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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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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38994
ISBN
9791141615208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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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3-13
페이지, 크기, 무게 324쪽, 133*200mm, 421g
목차
프롤로그 7
1부 공장 11
2부 은단 97
3부 정전 197
에필로그 266

심사평 _283
수상 작가 인터뷰│이유리(소설가) _301
수상 소감 _317
저자소개
저자 : 함윤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가 있다.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제14회, 제1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내가 원하는 건 공장 전체가 정전되는 거야.
단 하루만이라도 말이야.
하룻밤만이라도 그 안의 일이 완전히 꼬여버리면 좋겠어.”

세상의 흐름을 모조리 멎게 하는 단 한 번의 깜빡임,
우리는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식 날, 홀로 교실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던 ‘막’에게 막의 소꿉친구 ‘은단’이 다가와 자신에게 한 가지 비밀이 있다고 말한다. 은단은 자신이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전류를 끊을 수 있다는 기묘한 고백을 한다. 사실 은단은 오래전부터 막을 짝사랑해왔고, 그 고백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세계로 막을 초대하려는 떨리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십대에까지 은단의 울적한 얼굴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13쪽)던 막은 그의 고백을 뒤로한 채 스무 살의 세상으로 성큼 나아간다. 그러나 무탈하게 대학을 다니던 시간도 잠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막은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학교를 휴학하게 된다. “초보환영/쉬운업무”(22쪽)라는 제약회사 공장의 구인 공고에 이끌린 막은 공장이라는 생존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함윤이 작가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인간이 부품화되는 공장에서도 따뜻한 마음들이 피어날 수 있음을 막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보여준다. 막은 그곳에서 ‘수지’와 ‘영준’을 만나 친구가 되고 그들을 통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를 소개받는다. 막은 라히루와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라히루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라히루가 사고를 당하고 공장에서 잘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라히루가 기계 오작동으로 손가락을 잃고, 공장으로부터 소모품처럼 버려지게 된 것이다. 라히루를 돕기 위해 막은 고민 끝에 수지가 속해 있는 노조에 가입한다. 그러나 스물한 살인 막에게 노조 활동은 어렵기만 하다. 노조에 가입된 사람들은 대체로 막의 부모 세대에 가깝고, 노조 모임에서는 막이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한다. ‘잠깐 일을 하러 나왔을 뿐인 대학생’으로 자신을 정의하던 막에게 ‘공장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낯설고 또 때론 부끄럽다. 결국 막은 노조 활동을 그만두게 된다. 그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신이 라히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없는지 고민한다.

막은 끝내 은단을 떠올린다. 막은 은단의 능력을 사용하여 공장을 멈춘다면, 그게 아주 잠시 동안의 정전이라고 할지라도 공장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막은 어떻게든 라히루를 위해 공장에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은단에게 내키지 않는 연락을 하게 된다. 막은 은단의 능력을 이용해 공장을 정전시킬 계획을 세운다. 과연 막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우정으로부터 비롯된 깜박거리는 희미한 빛줄기,
그 빛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함윤이 표 노동투쟁기

『정전』은 읽는 이의 시선에 따라 여러 겹의 층위를 드러내는 다채로운 소설이다. 공장을 정전시키려는 막의 긴박한 모험 서사이자 노조의 처절한 투쟁을 담은 노동소설이며, 스무 살이라는 모호한 경계에 선 인물의 성장 서사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노동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함윤이 작가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부품화되고 소외된 노동의 현장 속에서,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고 서로의 마음을 건네는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시스템이 멈추는 정전의 순간,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적인 유대와 사랑의 가능성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노동 서사는 특별하다. 『정전』에서 노동에 방점을 찍는 순간, 이 소설은 차가운 사회구조를 뚫고 나오는 뜨거운 인류애를 증명하는 가장 예리한 무대가 된다.

이 소설 속 노동을 응시할 때, 우리는 막이 지닌 복합적이고도 위태로운 정체성과 마주하게 된다. 막은 스스로를 현장에 완전히 투신한 노동자가 아니라, ‘잠시 일을 하러 나온 대학생’으로 정체화한다. 그는 시위 도중 마주친 젊은 직장인 여성들을 바라보며 “저도 당신들이랑 비슷한 무리에 속해 있었고, 원한다면 언제든 거기로 돌아갈 수 있어요”(125쪽)라고 되뇐다. 이는 그가 노동 투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늘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관찰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노동법을 공부하는 수지나 노조 위원장으로서 뜨겁게 투쟁하는 ‘조안’과 달리, 늘 어딘가 뻘쭘해하고 머뭇거린다. 머리로는 부당함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는 일에는 주저한다. 그러나 이러한 막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 시대 평범한 다수의 얼굴과 맞닿아 있다.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가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측의 입장에서 묵묵히 제 일만 하는 영준 같은 이도 있고, 수지처럼 정면으로 맞서는 이도 있다. 막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도, 곁에 있는 동료의 고통을 목격하고서 비로소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이도 존재한다. 작가는 막의 눈을 통해 전형화되지 않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소설에서 막의 성장 서사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작품의 가장 뜨거운 심장부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막의 모든 행동이 차가운 이성이나 치밀한 계산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감정에서 뻗어나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막이 노동 투쟁에 관심을 두고, 노조에 가입하고, 공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모든 계기는 거창한 사회정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공장에서 만난 수지와 영준에 대한 우정 때문이며, 라히루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막을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중심부에는 ‘노동’이나 ‘투쟁’보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비중 있게 놓여야 할 것이다. 막에게는 세상을 뒤집겠다는 또렷한 명분도, 누군가를 계몽하겠다는 거창한 대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뜨겁게 동요하는 마음이 있다. 사고를 당한 라히루가 한낱 ‘이주노동자 A씨’라는 무색무취한 기호로 기사에 기록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노, 부당하게 해고되어 쫓겨난 그를 한국으로 다시 데려오겠다는 절박한 열망, 한 계절을 지나며 몰라보게 늙어버린 수지를 향한 짙은 연민, 그리고 회사의 편에 서버린 영준을 향한 뼈아픈 양가감정까지. 막의 근육을 움직이고 그를 행동으로 이끄는 실체는 오직 이 생생하고도 비릿한 감정이다.

전류가 멈춰 있던 거대한 기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육중한 쇳덩이를 움직이게 하듯, 막은 바로 이 요동치는 감정들을 자신만의 전류로 삼아 나아간다. 이 움직임은 결코 찰나의 깜빡임으로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번지는 이 뜨거운 전류는, 공장의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에도 막의 내부에서 가장 밝게 타오르며 그를 단 한 걸음도 멈추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막이 선택한 투쟁이자, 간절한 마음이 빚어낸 가장 눈부신 성장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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