장이 되어서 고등어찌개 하듯 무와 갖은양념과 생선을 넣고 보글보글 끓였다. 음식 냄새가 싫어서 밥을 못 먹던 아내가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먹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후로 나는 경마장 생각날 때마다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마탐바카찌개 만드는 얕은 꾀부리면서 아내의 환심을 사곤 했다.
---「경마장과 마탐바카」중에서

거울을 주제로 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바로 옆에 전시된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이다. 그 앞으로 자릴 옮겼다. 커다란 왼쪽 눈은 깜짝 놀란 눈이다. 무엇에 저렇게 놀랐을까. 세상에는 놀랄 일들이 무척 많다. 눈은 오류투성이다. 인생사에서 정답이 없는 것은 사유의 혼란과 감정적 동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금자가 느닷없이 뿌리도 없는 말로 나의 사춘기를 힘들게 했던 것처럼 전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내 눈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바로 이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말은 다양성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정육면체 보듯 한꺼번에 다 볼 수 없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한계다. 그림 속에 있는 거울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작품에서는 존재에 대한 증언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에서는 세상일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는 놀라운 일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그냥 시각적으로 아름다움만 감상하기로 하였다. 빛이 뿜어내는 풍요로운 색채, 그림자의 효과,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상상해 보았다.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었더니 감상이 훨씬 즐거웠다.
---「거울 앞에 앉은 여인」중에서

입원실에는 엎드린 채 잠자고 있는 환자 한 사람뿐이었다. 일인용 커튼은 대문이 열려 있듯 활짝 열려 있었다. 팔목에는 두 겹으로 된 굵은 묵주가 걸려 있다. 다른 한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간절한 소망이 무엇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삶이란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대결 구도로만 생각했다.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할 줄은 몰랐다. 늘 무엇에 쫓기듯 분주했으나, 정작 손에 쥔 것 없는 허망한 삶이었다. 생활이라는 잡다한 것에 얽매여 한 곳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고 맹숭맹숭하게 살아왔다. 지금은 마음공부에 조금 재미 붙이고 나를 찾아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잠자고 있는 환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자정이 넘었는데 정신은 더욱 맑아진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략한 몇 가지 질의응답으로 지극히 사무적인 일은 끝났다. 버스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완전 짐짝 취급을 당한 느낌이었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입원한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일 의사 선생님 지시가 있을 때까지 편히 쉬라고 한다. 간호사는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돌리면서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나갔다. 환풍기와 난방기구 돌아가는 소음은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119구급차가 환자를 수시로 응급실에 수송한다. 사이렌 소리가 귀청을 뚫고 들어올 때 응급실은 때아닌 도떼기시장이 된다. 둘만 있던 병실이 갑자기 가득 찼다. 치매 증상의 육십 대 여인, 양악수술을 하기 위해서 온 아가씨, 화상으로 밤새도록 칭얼대던 다섯 살 여자아이, 복통으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인. 이런저런 분위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병실의 조명등은 다 꺼도 응급실 불빛이 반사되어 여전히 대낮처럼 훤하다. 눈은 감고 잠을 청하였다. 애꿎게 양만 백 마리까지 헤아려도 눈은 말똥말똥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책 〈알랭 드 보통의 우리 사랑일까〉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누워서 읽으면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금은 책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대기 병실」중에서

“왜 그래, 왜 그래! 말해.”
기물 파손과 더불어 몸에 상처라도 생길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손에 상처가 나면 이것도 자해라고 할 수 있겠지. 자해라는 말이 머릿속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서 꽤 신경이 쓰였다. 육중한 자판기는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켰다. 자판기 두드리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멍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아서 다행한 일이다. ‘어휴’ 하는 소리가 한숨처럼 새어 나왔고, 등줄기에서 땀이 끈적거렸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이다. 승객들 틈에 벌러덩 나자빠지듯 승하차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은 좌우로 흔들며 ‘사줘, 사줘.’ 구호처럼 부르짖으며 뒹굴고 있다. 승객들은 ‘저 아가씨 왜 저래’하는 표정으로 몸은 슬슬 피하면서, 시선은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본다. 음료수 하나 뽑아 주면 금방 해결될 텐데, 비난하는 시선이 몸에 차갑게 닥지닥지 달라붙었다. 뭇사람들로부터 이유 없는 몰매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일까. 도대체 왜 이럴까. 덩치 큰 선영을 일으킬 수도 없고 달래도 막무가내였다. 발길로 한 대 탁 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발길로 찬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최고 활동 보조원이 이런 것도 해결 못 한다면 처음부터 시작할 일이 아니지. 장애는 개선될 수 있으나 낫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았다. 이용자 행동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상황에서 음료수 하나 뽑아 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는 보호자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지금 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활동 보조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막무가내식 행동을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은 어머니일 것이다.
“음료수 자판기 앞에서 뒹굴고 있어요.”
---「퍼즐 한 조각」중에서

오래전 일이다. 남편은 봉급 봉투를 내밀며 꿇어앉아서 두 손으로 받으라고 하였다. 나는 ‘뭘요’ 하며 딴전을 피웠다. 썰렁한 유머도 아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깡그리 곤두박질치고 있다. 남편은 ‘그래!’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봉급 봉투는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간다. 남편 뒤통수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머리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집안에서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가사 노동 대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이 억울하였다. 내가 놀고먹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집 밖에서 돈을 벌어 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신혼 시절 단꿈은 파편 조각이 되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좀 있다가 들어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밤은 깊어갔다. 커튼 사이로 뿌연 새벽빛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방문이 그렇게 철옹성 같다는 느낌은 처음이다. 밤과 씨름하면서 하얗게 지새웠다. 이후로 별일 아닌 것에도 마음이 쓰이고 가슴은 쿵쾅거렸다. 남편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일도 잦았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현관에 들어서는 남편의 커다란 키는 흔들거리기까지 하였다. 얼굴 빛깔은 햇빛을 보지 못한 여린 식물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거실에 서 있었다.
“왜, 목멱산 장승처럼 서 있나?”
먼저 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나도 따라 앉았다. 남편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급 봉투를 꺼낸다.
“꿇어앉아서 두 손으로 받아.”
---「내 몸속의 가시」중에서

보름이 지났다. 입양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느닷없이 그녀 집을 방문하겠다는 일방적 통보였다. 입양기관 원장과 보육교사가 그녀 집에 왔다. 원장은 집안을 두루 살펴본다. 아기가 정말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인가 확인하고 있다. 그녀는 손님 대접으로 작년에 담아 놓은 모과차를 거실 탁자 위에 올리며 마실 것을 권유한다. 원장은 모든 환경이 흡족한 듯 집 안 구석구석을 살핀다. 살림 솜씨도 함께 보고 있었다. 부모 나이가 60세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녀 나이는 54세였다. 원장은 부부간에 화목한가. 양부모 역할을 충실히 잘할 것인가. 양부모가 될 자격은 충분하며 정신적 혼란은 없는가. 동네 슈퍼에 드나드는 아줌마를 만나 인격적 됨됨이까지 물어보았다는 뒷소문까지 들었다. 원장은 동네 한 바퀴 돌면서 환경과 분위기를 살펴보고 마지막에 그녀 집에 온 것이다. 다음 날 아기를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다. 입양 절차는 무척이나 신중하고 까다로웠다. 원장은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위로인지 염려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기 생년월일, 건강하다는 의사 소견서와 부모가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이었다는 것 외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탯줄을 끊고 이틀 만에 그녀 품 안으로 돌아왔다. 그녀 정성은 하늘까지 뻗쳐 있었다. 백일 잔치할 때쯤이다. 아기 이마는 볼록하게 나오고, 눈은 깊숙하며 유별나게 속눈썹이 길었다. 인물은 달덩이처럼 훤하였다. 그녀는 아기에게 눈을 맞추면서 ‘우유 많이 먹고 얼른 커야지.’ 하며 아기에게 말한다. 아기는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옹알이를 한다. 아기는 즐거움을 듬뿍듬뿍 안겨 주었다. 이 세상 근심 걱정을 다 내려놓은 듯하다. 몸이 고달프고 어깨에 병까지 났다. 아기 업고 일을 할 때 팔이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 딸 키우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딸로 키우고 싶어 한다. 자식 때문에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아픔이 다 달아나 버렸다. 목욕 담당은 남편이었고 부부간 대화도 풍성해졌다. 누가 봐도 그들은 행복한 부부였다. 썰렁한 집안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옹이 자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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