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두 작가가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연결’의 기획이다. 종합 출판 브랜드 ‘북다’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새로운 중단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의미 있는 ‘크로스’를 선보인다.
파편화된 세계에서 공통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다. 1999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일식』으로 강렬하게 등장한 이후 매 작품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일본 문학계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해온 히라노 게이치로와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한국 문학계를 대표해온 김연수의 특별한 협업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문학적 응답일 것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근접한 세계』에서 두 작가는 ‘책’이라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매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각각의 세계’를 교차하며,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루의 방식을 보여준다. 서로 근접해 있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두 작가의 문학적 시공간이 교차하며 만들어낼 새로운 시너지를 통해 독자는 세계를 이해하는 보다 확장된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목차
우리들의 실패 김연수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 히라노 게이치로
크로스 인터뷰|전시되지 못한 것들의 자리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김연수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스무 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이 있다.
저자 : : 히라노 게이치로
일본의 소설가. 1975년 아이치현 출생. 교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 1999년 대학 재학 중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작품 『일식』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품마다 변화하는 다채로운 스타일로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번역·소개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 『장송』 『센티멘털』 『결괴』 『던』 『공백을 채워라』 『투명한 미궁』 『마티네의 끝에서』 『한 남자』 『본심』,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 『생각하는 갈대』 『‘멋있다’라는 건 무엇인가』 『사형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론』 등이 있다.
2024년 소설집으로는 10년 만의 신작인 『후지산』을, 2025년 여름에는 지난 7년간 집필한 문학론·예술론을 수록한 에세이 『문학의 쓸모는 무엇인가』와 교양서 『당신이 정치에 대해 말할 때』를 출간했다.
역자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인형 탐정』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칠드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치오 슈스케의 『스켈리튼 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그림자밟기』,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시리즈를 비롯해 『인사이트 밀』,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도미노』, 『덧없는 양들의 축연』, 『거대 투자 은행』, 『소녀지옥』, 『침묵의 거리에서 1, 2』,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백년법 상,하』, 『골든애플』 등 다수가 있다.
〈크로스〉는 해외 작가 한 명과 한국 작가 한 명이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중단편소설을 창작하고, 그 두 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서로의 텍스트를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는 하나의 주제에서 출발하되, 두 작가가 지닌 로컬리티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통해 동시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이해를 함께 조망하고자 하는 기획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준비된 이번 프로젝트에서 두 차례의 원격 화상 대화를 거쳐 두 작가가 공유한 키워드는 ‘윤리적 딜레마’였다.
그렇다면 왜 ‘윤리적 딜레마’일까. 우리는 ‘윤리적’이라고 말할 때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을 떠올리지만, 현실의 여러 복잡한 관계와 얽힌 맥락 속에서 그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이 이미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윤리적 딜레마는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사이의 번민이 아니라 나의 옳음, 나의 진실 그 자체에 대한 번민에 가깝”(김연수 「크로스 인터뷰」, 174쪽)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오늘날 현실에서 ‘윤리적 딜레마’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철학적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프리즘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얼굴이 있다면,
그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문학적 사유의 ‘교집합’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우연히 타인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에게 어떠한, 또 얼마만큼의 윤리적 책임이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주인공 미즈마키 가스미가 존경해왔으나 이제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아틀리에에서, 그가 은밀히 간직해온 사진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면 지금 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결정적 순간」, 167~168쪽)
당사자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금, 사건의 정황도 진실의 실체도 분명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스미는 침묵할 수도,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 유고전을 개최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복잡하고 난처한 상황의 한복판에 주인공을 세워둠으로써, 작가는 윤리적 딜레마를 ‘문제 그 자체’로 작품 속에 제시한다. “반드시 그 답을 작가가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대답할 수 없는 아포리아만이 쓸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히라노 게이치로 「크로스 인터뷰」, 176~177쪽)라는 인터뷰 내용처럼 작가는 딜레마의 속성을 기록의 일부, 법률 조항의 발췌, 노트의 인용문, 신문 기사, SNS 타임라인 등을 교차 편집하는 방식으로 입체화해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자리를 열어둔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소설의 화자이자 기자인 ‘나’가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된 인물 ‘손동하’를 인터뷰한 내용을 소설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대의를 위한 자기희생이 가치 있다고 믿으면서도,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공공을 위해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디까지 신뢰”(히라노 게이치로, 190쪽)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이 문제는 문학의 중요한 테마가 될 수밖에 없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는 뜻이죠. 그 말대로 세상은 나의 후회와 희망 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변해가기만 했습니다. (……)
세상 모든 것은 짚으로 만든 개일 뿐입니다. 잠시 존재하다가 그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지요. 문자와 전화로 은연중 제게 자살을 종용하던 자들에게는 저 역시 짚으로 만든 개일 뿐이었겠죠.” (「우리들의 실패」, 49~50쪽)
인간의 삶의 속성이 아무리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을지라도, “우리는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어떤 인간이 될지 선택해야만”(김연수, 198쪽) 한다. 특히 윤리적 딜레마의 순간에 요구되는 것이 바로 ‘결단’이며, 그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곧 ‘상상력’일 것이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다정함”이란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통해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미래적 시점’에서 오는 것”(김연수, 201쪽)이라고 말한다.
두 작가가 ‘크로스’를 경유해 도달한 장소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대상에 대한 내면적 이해와 동시에 그 주변 관계를 조망하는”(히라노 게이치로, 196쪽) 소설가의 다정한 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실린 두 편의 소설 시점은 ‘현재’도 ‘과거’도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미래적 시점’일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마지막에 수록된 두 작가의 「크로스 인터뷰|전시되지 못한 것들의 자리」는 서로의 사유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낯설면서도 긴밀한 감각을 보여주어, 독자에게 ‘연루된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앞으로도 이어질 유의미한 ‘크로스’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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