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겨울의 서식지
15 말 없는 계절
17 낮은 곳의 문법
19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21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문장들
23 암순응
26 기도는 돌 하나를 들어 올리는 일
29 말이 끝난 자리에서
32 슬픔을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34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36 남아 있는 숨
38 저녁엔 말 없는 문장으로라도 다시 인사해 줘
40 나는 말에 갇힌다
42 바람은 누구의 얼굴을 닮았는가
44 벽화의 후손들
2부 먼 데 있던 바람 하나
48 조심히 오래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51 그만큼의 거리
53 어두워지는 창가에서
54 빛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56 잔잔한 것들에 대하여
58 낯설고 익숙한
60 사랑은 부재로 완성된다
61 부식腐蝕
64 네가 없는 날의 풍경
65 관계
67 푸르게 아픈 날
69 문이 닫힌 뒤
71 시간의 이별
72 젖은 우산에 대하여
3부 누군가의 열굴은 아득하고
74 잊힌 것들 틈에서
76 누구도 오지 않는 곳에서
78 그리움이 나를 살게 한 날들
80 고‘故’라는 이름
82 누군가의 얼굴은 아득하고
84 어떤 기억은 처음부터 틀렸다
87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
89 무너지는 각도
91 나무의 배후
93 소들 사성암에 들다
95 새 떼 건너가다
97 물수제비
99 화장花葬된 나비
102 작은 기억
4부 그렇게 나비를 불렀을까
104 근처라는 이름으로
106 아직 오지 않은 봄
109 지나가며
110 책등
112 슬픔을 이식하다
114 집중호우
116 기울기
118 서해에서
121 환대에 대하여
124 비켜선 자들의 길
126 아이 무덤
128 어느 눈 오는 날은 더욱 좋고
130 어느 날, 나무는 왼쪽으로 기울었다
132 길을 잃다
133 11월의 나무
135 늦게 도착한 꽃
┃발문┃ 이원규_언어 이전의 시, 보다 근원적인 ‘숨’의 고백록
저자소개
저자 : 정택근
출판사 서평
“꽃이 지고 나서야 느껴지는 무게가 있다”
정택근의 첫 시집 『나는 문장 대신 숨을 연습했다』는 끝난 뒤에도 쉽게 떠나지 않는 마음들 곁에 오래 머무는 시집이다. 떠난 사람, 지나간 계절, 끝내 건네지 못한 말과 너무 늦게 알아본 사랑을 시인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불러낸다.
이 시집에서 침묵은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슬픔을 알아보고, 서로의 존재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언어다. 시인은 사람이 떠난 빈방에서 아직 남아 있는 숨의 높이를 느끼고, 이름 앞에 놓인 ‘故’ 한 글자에서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다. 원추리꽃에 내려앉아 생을 마친 나비에게서는 오래 날아온 존재의 마지막 안식을 발견한다.
사랑 또한 완성된 순간보다 어긋난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나는 당신에게 늘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고백처럼, 정택근의 시는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의 무게를 바라본다. 닿지 못했기에 오래 남는 다정과 부재함으로써 더욱 선명해지는 사랑이 시집 곳곳에 잔잔한 빛으로 번진다.
오랫동안 사람의 생과 사를 지켜보고 야생화의 작은 생명을 카메라에 담아온 시인은 화려한 언어 대신 절제된 문장으로 존재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나는 문장 대신 숨을 연습했다』는 말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 시, 상실과 그리움의 시간을 건너온 이들에게 조용히 자신의 숨을 내어주는 시집이다.
-출판사 서평
표사 및 발문
그의 시에는 사람과 꽃과 숲을 대하던 그 조용한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함께 걸었던 숲길을 떠올린다. 그가 오래 바라보았던 것들이 그의 문장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음을. 그리고 그 문장들이 앞으로 더욱 깊어지고 그윽해지리라는 것을.
-섬진강에서 김인호(시인) 표사 부분
아직 갈 길이 멀고 또 멀지만, 눈에 보이는 부재의 상황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이 더 소중한 법이지요. 그래서 더 자세히 봐야 합니다. “봄은 오지 않았는데/ 붉은빛부터 먼저 번지는 저녁”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잃을까 봐/ 먼저 등을 돌”리지 않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너를 의심하지 않겠다고”, “이번에는/ 조금 늦게 피어도 좋”고, “기꺼이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이러한 경지에 다다라야 비로소 ‘슬픔을 이식할’수 있으며, “나는/ 물을 주지 않았다// 저녁이/ 먼저 다녀가도록” 조급하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정택근 시인은 요양원 원장이었으며, 야생화 사진가이자 중년이 지나면서 세상에 첫 시집을 내보이는 시인입니다. 이미 종교철학을 깊이 공부하였으며, 청소년기부터 시에 대한 갈망을 오래 깊이 품어왔지요. 정 시인의 야생화 사진 또한 아주 특별합니다. 대개의 야생화 사진가들은 접사 렌즈로 야생화의 얼굴빛 부각에만 골몰하는데, 정 시인의 야생화 사진들은 그 여린 야생화가 깃들어 사는 모습, 그러니까 상생의 관계와 존재의 조건까지 담아냅니다. 접사와 광각, 미시적인 삶과 거시적인 삶을 다 들여다보며 산다는 뜻이겠지요. 이번 첫 시집을 두고도 정 시인 스스로 “끝난 뒤에도 쉽게 떠나지 않는 마음들 곁에서 잠시 머문 것들의 시간의 기록”이라고 갈무리했습니다
-이원규 시인 발문 중에서
저자의 말
어쩌면 시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아닌 함께 잠깐 머무는 행위일지 모릅니다. 살아오며 나는 자주 끝난 것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떠난 사람들, 지나간 계절들, 손안에 마른 꽃잎처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순간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삶은 늘 사라진 것들보다 남아 있는 것들에 의해 오래 움직여 왔습니다. 이 시집은 그렇게 끝난 뒤에도 쉽게 떠나지 않는 마음들 곁에서 잠시 머문 것들의 시간의 기록입니다
-정택근
책 속에서
말수가 적은 계절이 있다
바람은 지나가되 제 그림자를 설명하지 않고
나뭇가지들은 제 그림자에 기대어
조용히 높이를 바꾼다
텅 빈 하늘과
얼어붙은 땅 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마른 풀 몇 포기가
물이 멈춘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오래 남아 있다
그 시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아무도 먼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나는 가끔
말을 아껴야 할 자리에
서둘러 문장을 놓아두고
돌아선 적이 있다
그 문장들은
밤을 지나며 낯설어져
다음 날 아침이면
내 것이 아닌 얼굴로 남아 있었다
- 「말없는 계절」전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사실대로 기록한다
아침은 있었고
저녁도 왔으며
그 사이
몇 번 문 앞에 섰다가
나가지 않은 일이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은
조금씩 뒤로 밀렸고
말은 절반쯤만 사용되었다
울지 않았다고
적지는 않는다
견뎠다는 말도
오늘의 기록에는 없다
슬픔에 이유를 붙이면
너무 빨리
알 것 같아서
단지
오늘이 끝났다는 것
그 사실 하나를
가지런히 놓아둔다
-「슬픔을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전문
바람이 불었다
낡은 신문지 하나가
골목 끝을 향해
몇 번이나 뒤돌아보듯 굴러갔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밟지 못했다
담벼락 아래에서
신문지는 잠시
누군가 읽다 만 하루처럼
오래 접혀 있었다
신문지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한동안
아무도 떠나지 않은 골목에서
바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은 누구의 얼굴을 닮았는가」 전문
저녁엔 비가 내렸다
아무도 쓰지 않은 우산이
현관에 젖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네가 다녀갔음을
알았다
그 우산은
펼쳐지지 않고도
네가 지나온 비를
현관에 세워두고 있었다
-「젖은 우산에 대하여」 전문
돌 하나를 집었지만
물 위에 던지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이미 몇 번의
생이 튕겨 나갔기 때문이다
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한참 뒤
나는 돌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물결은 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던지지 않은 것들로
하루를 건넜다
-「물수제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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