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마보융 (馬伯庸)
중국 현대 장르 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문학 귀재鬼才’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작가. 본명은 마리, 마보융은 필명이다. 1980년 내몽골자치구 츠펑시에서 태어난 만주족 출신이다. 상하이대학교에 진학, 뉴질랜드에서 유학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에 발표한 글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풍기농서』로 데뷔해 치밀한 자료 조사와 고증, 흡인력 있는 문장과 유머 감각으로 젊은 중화권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중편 「적막의 도시」로 2005년 중국의 SF문학상인 은하상을 받았고, 수필 「비바람-낙신부」로 2010년 인민문학산문상, 「공작동남비 코드」로 2012년 주즈칭산문상을 수상하며 수필가로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단편 코미디, 대중적인 역사 논문까지 다양한 글을 발표하면서 ‘문학 귀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골동품 감별 및 수집’이라는 소재를 차용한 소설 『고동국중국』(2012)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제4회 중국도서세력방 문학 부문 10대 도서에 선정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풍기농서』, 『삼국기밀』, 『용과 지하철』, 『초원동물원』, 『고동국중국』, 『장안 24시』 등이 있다.
역자 : 임주영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번역가협회에서 강사로 활동했으며,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운동화를 신은 마윈』,『경쟁 없는 비즈니스』,『늑대는 나란히 간다』등이 있다. 중국 『인민문학』 한국어판 번역에도 참가하고 있다.
사흘이면 상해버리는 까다로운 과일 여지를
영남에서 몇 달이 걸리는 오천 리 길 장안까지 신선하게 운송하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당 현종은 온갖 파견직을 만들어 사적인 일을 처리하곤 했다. 정식 품계는 없어도 황제의 명을 직접 수행하는 자리였기에 파견직은 명예와 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궁에서는 양귀비의 탄일인 유월 초하루까지 여지를 대령하라는 명을 내리며 ‘여지사’라는 파견직을 신설한다. 여지사로 임명된 이선덕은 오랜 세월 말단 관리로 일했던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라 느끼며 기뻐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여지사에게 주어진 임무가 실은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꿀에 절여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여지전’이 아니라, 사흘이면 색도 향도 맛도 변해버리는 ‘생여지’를 오천 리 떨어진 머나먼 영남에서 장안까지 운송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선덕의 수염이 덜덜 떨렸다. 제 귀로 들은 말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생여지요? 서령께서도 여지의 특성을 잘 아시잖습니까. 하루 지나면 색이 변하고, 이틀이면 향이 변하고, 사흘이면 맛이 변하는 것을요. 영남에서 장안까지 못해도 오천 리 길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시간 안에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특사 자네가 애를 많이 써야겠지. 성상께서 기다리시니 말일세.” 류 서령은 냉랭하게 한마디하고는 악의가 가득 담긴 말을 덧붙였다. “잘 좀 보게. 조서에 분명히 써 있잖나. 성상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남의 여지라고!” (33p)
얼마 전 잔뜩 빚을 내 장안성 끄트머리에 있는 집을 겨우 구한 이선덕은 자신만 믿고 있는 아내와 딸아이를 걱정하고, 친구들은 그에게 서둘러 합의이혼이라도 해야 가족을 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이선덕은 영남에 내려가 지역 관리들의 도움을 받고, 여지 재배지도 직접 둘러보며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그러나 실패로 귀결될 일임을 알아챈 영남 지역의 총수 하이광은 이선덕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 조신민 역시 이선덕의 성패에 따라 기회를 잡을 틈만 노린다. 돈도, 인맥도, 빠져나갈 방법도 없는 이선덕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여지 농장 주인의 호의뿐이다. 이선덕은 과연 때맞춰 장안까지 신선한 여지를 운송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양귀비의 미소를 위해 희생되었던 백성들의 삶에서
집도 성과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짚어내다
이선덕이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여지사 임무는 양귀비의 일순간 기쁨을 위함이었으나, 수많은 진상품 중 하나에 불과했던 여지 한 알에는 큰 희생이 뒤따랐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조정으로부터 외면당한 말단 관리의 사투뿐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의 노역과 세금, 베여나간 수십 그루의 여지나무, 쓰러질 때까지 달려야 했던 말, 위험한 길을 달린 기수들이 있었다. 여지를 맛본 양귀비는 환하게 웃었지만, 힘이 없어 온몸으로 고난에 부딪혀야만 했던 이들의 삶에는 일말의 연민이나 존중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그들이 악의를 품었었다면 묻힐 땅 하나 없이 죽었을 테고, 일말의 인정이 있었다면 손쉽게 구해주었을 것이다. 생사 여부는 오롯이 그들 신선의 조화에 달렸고, 정작 자신은 생을 한 점도 장악하지 못하는 하찮은 버들개지 부평초와 같았다.
이런 지극히 황당한 느낌은 역로를 내달릴 때보다도 깊은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이 일은 귀비가 무심코 내뱉은 감탄사 한마디로 시작해 마침내 귀비의 웃음소리로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들 귀비를 에워싸고 떠받드는 데 온 힘을 다하느라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327p)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헤아리지 않고 손쉽게 명령을 내리는 황제와, 목숨과 돈이 아쉬워 쩔쩔매며 문제를 해결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현대사회와 닮아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불안정한 일자리, 박봉, 높은 세금, 전 국민의 꿈이 되어버린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아래 이리저리 치이며 매일을 살아내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이선덕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보융은 ‘여지를 좋아했던 양귀비를 위해 신선한 여지를 진상했다’라는 역사 속 한 문장에 가려진 이들을 불러내고, 과거의 이야기에 빗대어 먹고사는 일에 매몰되어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의 애환을 애틋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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