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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The Hole
편혜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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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01596
ISBN
9788932028477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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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16-03-23
페이지, 크기, 무게 209쪽, 116 * 186 mm, 265g
목차
홀 The Hole
저자소개
저자 : 편혜영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등을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의 신간 & 인기 도서
출판사 서평
예기치 못한 사고, 뒤바뀐 모든 것
재난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의사의 말대로 ‘의지’가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상태에 처한 셈이다.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는 오기의 독백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

“좀 특별한 얘기야.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거든.”
“지난번에 쓰고 있다던 그 고발문?”
오기가 아내를 힐끗 돌아보며 물었다.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 그 관찰기라고도 할 수 있어.” (p. 182)

오기의 신체와 삶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데에 교통사고가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기의 삶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이미 뚫려 있던 구멍의 실체를 드러낸다. 후배 제이와의 불륜, 경쟁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술수를 부렸던 지난날의 모습이 오기의 기억과 작가의 진술을 통해 서술된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의지를 손쉽게 비웃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며 아내에게 “성장할 만한 일”을 찾으라 훈계하는 모습 역시 서서히 변해가던 오기를 짐작케 한다. 더욱이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는 시구를 읽으며, 속물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나뿐 아니라 남도 그럴 것이라는’ 가벼운 자기 위로와 체념에 빠져버리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오기의 삶이 모래 위에 성을 쌓듯 위태로우면서 허술하게 지어지고 있었음을 상상케 한다. 조금씩 인생의 지반을 갉아먹던 속물적인 태도들이 하나둘 인생에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이 걷잡을 수 없이 깊고 커졌을 때, 순식간에 그 구멍 안으로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사고 전후의 모습을 계속해서 교차하며 작가는 오기가 만들어온 그의 삶을 관찰한다. 이는 곧 이 소설이 단순히 ‘사고’로 인한 불행만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표면적으로 사고를 당한다는 두려움보다 일상에서 제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리는 인간 스스로의 결정들이 좀더 보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에서 이 책이 가져다주는 공포는 한층 강력해진다.

기억나지 않는 그날의 사고
점차 비어가는 우리 사이

문학평론가 안서현은 최근 편혜영 소설의 특징으로 ‘빈 플롯’, 즉 “사건의 징후나 그림자만을 보여주”고,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사고 이후 말을 할 수 없는 오기, 속을 알 수 없는 장모, 그리고 말이 없는 죽은 아내 이 세 등장인물을 만나 이러한 특징은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는 세 명의 중심인물을 둘러싼 궁금증을 조금씩 풀어놓기도 하고 끝끝내 말하지 않기도 한다. 장모가 오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내가 오기의 불륜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예상할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차츰 그날과 관계된 일들이 모두 떠오를 것이다. 시차를 두고 조금씩 뒤죽박죽 기억이 떠오르면 그날 있었던 일을 납득할 수 있게 조립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리될 것이다. 일시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니 언젠가는 모두 기억날 것이다.
기억이 선명해지고 정황이 분명해질수록 오기는 슬퍼지고 서글퍼져서 비통할 것이다. 차라리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p. 34)

사고 직후 일시적인 충격으로 오기의 기억에는 드문드문 구멍이 생긴다. 작품 초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교통사고’에 대한 진술이 비어 있는 것이다. 사라졌던 기억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차츰 떠오른다. 기억이 비었을 때는 아내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장모의 서글픔에 강한 공감을 표하며 그들이 ‘아직’ 가족임을 확인한다면, 기억이 분명해질수록 장모와 오기 간에는 서로 말해야 하지만 절대 말하지 않는 감정의 균열이 그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지만,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서로를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야기 초반 비어 있던 기억의 그림자는 관계와 감정의 공백으로 대체되며 기억이 분명해질수록 “슬퍼지고 서글퍼”질 것이라는 문장은 소설의 복선 같은 역할을 한다. 사라졌던 기억이 되돌아올수록 비어가는 또 다른 문제들로 인해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예상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빈 공간’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이 책의 중반부 이후를 완벽히 장악한다.

점점 망가져가는 드림하우스
공간을 재구성하는 문장의 힘

이사를 온 날 오기와 아내는 집 안팎의 불을 모두 켜두었다. 집에는 불을 밝힐 전등이 많았다. 모든 방의 불을 켜고 현관의 센서등도 계속 작동되도록 해두었다. 정원에는 불을 밝힐 수 있는 크고 작은 전구가 총 열네 개 있었는데, 그것들도 모두 켜두었다. 밤새 환하게 켜둘 작정이었다. 오기와 아내는 그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p. 28)

이 책 대부분의 사건과 이야기는 타운하우스 형태로 지어진 오기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다. 정원을 갖춘 이 집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오기와 두 여자 사이의 관계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첫번째로 집은 사고 이전 오기와 아내 사이에 아무런 문제없던 시절 자유롭게 둘의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미래에 어떠한 균열도 예측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 아래 두 사람은 행복과 희망을 그려나갔다. 무리한 값을 지불해야 했지만 서서히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오기 부부에게는 그 정도 부담감은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이 공간이 갖는 이미지도 서서히 달라진다. 영국식 정원을 만들겠다며 정원 만들기에만 몰두하는 아내의 변화로 인해 정원은 곧 ‘아내의 공간’이 되어버리고 집이라는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기의 사고 이후에는 완전히 제 역할을 탈바꿈한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집은 마지막에 이르러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자 오히려 오기를 가둬버리는 공간으로 폐쇄적이고 황폐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아내와 평생 사용할 거라고 믿고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이튼알렌의 장미목 침대”와 “티크 책상”은 불구의 몸이 된 오기에게는 짐짝 같은 존재일 뿐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덩굴식물은 과거 “덩굴식물로 담벼락을 뒤덮지 말라”는 오기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 악착 같은 본성을 자랑하며 오기의 창을 잠식해오기 시작한다. 사실상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오기가 유일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였던 창을 말이다. 작가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며 공간의 이미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치밀하게 드러낸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에의 불안과 공포가 사건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오기를 조여온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지난날의 삶이 덮쳐오면서 읽는 이들도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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