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최현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다. 십여 년간 아이들에게 문학과 국어를 가르치며 동화를 써 왔
고,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으로 등단했다. 2024년 『나비도감』으로 제25회 문학동
네어린이문학상을, 같은 해 『스파클』로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장, 유영』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판사 서평
타인을 구하려던 손이 물에 빠진 자기 자신을 구할 수도 있다.
그 반짝거리는 기적을 독자들도 함께 느꼈으면 한다.
박상영(소설가)
모든 일의 시작은 쪽지 하나로부터
‘죽고 말 것이다. 반드시.’
방콕 5성급 호텔의 잡부, 호텔의 보트에서 머무는 열여덟 살 태국인 소년 한은 매일 작문을 한다. 호텔에 드나드는 부유층의 자제들이 ‘작문 수업은 걸림돌’이라 말하던 것을 들은 날부터 시작한 글쓰기에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주운 종이에 적힌 한국어를 따라 적은 한의 글씨가 쓰여 있다.
죽고 말 것이다. 반드시.
내가 주운 종이에 한국말이 적혀 있다. (7면)
한은 종이쪽지를 발견한 스위트룸의 주인이 한국의 유명 아역 출신 배우 ‘Y’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 빛나기만 했던 그가 죽기로 결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것도 건지지 못한다”(69면)고 생각하는 한은 Y만큼은 건지고 싶다는 듯 호텔의 손님인 한국인 소녀 윈터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한 열정은 언제나 미지근했다
그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
한편 엄마 ‘유선’과 함께 태국 여행을 온 윈터의 마음 역시 표류 중이긴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온전한 나’가 되어 본 적이 없다고 느끼는 윈터는 한이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그가 Y를 구하고 싶다 여기는 것을 보며 한이 슬픔 속을 유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작은 캐리어에 담아 온 커다란 비밀에 대해 한에게 털어놓고 싶어진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도 마음 안에서 먼저 떠오르는 사람. 며칠 사이에 생긴 마음이었다. 윈터는 그게 무엇일까 굴려 보았다. 잇몸을 뚫고 뾰족하게 나온 사랑니가 혀끝에 걸렸다. (246면)
그러나 아직 어린 한과 윈터는 커다란 마음들에 비해 어딘가 어설프다. Y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해 “러브 레터라도 써 볼까”(135면) 고민하는 둘은 사랑이 사람을 길어 올리는 힘을 가졌다는 걸 어렴풋 깨달으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채 허둥댄다. 그리고 예고 없이 Y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 세 사람은 서로의, 그리고 스스로의 떠도는 심장을 붙잡아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을까.
『심장, 유영』은 타인의 슬픔을 목격한 자가 서서히 자신의 슬픔을 자각하게 되는 기묘한 연쇄를 보여 준다. 한은 끊임없이 작문을 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면서도 과거를 똑바로 마주하길 회피해 왔으나, Y의 쪽지를 읽고 그를 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아픔을 애도하게 된다. 윈터 역시 부유하듯 뿌옇던 삶에서 한을 만나 그의 아픔을 바라보며 스스로 단단해진다. 그렇기에 『심장, 유영』 속 세상은 태풍이 치고 폭우가 내리는 것 같다가도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방파제에 앉아 함께 파도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된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구하러 돌아온다. (249면)
끝없이 유영하는 마음을 구하고
끝끝내 심지가 되어 줄 사랑에 대하여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여 의지할 데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살면서 반드시 실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태어난 장소를 떠나는 일이 될 수도, 의지하던 누군가를 잃는 경험일 수도, 빛나던 목표를 잃고 낙담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잃은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성장한다. 다른 이의 상실을 목격한 한이 자신의 상실도 자각하듯이 잃어버린 자들만이 잃어버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한의 물리적인 고향에는 이제 갈 수 없다. 호텔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한의 심장은 머물 곳을 잃고 끝없이 유영했지만 그가 타인에게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사랑을 전하려 애썼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받았던 그 모든 사랑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한은 이제 세상을 유영할 테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마음에 단단히 박힌, 사랑이라는 닻을 두고 그는 더 이상 표류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그 자신 외에 아무도 모르는 일”(257면)이기에, 언제고 또 유영하게 될까 봐 두려움이 자라날 때가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고향을 떠나고 마음을 뜯어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과 윈터, Y가 당신은 반드시 귀향(歸鄕)할 수 있다고, 『심장, 유영』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출항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 되어 줄 작품이다.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을 때 삶을 향해 그토록 움직이는 것이다. (259면)
저자의 말
고향을 잃은 후 정처 없는 고독에 휩싸인 자가 자기 안에서 고향을 되찾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실향기에서 회복기로. 2011년에 짜오프라야강이 넘쳐 태국의 많은 마을이 산 채로 물어 잠겼다. ‘한’이라는 인물은 방콕의 그 강물을 아슬아슬하게 거닐던 보트 안에서 떠올랐다. 그는 짜오프라야강가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지만 고향은 먼 곳으로, 물에 잠겨 있다. 나는 메모한 뒤 앞으로 몇 년 동안 내가 가장 붙들고 싶은 이야기가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
소설을 쓰며 나는 나의 잃어버린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느 모습으로 살든 변함없이 나를 지지하고 사랑해 주는 존재들 (…) 심장에 손을 얹고 말한다. 당신들이 나의 고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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