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채기성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앙상블」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사계절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못갖춘마디』는 음악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장편소설 『언맨드』로 제17회 세계문학상을, 『반음』으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 『우리의 길은 여름으로』를 썼다.
출판사 서평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다
소이에게 아빠는 “항상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9쪽)이었다. 오래전 친한 가족끼리 함께 놀러간 바닷가에서, 아빠는 물에 빠진 유주를 구하기 위해 주저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린 소이는 아빠가 목숨을 거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 순간은 소이의 기억에 선명히 남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상가 시설 관리원으로 일하던 아빠는 화재 사고가 일어나자 또 같은 선택을 했다. 사람들을 구하려 불길에 뛰어들었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빠가 의인이라 말하지만, 소이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소이는 아빠를 잃게 만든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상처가 될까 봐 가족과도 아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마치 없던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아빠의 기억은 끊임없이 떠오른다. 아빠는 소이가 아이돌을 꿈꿀 때 누구보다 지지해 주었고, 연습생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그저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 제 편을 잃은 상실감, 자신이 데뷔했더라면 모든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만 같은 자책, 자신에 대한 실망. 소이를 짓누르는 감정들은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통과 의례다. 더구나 이렇게 이르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소이는 어떻게 치러 내야 할까? 그를 지켜보는 독자에게 이 이별은 어떤 의미가 될까?
거대한 사건에 얽힌 사람들
『못갖춘마디』는 소이가 숨긴 불안과 상처를 한 조각씩 내보이며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소이의 감정이 드러나는 통로는 바로 ‘음악’이다. 길을 걸을 때, 버스 창밖을 바라볼 때, 하루를 마무리하려 침대에 앉은 순간에도 소이의 머릿속에는 비트와 멜로디가 울린다. 꿈을 포기했다고 자책하는 소이는 자기만의 음악을 멈추지 않고, 마음속으로나마 자기만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소이는 래퍼 맥퀸의 크루에 들어가기 위해 가사를 써 보내고, 가사 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 쓰기 수업에도 참여한다. 그런데 맥퀸과 시 선생님은 소이에게 비슷한 조언을 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어 쓰라고. 그리고 소이가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담아 쓴 가사를 읽은 시 선생님이 메시지를 보낸다.
─ 그럼 소이 주위에…… 8월 14일에 정의상가에서 나오지 못한 분이 계셨던 거니? (중략) 내가 알던 사람도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어. (103-104쪽)
이 메시지를 시작으로 소이가 품은 진짜 비밀이 드러난다. 소이 아빠가 돌아가신 ‘정의상가 화재’의 전말, 소이 아빠가 마지막으로 구한 아이, 그 아이의 제보로 소이 아빠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끝내 숨진 소방관, 그리고 시 선생님의 지인…. 서사 곳곳의 단서와 감정, 아무 상관없어 보이던 인물들은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언맨드』를 비롯한 장편소설로 저력을 쌓아 온 채기성 작가는 이 작품에서 탄탄한 구성과 극적인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런 작가가 ‘정의상가 화재’를 조명하는 방식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소이는 온라인에 올라온 뉴스와 동영상 등을 통해 아빠의 마지막 행적을 복기한다. 소이에게는 절박한 추적이지만, 이는 독자에게 지금 우리 사회가 재난과 참사를 다루는 참담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골목의 낡은 상가, 밀집한 상점, 잦은 경보기 오작동 등은 현실에 너무도 흔한 풍경이다. 그러므로 소이의 경험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살아남은 이들이 나누는 위로와 연대
소이는 아빠가 구한 아이를 찾아간다. 아빠가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좋아하는 일마저도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소이는 그 모습에 화를 내고, 비난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123쪽)에 짓눌려, 생명을 빚지고도 타인을 구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벌주듯 살아가는 아이. 소이는 그 아이에게서 자기 자신을 본다. 아빠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노래를 멈춘 것은 소이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은 그 아이가 화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소이 곁에는 상처를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쌍둥이 같은 상처를 가진 유주는 자신 역시 어두운 원망의 시간을 지나왔음을 고백하고, 시 선생님은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균형을 찾으며 소이에게 제안한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고.”(186쪽) 소이는 그제야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잡고, 타인에게 손을 내민다. 그 과정에서 소이는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에 답을 내린다.
누구나 살아야 할 이유와 가치가 있었다. 아빠는 위험에 빠진 낯모르는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안전보다 귀중하게 여겼다. 아빠가 구한 사람이 아니라, 아빠 스스로가 자기 삶을 의미 있게만들었다. 나는 이제야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180-181쪽)
“나는 알았다. 이제 랩을 시작할 시간이라는 걸.”
소이가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쓴 이유는, 그 답을 찾은 이후에야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이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씩 희망을 품는 과정은, 소이가 자기만의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소이는 그 랩을 완성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무대에 선다. 그리고 소이의 여정을 함께한 이웃들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세상이 선한 자들의 무덤”이라 원망하고, “아빠가 구한 세상이 싫”어 숨었던 소이는 이제 세상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아빠처럼 “타인 향한 손 놓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노래한다.(195-196쪽) 아빠가 그토록 기대했던 무대에서 소이가 외치는 자기만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환호에 힘입어 완성된다.
이 무대는 누구를 위한 걸까.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랩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198쪽)
소이는 시와 가사를 통해 자기 슬픔을 표현하고, 랩으로 세상에 외치며 애도와 치유를 이루어 낸다. 『못갖춘마디』는 소이가 자기 슬픔을 극복하는 이야기이지만, 독자는 수많은 참사의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그들의 상처를 내뱉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은, 애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정답은 없겠지만, 『못갖춘마디』는 떠난 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기억하고 슬픔을 나누며 내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전한다. ‘못갖춘마디’의 사전적 의미는 ‘박자표에 정해진 박자를 다 갖추지 못한 마디’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못갖춘마디’는 불완전하게 시작해도 괜찮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세상에는 그 목소리를 함께 완성해 줄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의미한다. 『못갖춘마디』는 조금 부족하고 서투르더라도 자기만의 무대에 오를 모든 청소년에게 전하는 다정한 응원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인생의 마디에 갖춰야 할 박자가 조금 모자라도 괜찮아요.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자고요.”(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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