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구두리
거제 바다를 보며 자랐다. 초등학생 때 연극을 처음 보았고, 고교 시절부터 연출가를 꿈꿨다. 2007년에 첫 희곡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를 썼다. 이후 다양한 글쓰기를 이어가다가 2023년부터 ‘구두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두운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며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상상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제19회 차범석희곡상을 받았으며, 희곡집 『금성여인숙』을 펴냈다.
저자 : 극단 미인
‘아름다운’ 혹은 ‘아름답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연극 집단. 2007년 창단 이래 지금까지 창작극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연극적 미학과 사회적 가치를 담아 여성과 노동, 정치 등을 대전제로 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반영하여 무대에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시도하며 동시대성을 찾아가는 중이다. 대표작으로 <금성여인숙> <수성다방> <화성골 소녀> <거의 인간> <아버지들> <공장> 등이 있으며, 연극 <아들에게>로 제60회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을 받았다.
출판사 서평
우리의 노동 현장은 가혹하다. 일을 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는다. 운이 좋아 뉴스가 된다 한들 큰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희곡 「말뫼의 눈물」 속 ‘빌런’은 바로 그러한 ‘현실’이다. 한 달에 한 명꼴로 죽어나가는 노동 환경, 옆자리의 동료가 죽어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근무 시스템, 참다못해 죽을 각오로 골리앗 같은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파업을 끝낸 이들에게 돌아오는 막대한 액수의 피해보상금에 대한 이야기, 그 실감할 수 없는 뉴스들은 모두 지옥보다 더한 현실이다. 구두리는 그런 일상 속에서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불행과 고통 앞에서 도망가거나 끝내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다가도 어느 한순간, 멈춰 서 꿋꿋이 버티는 마음들을 지나치지 않는다.
_이보람(극작가)
책 속에서
황진수, ‘노동의 역사’라는 책을 펼쳐 든다.
황진수의 반대쪽으로 한복을 입은 강주룡이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다.
황진수 주룡 누님, 저에게 힘을 주이소. 누님! 제발!
강주룡 나는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하는 강주룡이올시다.
황진수 그래, 일제시대를 생각하자. 여자 몸으로 그 위에서 얼마나 무서웠겠노.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주룡 올해로 서른하나 되앗시오.
황진수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양철 지붕 밑에서 화로를 안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했다.
강주룡 내가 지금 이 을밀대 지붕에 오른 것은
황진수 고무 냄새 때문에 늘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팠다.
강주룡 우리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말하고자 함입니다.
황진수 회사의 갑작스러운 임금 인하 통보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파업을 시작했다.
강주룡 죽고 싶을 만큼의 비통함으로 몸을 던지려 했으나
황진수 돈을 못 받아 굶어 죽으나 파업하다가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웠다.
강주룡 어차피 죽을 목숨 억울함이라도 풀고자 광목 한필을 사서 밧줄처럼 엮어 12미터나 되는 이곳을 올라왔소.
황진수 회사는 일본 경찰을 불러 밤 11시에 직원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았다.
황진수, 순간 보던 책을 덮어버린다.
호각 소리가 들린다.
강주룡,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본다.
거친 바람에 강주룡의 치맛자락이 날린다.
황진수 이런 개새끼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헌법에 나와 있다! 노동3권 보장하라!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여기 사람이 있다!
「말뫼의 눈물」에서
김수현 미쳤나 봐요. 어떻게 거기까지 따라 들어간 거지?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표를 들고 학원 밖에 서 있더라고요. 한국무용 선생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몸이 가늘었던 거야. 어쨌든 그 여자에 대해 알아낸 게 있다는 사실에 기뻤어요. 전 그 시간표를 구겨버렸어요. 춤출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 여자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아는 거라고는 춤춘다는 것이 전분데 전 뭔가 더 알아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싸우고 있는 거 절대 아니라면서도 전 이미 그 여자와의 경쟁을 시작한 것이었죠. 말도 안 되게 전 그랬어요. 구겨진 시간표를 잘 편 다음 시간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다음 주 전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현24시를 닫고 학원으로 향했어요. 2시에 그가 여지없이 담배를 사러 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딱히 뭐라고 하겠어요? 그를 돌려보내고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돌아가자, 돌아가자’ 백 번도 더 생각했지만 ‘그냥 취미 생활을 시작한 거뿐이야’라는 생각이 백한 번이었던 관계로 전 한국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신의 손」에서
강복구 양식장에서 떠밀려 오는 하얀 주브 있잖아예? 그거하고예 엄마 몰래 빨랫줄을 걷어가 주부 사이를 잘 엮은 다음에 위를 합판으로 마무리하마 완벽하지예. 그래 다 완성하고 나이 고마 해가 지잖아요. 그렇다고 타보고 싶어죽겠는데 우째 그냥 드가겠는교. 밥 먹고 다시 헤쳐 모이가 그걸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선창 조금 벗어났다 싶디마는 마 해가 떨어지가 앞뒤를 분간을 못 하겠는기라. 나는 돌아가자 그러고 진수는 더 가보자 그러고 그래 한참 옥신각신하는데 그러다 내 쓰레빠가 바닷물에 빠지뿌릿네. 쓰레빠 빨리드가는 그 바닷속은 암것도 비도 안 하고 사방은 껌껌하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내가 세이라 티도 못 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으이까네 진수가 내 어깨를 꽉 잡으마 ‘행님아 나만 믿어라. 내가 꼭 집에 바래다주꾸마’ 그라마 다시 날로 꽉 안아주는데 진수 어깨 너머로 하늘에 별이 어찌나 많던지 어느 한 자리 비는 곳 없이 마 총총히 박히가 내 위로 이래 쏟아질 것만 같았다니까예. 꼭 오늘 같았었지요.
강복구, 김수현에게 손짓하며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준다.
김수현, 강복구 옆에 앉는다.
강복구 별 참 예쁘지예?
김수현 그렇네요. 복구 씨 진수 많이 좋아했나 보다.
「어디 가세요 복구 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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