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줄 아는 어른의 심지16
일상적 태도22
불행의 증거25
나아감과 지나감은 같은 말26
습관적 낭만29
어른도 종종 미아가 된다33
내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다38
이토록 귀여운 사람들41
벽을 쌓지 않는 여유42
누추한 감정44
환대는 기회와 잘 어울린다49
문학을 빌미로53
사치보다 가치56
메모장60
좋은 사람의 정의61
기꺼이 돕는 쪽64
불운을 매듭짓고65
흩어질 용기68
채비를 마치고71
진실의 감도75
중심을 잡는 일76
나를 구할 방법79
일기82
혼잣말까지 다정한 사람83
채집87
목마른 초록88
2부
시절은 원망하지 않는다
매듭 없는 꽃다발94
만개95
서사96
소란한 인연100
찰나103
혼란을 소화하고104
목덜미를 잡는 심정107
슬픔을 무릅쓰고110
눅눅한 갈증111
생애 고백115
헤엄118
그렇게 시인이 된다119
여기 있어도 될 자격120
자주 길을 잃는 사람123
삭막한 결심126
멈추던 밤128
기다리지 않아도129
어쩌면 같은 것131
목이 따끔거렸던 건132
무렵134
너는 내가 아끼던 장소처럼135
미완성인 채로 완성되는 것139
간격142
진득하게 사랑받는 사람143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일146
3부
바다는 잠겨 죽지 않는다
당신은 바다로 있습니다152
모든 생명은 그리 연약하지 않다153
좋은 어른의 부재157
내 끼니를 챙기던 사람160
작은 존재들163
마음을 데워놓는 일166
새파란 각오169
무례와 무해170
오래 묵은 가치관174
증명177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는 이유178
아주 흔하더라도 사랑181
슬픔의 쓰임184
묻어둔 말을 살려주는 그들187
어떤 사연190
당신은 구구절절 내 사람191
같은 결194
나를 해치는 영광196
유서도 유언도 없이200
사색204
고맙다는 말205
나를 키운 건 슬픔보다 사랑 208
가시 없이 따가운211
작가의 말 각별한 이야기212
추천의 글216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황예현
어떤 글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부드러운 예술의 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 연한 것들의 유연함과 끈기를 닮고 싶어 조용히, 그러나 오래 쓰는 사람. 다정함을 힘으로 믿으며 오늘도 마음의 결을 따라 문장을 짓는다.
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대뜸 좋은 소식이 듣고 싶었다. 시시한 일상에 가라앉는 중인 사람은 뻐끔댈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서 무작정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사람들의 대답이 얼마나 소소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팔굽혀 펴기를 평소보다 한 개 더했다는 사람, 곧 여행을 떠난다는 사람, 며칠을 괴롭히던 기침이 잦아졌다는 사람, 불면증이 있는데 어젯밤 드디어 잠을 푹 잤다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중에 꼭 음 이탈 나던 지점을 무사통과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다가도 금세 재잘거렸고, 자신에게 일어난 좋은 일을 떠올리며 작게나마 기뻐했다.
그렇게 앙증맞고 소중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기분도 서서히 떠오르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내 소식을 가볍게 건넬 수 있었다. 어제는 먹고 싶던 과일을 챙겨 먹었고, 미루던 운동도 다녀왔다고. 오늘은 가고 싶은 공연 예매도 성공했고, 카페에서 앉고 싶은 자리에도 앉았다고. 얼마 전에는 이런저런 칭찬도 받았고, 수달을 닮은 구름도 봤다고.
내 소식을 전하는 일은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일만큼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아서 힘든 일이 있을 때보다 좋은 일이 있을 때 티를 내기가 더 쉽지 않았다. 아쉽지만 내 곁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 허겁지겁 위로해 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 달려와 기뻐해 주는 사람은 아주 적었으니까. 게다가 사소한 일이라면 더더욱 재잘거릴 명분이 없기도 했고.
나는 시시때때로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귀여운 자랑도 하면서 살아야겠다. 내 힘듦의 돌파구가 사람들의 좋은 소식이라서, 내 어깨가 무거워질 때면 나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찾아 위안 삼지 않고 더 가벼운 사람을 찾아 그 기운을 따라 내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꼬이지 않은 마음이 하루를 잘 풀리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아직 내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것이 오늘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인 듯하다.
--- 「내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중에서
바쁘지 않으면 불안했다. 하루를 꽉 채우지 않는 나태함이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매일 30분이라도 운동하겠다며 헬스장을 등록해 놓고 가지 않는 날의 내가, 언젠가는 먼 나라에 사는 이들과 유창하게 대화하고 말겠다며 영어 공부를 시작해 놓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하지 않는 날의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쉬어가는 시간에도 바쁘게 쉬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쫓겨 온전히 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등바등 바지런을 떨어도 미처 다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있고, 실수가 존재하니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찝찝하게 잠들곤 했다.
나는 내가 애처롭다. 완벽할 리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데 완벽한 일상을 바라는 미련함에 쫓겨 자주 숨이 찼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도 ‘적당히’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무작정 잘하고 싶었다. 내게 기대치가 높다는 건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나를 괴롭게 하기 쉽다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내가 나를 쫓아오면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다. 이런 곤란한 상황이 매일 반복되면 피폐해져 버리고 말 거라는 건 정해진 결과. 내게는 나를 구할 방법이 필요했다.
일단 인정부터 해야 했다. 달기만 한 하루는 없다는 걸 인정하고, 오늘의 목표를 다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아프거나 버거울 때는 나를 보살피는 게 먼저라는 순서를 깨닫고,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치열하게 사는 만큼 치열하게 나를 사랑해야 했다. 그러면 치열하게 살아도 나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살 수 있을 테니까.
해야 할 일에 압도당해 허우적대는 나를 구하며 사는 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 바빠도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떠먹이고 커피 한 모금을 준다. 아주 큰 마트 대신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시장에 가서 채소를 한 봉지 사 오거나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게 한다. 그렇게 내가 여기 있다는 인기척을 낸다.
쫓기듯 사는 건 성실하면서 나태한 일.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만히 세상을 돌아보며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이 나를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게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꾸물거리는 게 아니라 꿈틀거리고 있다.
--- 「나를 구할 방법」 중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사랑에는 자유가 허락되어 있으니. 다만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만큼 상대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앞서는 마음의 목덜미를 잡아 진정시키고, 그 사람에게 오래 시선을 둔다. 너무 앞선 마음은 속도만큼 날카로워서 사람을 상처입히기 쉽다. 미처 따라붙지 못한 책임감이나 신중함의 부재는 날카로운 마음을 막지 못한다.
끈기와 열정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이고 사랑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고 해도,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 음악, 혹은 당신이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도 상대는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려의 대상에 당신만 있고 상대는 없는 마음은 변명의 여지 없이 유해하다.
사랑은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고, 알맞은 답도 없어서 많은 과정과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원망할 수 없고, 매일 애타게 원하고 있으니, 우리가 사랑을 지배하거나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어여쁘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하는 것이 사랑 흉내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라면 조금 더 사려 깊을 필요는 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쫓는 듯한 관계는 불행함과 동시에 불안하다. 상대방이 도망치듯 멀어진다면 당신이 멈춰야 아무도 넘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이기적으로 할수록 본질과 멀어진다. 당장 가질 수는 있어도 오래 볼 수는 없는 사랑보다 당장 가질 수는 없어도 오래오래 볼 수 있는 사랑이 더 사랑스럽다. 늦은 밤에 문득 그 사람이 보고 싶으면 당장 전화하거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도 열 번, 아니 스무 번이라도 꾹 참아보는 것은 낭만이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편안한 밤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 꾸고 있는 예쁜 꿈이 쭉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단잠을 자고 일어나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사람을 빨리 보는 것보다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랑은 비밀스럽고 비겁한 사랑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친밀한 사랑에 가까울 것이다. 막무가내인 마음을 사랑이라는 핑계로 그 사람에게 떠밀지 말아야 한다.
- 「목덜미를 잡는 심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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