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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빛 해변의 소설 (워터프루프북) - 민음사 워터프루프북
김혜진 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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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83247
ISBN
9788937449406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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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6-19
페이지, 크기, 무게 64쪽, 127*182mm, 64g
책소개
여름에 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는 통계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전통적 관점에 따르면 여름은 소설 판매율이 떨어지는 계절이라고 한다. 여름엔 떠나야 하고 떠날 땐 책보다 중요한 게 더 많으니까. 그럼에도 여름과 독서가 제법 잘 어울려 보이는 까닭은 뭘까. 매해 여름이면 작가와 매체 들이 앞다투어 ‘휴가철에 읽을 소설’을 추천하는 탓도 있겠고 ‘서머 리딩’이나 ‘비치 리드’ 같은 출판 마케팅의 영향도 있을 것이나, 그보다도 여름 특유의 시간 감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름은 일상의 리듬이 느슨해지고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쉬운 시간이다. 휴가, 여행, 긴 낮과 짧은 밤은 현실의 밀도를 잠시 제쳐두고 그 틈을 이야기로 채우기 좋게 만든다. 와중에 백미는 밤이 짧다는 것이다. 여름의 시간에는 묘한 조급함이 깃들어 있다. 해는 길지만 밤은 금세 지나가고, 그 짧음은 곧 끝나 버릴 것 같은 예감을 남긴다. 이러한 감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오래 지속되기보다 한순간에 소진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 여름에만 가능했던 일”이라는 말은 쉽게 추억과 상실의 형태를 띤다. 밝고 뜨거운 계절이라는 조건은 감정을 흐리기보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대비시키고, 그 결과 여름은 다양한 감정들이 짧은 시간 안에 응축되어 드러나는 시기로 남는다.

여름의 기이한 시간성을 보여 주는 소설 2편을 묶었다. 권혜영 작가의 단편소설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는 퇴사 이후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아가는 ‘나’의 느슨하고 무중력에 가까운 시간을 따라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던 ‘나’는 우연히 희귀 띠부씰을 거래하러 나갔다 아이들이 미끄럼틀 위로 물건을 굴려 보내는 장면을 목격한다. 누구도 타지 않는 미끄럼틀, 대신 쓸모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기묘한 풍경. 그것은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닮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반복 속에서 미묘하게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 세계. 무의미하고도 집요한 반복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내는 느슨한 시간의 감각과 겹쳐진다.

김혜진 단편소설 「줄넘기」는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뒤 공원을 배회하던 ‘나’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줄넘기를 하는 노인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는 그 반복은 처음에는 기이하게 보이지만 곧 하나의 리듬이자 세계로 다가온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가벼운 결심으로 시작된 줄넘기는 점차 ‘나’를 반복의 시간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상실은 서서히 다른 형태로 변형된다. 끝날 것을 알면서도 계속되는 반복, 그 안에서만 가능한 변화. 단순한 운동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작동하며 여름 한가운데에서 경험되는 시간의 방식, 느슨하지만 지속되고 무의미해 보이지만 어딘가로 이행하는 시간을 보여 준다.

여름이 특별히 더 많은 소설을 읽게 되는 계절은 아닐지 몰라도 여름은 확실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반복되고 그 반복 속에서 미세한 변화가 발생하는 시간. 목적 없는 움직임, 쓸모없는 행위, 우연한 만남. 모두 여름이라 는 계절이 허락하는 시간의 방식과 닮았다. 두 편의 소설과 함께 천천히 여름을 음미해 보자. 이 소설과 함께라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곳은 오렌지빛 해변일 것이다.
목차
권혜영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 14
김혜진 줄넘기 42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권혜영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에 데뷔작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가 선정된 바 있으며, 소설집 『사랑 파먹기』, 단편소설 『애정망상』 등이 있다.

저자 :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빈티지 엽서』로 김승옥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관종들』로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오직 그녀의 것』,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짧은 소설 『완벽한 케이크의 맛』 등이 있다.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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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아이들 눈에 무서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광인처럼 중얼거린다. 이거다, 이거야. 댈댈바위는 추상적이라 믿을 수 없었어.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지. 바위를 만졌기 때문에 매달 노동 없는 180을 받게 된 건지. 180을 받을 참에 때마침 바위를 만진 건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빈 소원은 180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미끄럼틀은 내가 물건을 굴리면 곧바로 다른 물건이 나오잖아? 샤카 주스와 포켓몬 빵처럼 가시적이며 구체성을 띠는 세계. 내가 좋아하는 세계.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중에서

자루에 들어 있던 옛 물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진짜 필요 없는 물건들이 맞았을까? 철 지난 달력에는 특정 날짜 위에 동그라미를 쳤을 것이다. 중요한 약속 또는 일정이 있을 때면 그 아래에 붉은 글씨로 적었다. 별표를 쳐 가면서. 업무 수첩과 다이어리는 또 어떻고. 내가 지난 시간 기를 쓰고 살던 흔적들이 모두 남아 있다. 웨이브스의 해마 굿즈들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꺼내어 보면 아름다운 추억일 텐데.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중에서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시간을 굴리고 있었다면 나는 시간 속에서 완전히 생략된 사람 같았다.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도 내 시간은 어느 지점에서 멈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공원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밤공기가 이렇게 좋은데. 몸을 좀 움직여 보는 것도 좋을걸세.
---「줄넘기」중에서

나는 그녀가 되짚어 걸어갈 골목을 떠올렸다. 이제 내가 함께할 수 없게 된 길들. 그 까마득한 시간들에 안녕을 빌었다. 서로를 향해 그녀와 나는 한 번씩 손을 흔들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손을 흔들던 3년 동안의 습관도 이로써 끝이라는 걸. 그런 지겨운 습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없었을지 몰랐다. 결국 우리를 증명하는 건 자주 가던 중국집이나 서로에게 손을 흔들던 사소한 버릇 같은 것일 테니까. 말하자면 지루할 때까지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했던 힘으로 그녀와 나는 잠시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지하철역 계단을 모두 내려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줄넘기」중에서


워터프루프북이란?

워터프루프북은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버려지는 돌을 재활용한 친환경 방수 종이 ‘미네랄 페이퍼’로 제작된 책입니다. 물에 젖더라도 변형 없이 다시 말려 보관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첫선을 보인 워터프루프북은 매년 다른 장르의 글로 여러분을 찾고 있어요. 올해의 워터프루프북의 테마는 여름! 선별된 ‘여름 시’와 ‘여름 소설’을 한데 모았습니다. 언제 읽어도 좋지만 여름에 읽으면 한층 더 생생한 시와 소설. 해변가, 수영장, 계곡, 욕조 등 물과 습기에 구애 없이 워터프루프북을 마음껏 즐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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