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심지 않아도 8
쓸모의 시간 38
눈의 종유 64
아이는 울지 않았다 84
스피커 104
하다만 씨의 하다 만, 이야기 130
[해설] 말, 소리 그리고 이야기(임철우 소설가) 156
저자소개
저자 : 김동현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국민대학교에서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4·3문학과 오키나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욕망의 섬 비통의 언어』,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공저), 『김석범×김시종-4·3항쟁과 평화적 통일독립운동』(공저),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저), 『전후 오키나와문학과 동아시아』(공저), 『언어전쟁』(공저) 등이 있다. 제주의 진보적 예술운동 단체인 제주민예총 이사장으로 있으며 제주4·3예술운동과 제2공항 반대 투쟁 등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 제주의 시간을 『제주작가』에 소설과 평론을 발표하며 보내고 있다.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의 ‘기억 서사’, 그 다음 장면
최근 한국문학은 역사적 폭력을 정면이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흐름을 만들어왔다. 광주와 제주를 통증과 호흡으로 되살린 작업들, 증언과 애도, 전이된 트라우마의 윤리를 갱신해온 일군의 작가들의 자리가 그것이다. 『오래된 숨』은 이 흐름과 나란히 서되, 질문을 한 칸 더 밀어붙인다. ‘기억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가 아니라, ‘애도가 제도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말해지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국가가 기억을 공인한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이 침묵하게 된 존재들 - 그 침묵을 이 소설집은 흙냄새 같은 신체 감각, 방언으로 흘러나오는 말, 찢기고 불태워진 종이의 물질성으로 번역한다. 사건은 좀처럼 정면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말하지 않음’을 통해, 4·3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권력의 문법으로 되살아난다.
‘증언의 문학’에서 ‘증언 이후의 문학’으로
현기영·김석범으로 대표되는 제주 4·3 문학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증언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오래된 숨』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기억은 언어 이전에 몸에 새겨진다 이 일관된 문제의식 위에서,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산 자의 몸 안으로 옮겨온다.
‘안전한 희생자’ 바깥을 응시하다
4·3의 제도화는 ‘무고한 양민’이라는 합의된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그 바깥의 존재들 - 입산자, 떳떳하지 못한 생존자, 외면한 방관자,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잃은 자 - 을 매끄럽게 지운다. 『오래된 숨』은 바로 그 지워진 자리를 응시한다. 「쓸모의 시간」의 화자는 피해자도 영웅도 아닌, 발포의 현장에서 도망친 아들이다. 소설은 손쉬운 애도를 허락하는 대신, 종결되지 않는 죄책감과 견딤에 머문다.
4·3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다
이 소설집의 가장 날카로운 카드는, 4·3을 단 한 번도 명시하지 않는 소설들이다. 노동 진압의 현장을 ‘무덤이 된 공장’으로 그린 「하다만 씨의 하다 만, 이야기」, 토벌의 스피커와 오늘날의 마을 방송을 ‘소리=권력’의 알레고리로 포갠 「스피커」는 4·3을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는 권력의 문법으로 읽어낸다. 학교 폭력과 성폭력의 기억이 4·3의 학살과 겹쳐지는 「아이는 울지 않았다」, 신화와 발굴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원형을 환상적으로 그린 「눈의 종유」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은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시대에서 시대로 전이되는 구조라는 것 - 그것이 이 소설집이 도달한 인식이다.
■ 작가의 말
‘견디다’라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쓰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흘러들어왔다.
오래 붙들고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세상의 길들에서 때론 헤매고 넘어지더라도,
이야기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침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숨도 멈추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숨도, 말하지 못해 막혀 버린 숨도.
단단하게 굳어진 그것들은, 문득, 다시 피어오른다.
심지 않아도 피어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나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읽고 쓰는 일이 결국은 살게 만드는 숨이었다.
이야기가 무덤 안에 있는지, 무덤이 이야기 안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끝내 알 수 없을지라도,
들을 수 없고, 들리지 않는 모든 것들에게
다가가야만 했다. 물음은 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물음으로 함께 앉아 견디는 것만이 물음의 목적이었다.
많은 것들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혼자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숱한 문장들과 나의 가수 이승환.
내가 삼킨 문장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내 살과 뼈를 닮은 기훈과 재이에게 이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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