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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마침내 빛날 : 묵묵히 세상을 바꾸는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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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84818
ISBN
9791124128961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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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7-09
페이지, 크기, 무게 280쪽, 135*205mm, 364g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시화지구의 바다를 메꿔라
쫓겨난 사람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사람들
시화공단을 바꾼 사람들

2부 시화공단 3블록에 똬리를 틀다
노조 결성 그리고 투쟁
눈물

3부 노동상담에서 노동연구로
움직이는 사람들
조사에서 조직으로

4부 노조를 만나다
노동조합으로의 안내
꿈틀대는 작은 공장의 거인들
희망 일구기

나가는 말

[부록] 시화공단의 이해
저자소개
저자 : 공계진
1958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80년 고려대학교 입학
1983년 5·18기념 학내시위로 제적당한 뒤 구속
1985년 구로동맹파업 주동 혐의로 구속
1995년 안산한벗노동자회 회장 역임
2001년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설립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2008년~2012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 원장 역임
2013년~현재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중
출판사 서평
산업단지가 아닌 ‘밀려난 사람들의 생존지’,
시화공단은 누구의 땅이었고, 누구의 몸으로 채워졌는가

군사정권의 추진력은 놀라워서 1984년에 ‘해면매립장기 기본계획을 위한 타당성조사’를 한 후 불과 2년 후인 1986년부터 시화지구 매립 사업과 방조제 공사가 시작되었다. 염전노동자들과 어민들이 쫓겨난 곳에 덤프트럭 수천 대가 흙을 퍼부었다. 그 흙에 눌려 염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닷물에 몸을 의지하며 살던 작은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흙을 쌓아 만든 대지에는 공장이 들어섰고, 그 공장은 서울 문래동 등에서 밀려난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6~7쪽)

이 책의 출발점은 시화공단을 단순한 산업단지나 국가경제 발전의 산물로 보지 않는 데 있다. 시화공단은 애초부터 누군가의 삶터를 밀어내고, 또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밀어넣어 만든 공간이었다. 바다와 염전, 갯벌을 메워 공장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어민과 염전 노동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동시에 서울 문래동, 인천 남동공단, 안산 반월공단 등지에서 밀려난 중소영세 공장과 노동자들이 시화공단으로 흘러들어왔다. 이 점에서 시화공단은 ‘개발’의 이름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추방, 생계의 막다른 선택, 그리고 산업정책의 폭력성이 깊이 새겨져 있다.

문 씨, 남 씨, 안 양, 반 씨, 조 아줌마, 호 씨는 모두 각기 다른 경로로 시화공단에 왔지만, 공통적으로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행사한 사람들이 아니다. 문래동 도금단지에서 온 노동자는 공해산업 이전 정책에 따라 공장과 함께 이동했고, IMF 이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시화공단의 작은 공장으로 들어왔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여성은 갯벌을 잃고 공장노동자가 되었으며,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가족 생계를 위해 낯선 공단의 가장 낮은 자리로 들어왔다.

저자는 시화공단의 역사가 노동자 개인의 이동사가 아니라 한국 산업화가 주변부 노동자들을 배치해온 역사라는 점에 주목한다. 시화공단은 수도권 공해산업 이전, 대기업 하청기지 조성, 중소영세업체 집적, 이주노동력 유입이 겹쳐진 공간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몇몇 노동자의 고단한 사연을 듣는 일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하층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화공단을 ‘산업단지’가 아니라 ‘밀려난 사람들의 생존지’로 다시 읽어야 한다.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원청의 적기 납품 요구를 결코 거절할 수 없는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안전은 사치였다. 그들은 비용을 아끼고 발주 물량을 맞추는 데만 집중했다. (……) 작은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는 비일비재했고 대형 프레스에 눌려 그야말로 뼈가 으스러지며 사망하는 사고도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전국 재해율이 0.77퍼센트인데 안산시흥은 1.06퍼센트나 되었다. 하지만 산재 처리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오죽하면 한 해에 잘린 손가락이 마대자루 한 포대를 채운다는 말이 있을까. 그래서 안산에는 손가락을 봉합하는 정형외과가 많았다. (29~30쪽)

2024년 6월 화성 아리셀 화재로 숨진 23명 중 14명은 시흥시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아마도 그들 중 대부분은 정왕본동 어딘가의 허름한 원룸에 살았을 것이다. 시화공단에서도 밀려난 이들이었다. 경기가 나빠지면 공장들은 가장 먼저 외국인 노동자들을 잘라냈고, 해고된 이들은 파견업체가 지시하는 대로 조건 따지지 않고 일터를 옮겨다녔다. 화성 아리셀도 그렇게 배정된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노조나 노동운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노조는 곧 ‘돈 버는 데 방해’라고 여겼다. (204~205쪽)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아픈 질문은 ‘왜 이렇게 오래 일했는데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는가’이다. 시화공단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부지런히 일한다. 그러나 그 성실함은 안정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 산재 위험, 휴게실 부재, 공동식당의 낮은 식사 질, 통근의 어려움, 낮은 사회적 존중이 반복된다. 손가락이 잘리고, 유해물질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긴 시간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시화공단 노동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책 속 작은 공장들은 대체로 다단계 하청구조 아래에 놓여 있다. 원청은 납품단가를 낮추고, 작은 공장 사장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을 억제한다. 안전장치가 생산속도를 늦춘다는 이유로 무력화되고, 휴게 공간은 비용과 공간 부족을 이유로 뒤로 밀린다. 그 결과 노동자는 오래 일하지만 적게 벌고, 몸을 다치면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를 요구받으며,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문제는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의 왜곡이다.

또하나 중요한 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가 흐려진 작은 공장 현실’이다. 책은 시화공단의 정규직을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표현한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대기업 정규직과 전혀 다른 세계에 놓여 있고, 작은 공장 내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처우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차별은 존재하고 파견, 사내 하청, 일용, 이주노동이 뒤섞이면서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공장 내부에서도 더 낮은 층위를 만들어낸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높이고, 안전과 휴게권을 보장하며, 식사와 통근 같은 생활조건까지 개선하지 않는다면 작은 공장 노동자의 삶은 또다시 다음 세대에게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법적 보호만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노조활동을 할 권리가 있는 노동자’

활동가들은 DMZ 한구석의 작은 밭에 조리로 물을 몇 번 뿌리고는 마치 광활한 DMZ 전체에 물을 주었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착각을 인정하지 않은 채 ‘물을 줘도 받아먹지 못한다’며 은근히 노동자들을 탓하곤 했다. (192쪽)

시화공단 노동사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우리의 노력과 마음을 전달할 정도는 아니었었던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식의 시건방 떠는 소리를 할 게 아니라 ‘더 찾아다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조직화에 왕도는 없다. 만남이 없으면 조직도 어렵다는 것이야말로 진리 중의 진리다. 시화공단에서 노동조합이 뿌리내리지 못한 근본 원인은 바로 그 만남을 충분히 또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한 데 있었다. (196~197쪽)

이 책의 중요한 성찰은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노조와 노동단체는 왜 그들을 충분히 만나지 못했는가’에 있다. 책은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해서 조직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은 노조를 알지 못했거나, 노조를 대기업 노동자의 것으로만 이해했거나,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두려워했거나, 실제로 노조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17년 동안 같은 공장에 다닌 김복순이 단 한 장의 홍보물도 받아본 적 없다는 이야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시화공단에서는 점심시간 공동식당 앞, 정왕역, 공단 입구 등에서 홍보물을 배포했지만, 통근버스로 출퇴근하고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노동자에게는 그 홍보물이 닿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공단을 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난 노동자는 극히 일부였고, 그마저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책은 이를 두고 “마치 광활한 DMZ에 물 한 주전자를 붓고 전체에 물을 주었다고 착각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작은 공장 조직화의 실패 원인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조직화는 선전물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점에 주목한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은 한 번의 홍보물, 한 번의 상담, 한 번의 캠페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래 참고 살아왔고, 노조에 대한 두려움도 크며, 사장과의 관계도 복잡하다. 따라서 그들을 조직하려면 빠른 성과보다 더딘 만남, 반복적 접촉, 생활문제 해결, 신뢰 형성이 필요하다는 성찰이다. 후반부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기다림의 미학”은 바로 이 지점을 말한다. 조직가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야 하며, 노동자의 속도에 맞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노조가 먼저 노동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기다리다보면 “노동자도 노조를 자기 삶의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의제는 광장으로 던졌다고 해서 저절로 사회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특히 노동문제는 더 그렇다. 노동자들이 그 의제를 삶의 자리에서 직접 밀어붙이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현실의 문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슈 파이팅의 전제는 늘 ‘조직화’다.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이끄는 그 과정, 즉 조직화는 어떤 전략의 변화 속에서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근본이다. (177쪽)


책 속으로

시화공단은 노동자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병에 걸리거나 손가락이 잘리는 위험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머무르고 싶어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갈 수만 있다면 모두 떠나고 싶어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이주노동자들은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길 꿈꾸며 일하고 있었다.
--- p.44

자본이 정리해고를 쉽게 하려고 만든 사내하청 형식의 노동자들은 원청 기준으로 볼 때 비정규직이 명백하다. 그러나 국가기관인 통계청은 이를 임의로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 p.133

시흥시 정왕동의 시화공고에서 군자고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카페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바로 파견업체들이다. 파견업체들이 카페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은 그곳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커피점은 커피를 팔아 돈을 벌지만 파견업체는 노동자를 사고팔며 돈을 벌었다. 그 거리에서는 노동조차도 상품이 되고 사람의 일상이 이윤의 단위로 나뉜다.
--- p.148

그 결과 지금의 정왕본동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사는 동네가 되었다. 낯선 언어가 골목마다 흐르고 국적이 다른 이들이 한동네에 모여 살며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 정왕본동은 이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만이 아닌 ‘삶’을 일궈내는 공간이 되었다.
--- p.152

의제는 광장으로 던졌다고 해서 저절로 사회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특히 노동문제는 더 그렇다. 노동자들이 그 의제를 삶의 자리에서 직접 밀어붙이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현실의 문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 p.177

그들의 가슴에는 구차한 삶을 끝내고 싶다는 열망이 차츰 고조되었다. 그러나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 그 삶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그리고 반드시 길이 있다고 말을 해준다면 아마도 그들은 그 삶을 끝내고 다른 내일을 시작할 것이다.
--- 233-234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사람들을 만나보니 뭔가 달랐어요. 제게 무언가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것 같아 답답했었거든요. 이 굴레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잡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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