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척한다
자꾸만 나를 안다고 한다
우리들의 봄
내 삶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추락하는 외줄 타기 같다
꽃이 진 자리에 돋는 파란 새잎은 꽃의 눈물
퍼즐 판 속 아이
집을 나가고 싶어
머리를 부숴 버리고 싶어
살다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넌 아무 일도 없었어
낯선 곳의 그 애
지하의 이카로스
내 잘못이 아니야
기차가 가는 곳
또 다른 나
바다의 이카로스
작품 읽기(보린)
지은이의 말
저자소개
저자 : 이금이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1962년 충북 청원군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유년기부터 이야기꾼 할머니와 라디오 연속극, 만화책 등과 함께하며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세계 문학 전집을 섭렵하듯 읽으며 작가 되기를 꿈꿨다. “내가 어린이문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린이문학이 나를 선택했다.”라고 말할 만큼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모색기였던 1980년대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으로 새벗문학상에 당선하면서(1984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작가는 1990년대와 2000년대로 이어진 우리 어린이문학의 폭발적 성장과 청소년문학의 태동 및 확장을 이끈 작품 수십 종을 펴내며 독자와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특히 어린 독자들의 오랜 요청으로 후속작이 거듭 나온 동화 ‘밤티 마을’ 3부작, 우리 어린이문학의 문학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 ‘지금 여기’의 청소년이 품은 상처와 공명한 이야기로 본격 청소년문학의 출발점이 된 『유진과 유진』 등이 어린이-청소년-어른 모두의 큰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동화 『망나니 공주처럼』 『땅은 엄마야』, 장편동화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도들마루의 깨비』, 동화집 『사료를 드립니다』 『금단 현상』 『영구랑 흑구랑』, 장편 청소년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소희의 방』, 청소년소설집 『청춘기담』 『벼랑』, 창작방법론 『동화 창작 교실』 등도 독자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그동안 1985년 소년중앙문학상, 1987년 계몽사아동문학상, 2007년 소천아동문학상, 2012년 윤석중문학상, 2015년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20년엔 작가의 업적 전반을 평가해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어린이청소년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한국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출판사 서평
아동 성폭력과 청소년기의 상처를 아프게 마주한 문제작
이 작품은 아동 성폭력을 다룬 문제작으로, 출간 즉시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무거운 사회적 이슈이자 국내 어린이청소년문학계에선 유례없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두 유진은 같은 유치원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그 뒤 각자의 삶을 살다가 15살이 돼 해후한다. 같은 일을 당했지만 부모들의 다른 대처로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유진. 이들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기억과 파헤쳐지는 상처, 예상치 못한 후유증을 직면하는 과정과 함께 흡인력 강하게 전개된다. 두 유진의 고통스러운 진실들이 미스터리한 서사 장치와 밀도 높은 심리 묘사 속에서 점차 드러난다.
아울러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 간의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초점화된 특정 사건과 확장된 삶 전반을 교차해가며 어린이-청소년-어른 저마다에게 ‘상처’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가야 할지에 관한 깊은 통찰을 매우 설득력 있게 형상화해낸다. 또한 소재는 무겁지만 어둡게만 그려지진 않았는데, 청소년들의 재기발랄한 일상에 밀착해 그네들의 사유와 언어를 익살스레 그리는 한편 일상에 스민 폭력과 상처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그려냄으로써 더 보편성 있는 이야기로 확장해간다. 유진과 유진이 서로를 ‘또 다른 나’로 인식하며 ‘상처를 모아 지은 날개’로 날아오르기를, 떨어지더라도 높이높이 날아오르기를 기원하며 다짐하는 모습에서 독자는 “슬프고 무서우면서도 달콤하게” 희망적인 시선을 품게 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작가가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
출간되고서 16년 동안 독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지만 개정판을 준비하는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유아동 대상 성범죄는 날로 진화하며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의 일반적인 현실 또한 나아졌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2차 가해와 폭력 또한 만연하다.
이러한 가운데 여전히 종요로운 인식과 언어는 “네 잘못이 아니야”다. 이 단순한 말이 발화되기 어려운 사회라면 이 작품은 아직도 “네 잘못이 아니야”가 갈급하다는 점을 밝히는 문학적 증거이자 개정돼 읽혀야 할 이유가 된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판 출간의 당위가 하나 더 있다. 이는 개정판에 실린 「지은이의 말」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쓴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동 성폭력 피해를 소재로 한 동기가 무엇인지 언급한 내용에 담겨 있다. “오랫동안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며 밝혔으니, 작가의 이 내밀한 고백을 이 작품의 주제와 연결하며 책으로 확인하길 권한다.
달라진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조응한 오늘의 고전
이 작품은 새로 시작하는 ‘이금이 청소년문학’ 시리즈의 첫 책이다. “경계에 선 청소년의 ‘지금 여기’를 살피고, 꿈과 상처가 엉킨 마음과 공명하며, 밝아야 할 미래를 응원하는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작가가 그동안 출간해온 청소년문학 작품을 새로이 갈무리하고 개정해서 내는 시리즈다.
이 개정 및 시리즈화는 단순히 책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할수록 개선되고 기준이 높아지는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조응해 달라진 시대감각을 입히는 작업이다. 『유진과 유진』 개정판 또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표현들을 예민하게 점검하고 바로잡는 데 공을 들였다. 또한 내용은 바꾸지 않는 선에서 문장을 더 쉽고 편하게 읽히도록 상당 부분 손봤고, 세부 설정이나 묘사에서 개연성을 강화하고 한층 자연스러워지도록 일부 보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이 뒤처진 시대감각을 탑재한 오래된 유명 작품이 아닌, 그야말로 나날이 거듭나는 오늘과 오늘의 고전이 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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