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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P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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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97678
ISBN
9791193551738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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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9-28
페이지, 크기, 무게 416쪽, 133*204mm, 541g
목차
I 천벌
벌/ 기로/ 유예/ 장례/ 화장火葬 그리고 화장化粧/ 포상/ 퍼플/ 블랙/ 조우
II 구원
1차 진료/ 2차 진료/ 3차 진료/ 4차 진료/ 5차 진료/ 6차 진료/ 재스민
III 잠식
환멸/ PDE/ 7차 진료/ 8차 진료/ 악몽/ 9차 진료/ 재회/ 10차 진료/ 낙원/ 효시/ 약혼
IV 귀결
유작/ 반서/ 잠류/ 귀결/ 전회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이혜경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한마디 말이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순간들도 경험했다. 같은 말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힘을 갖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왔다. 사람의 말보다 그 말이 나오기 직전의 침묵, 다정한 표정 뒤에 감춰진 욕망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를 살리는 말과 무너뜨리는 말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은 반드시 선한 것일까 하는 질문에서 첫 장편소설 『처방 PDE』를 시작했다.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일상에 숨어 있는 균열을 오래 들여다보며,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출판사 서평
자살과 살인을 계획 조종한 어느 정신과 의사의 비밀 진료자살 직전 한 여인의 그림 속에 폭로된, 완벽히 가려진 살인의 경로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남편. 외상도 범죄의 흔적도 없는 그의 죽음은 ‘사고사’ 처리되고, 사건은 의심 없이 종결된다. 그러나 그 죽음은 오랜 가정폭력 끝에 아내 전선영이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배후에는 정신과 의사 이수현이 있다. 그는 직접적인 지시나 개입 없이, 오직 언어와 해석만으로 전선영이 특정한 선택에 이르도록 이끈다. 모든 과정은 법과 의료의 기준을 충족하며, 어디에도 범죄를 입증할 증거는 남지 않는다. 수현은 이 사건을 PDE(Psychic Domination Experiment)?라는 이름으로 기록한다. 그에게 이것은 언어만으로 인간을 살인이나 자살이라는 선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는 재미난 실험일 뿐이다.

오 형사는 멍을 숨기려 애쓰는 손놀림에 주목했다. 그 움직임은 증거를 인멸하려는 범죄자의 치밀한 태도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폭력에 길들여져 제 몸의 상처조차 수치로 여기는 피해자의 습성이었다. 오 형사의 눈에 비친 선영은 재난 같던 남편이 음주 사고로 죽어버린 덕에 간신히 살아남은 가련한 생존자였다. (p. 25)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기침과 울음으로 교묘하게 위장하며 선영은 어깨를 잘게 떨었다. 이토록 완전한 범죄를 훌륭하게 완성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아니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방법. 살면서 추리 소설 한번 읽어본 적 없는 내가, 이 기막힌 트릭을 생각해내고 실행하고 기어이 성공해냈다니… (p. 47)

우울과 환각으로 번져간 죄책감,
그리고 황금빛 역류의 형상으로 폭로된 진실

소설은 정신과 상담을 이어가는 전선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언어가 어떻게 인간의 심리를 지배하고 죽음을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시키는지를 그려낸다. 그 어떤 증거도 없고, 입증조차 불가능한 죽음을 과연 살인이라 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가정폭력 피해자 전선영이 남편을 죽이는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살인을 저지르고도 살인자로 남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따라간다.

모든 것은 설계대로였다. 선영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는 그녀를 세 번째 살인 유도 실험 대상으로 낙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마침 때가 되었을 뿐이었다. 자살 유도 실험을 반복적으로 성공시킨 이후, 그의 가설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스스로를 넘어 타인까지 해하게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두 차례의 선례가 이미 증명된 상태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재현을 통한 확증이었다. 대상으로 선정된 이상 그녀는 그의 설계가 완성될 때까지 꾸준히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는 2주 뒤 내원임에도 일부러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를 일주일 치만 처방했다. ‘최상의 안락’이라는 미끼를 맛보게 한 뒤, 약이 끊기는 순간 지옥을 돌려주는 방법이었다. (p. 200-201)

“벌은 죄를 지은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당신의 냄새는 악취가 아니라 향기입니다.“

전선영은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강요가 아닌 ‘자기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인식하며, 그 선택은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이슈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리 조작에 의한 통제로 서서히 자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그녀는 남편의 죽음 후 자책과 공포, 우울과 환각 속에서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잠식되어버린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영은 아름답게 포장된 폐허 같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실크 블라우스와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칼은 우아해 보였으나, 그와 대조적으로 안색은 이미 회색빛으로 죽어 있었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지독한 죄책감 사이에서 몸부림치며 며칠째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푹 꺼진 눈매는 검게 물들어 있었고, 갈라진 입술은 그녀의 생명력이 이미 안쪽에서부터 마모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p. 271)

약을 먹으면 더욱 깊고 끈적한 늪 속에서 기어 나온 괴물 같은 민석을 대면해야 했고, 먹지 않으면 불면의 지옥불이 그녀를 태웠다. 어디에도 도망칠 곳은 없었다. (p. 281)

전선영의 유작은 단순한 추상화가 아니다.
사인死因을 드러내는 정밀한 해부도이자, 자백이며
그 모든 일을 조종한 이에 대한 최후의 심판審判이다.

그림은 기괴했다. 캔버스 전체를 뒤덮은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 한가운데, 웅크린 사람의 형체가 희미하게 떠 있었다. (중략) 그림의 하단부, 인체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황금빛 형상이 내부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역류였다. 입은 굳게 닫혀 있건만, 몸의 가장 낮은 통로로 침투한 황금빛 줄기는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검은 내면을 강제로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pp. 312~313)

작품 말미, 전선영의 유작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해내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음미하는 포인트가 된다. 그림 속 역류하는 황금빛 형상, 그것이 곧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귀결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살인의 폭로와 처절한 참회, 누군가에게 내려진 극단의 처방을 유추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비운의 천재가 남긴 마지막 희망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평론가들은 저 황금빛을 ‘구원’이라 칭송했고, 관객들은 작가의 요절을 ‘비극’이라 부르며 애도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저 황금빛이 사실은 치사량의 알코올이며, 저 역류가 명백한 살인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오직 수현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었다. (p. 325)

인과응보, 죽음을 설계한 의사에게 되돌아온 최후의 처방

결말부에 등장하는 전선영의 그림은 작품 전체를 응축한 가장 강력한 오브제이다. 세상은 그림 속 황금빛을 절망 속에서 피어난 구원과 희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수현에게 그것은 남편의 몸속으로 역류한 위스키이자, 자신이 설계한 살인의 경로다. 그렇게 하나의 그림은 다음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게 된다.

1. (세상에는) 죽음을 앞둔 예술가가 남긴 구원의 이미지
2. (선영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기록이자 고백
3. (수현에게는) 자신의 범죄를 정확히 겨냥한 고발장

그림의 제목이 ‘처방’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수현이 환자에게 내린 처방은 죽음이었지만, 선영은 그림을 통해 그 처방을 수현에게 되돌려준다. 이 그림은 말로 증명할 수 없는 범죄를 예술의 언어로 폭로하며, 법적 증거가 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의 내면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증거로 남는다. 따라서 선영의 그림은 단순한 반전 장치가 아니라 진료 기록이자 자백이며, 고발장이자 심판문이 된다.

수많은 환자의 정신을 지배해 죽음을 설계한 이수현은 끝내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실체를 꿰뚫어 본 약혼녀 이혜리가 누구도 처벌하지 못했던 악인을 가장 잔혹하고 완벽한 방식으로 단죄한다.

타인의 자아를 해체하며 전능감을 느끼던 수현은 결국 자신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선영의 그림 조각들 위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데, 이는 단순한 육체적 붕괴가 아니다. 자신이 지배했다고 믿었던 두 여성, 선영과 혜리에 의해 그의 세계가 안에서부터 산산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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