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천상의 빵, 지상의 빵 16
맥주는 즐겁고, 책은 괴롭다. 치맥은? 20
나는 웃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4
돌고 도는 세상, 돌고 도는 패션 28
선택하는 지름길과 에움길 3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5
헬멧을 쓴 신(神) 38
부모의 몸을 빌려서 온 손님 42
자기 몸 긍정주의 46
한글세대, 한오백년 49
그들이 살해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 53
수능, 실패라는 성숙 57
잠자는 청년 61
인류의 수평적 역사 65
화병(花甁)이 있던 자리 69
이삿짐 없이 가는 곳 73
여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77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80
곱게 늙기보다 바르게 늙기 85
힘껏 사는 것, 최선을 다해 죽는 것 89
시끄러운 동네, 언총(言塚) 93
아랫목 정담(情談) 97
8월 폭염에 뇌 건강을 101
큰 사탄(Satan) 옆에 있는 작은 사탄 104
전쟁, 그 전멸항전 112
우수잡감(雨愁雜感) 116
2부
조선의 혼(魂), 실종 이야기 120
대한제국 최후의 날 136
동해 물과 백두산 140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144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이 가네 148
국가 명운을 농락하는 법괴(法怪) 152
사가독서(賜暇讀書) 156
견리사의(見利思義), 견리망의(見利忘義) 160
마음을 공격하는 문, 마법(魔法)의 물 164
깃털 뽑는 포퓰리즘 168
인사(人師)인가, 경사(經師)인가 172
전쟁, 그 정당성 176
탐진치, 전쟁은 악업 180
전쟁, 화공전(火攻戰)에서 포병전(砲兵戰) 184
버큰헤드(Birkenhead)호와 이태원 191
절도 단육형(斷肉刑) 195
잡으려면 사라지는 거품 199
축제를 잃어버린 매화 203
집(house)에서 집(home)으로 206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210
인생, 사랑, 그것은 레몬(Lemon) 217
평화 행복 생명이 있는 책임 221
기도는 선행(善行)이 먼저 225
성난 사람들이 들어야 할 음악 229
사랑과 환희 233
3부
7천의 얼굴을 가진 인간 238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242
4월을 보내는 시심(詩心) 246
길 잃은 꿀벌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 250
6월 뻐꾸기, 독경(讀經) 우는 소리 254
6월에 따라오는 시 258
눈물 젖은 검정 고무신 261
카프카, 100년의 질문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265
탄식, 그리운 다산(茶山) 269
바람과 미당과 로세티, 오오노 요꼬 273
레닌, 도스토엡스키 그리고 한국 86 277
로버트 레드포드 그리고 주제의식 284
불타고 있는가,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 288
기쁜 시절을 살고, 슬픈 시절을 살고 292
죽은 자의 안식, 산자의 공포, 레퀴엠 296
개똥철학과 인문학(人文學) 300
똥(穢)을 퍼서 먹고살지만… 307
가을 타작 다한 후에 311
너의 청춘, 나의 노년 315
어떻게 살까, 지상천국에서 319
때는 만추, 이 11월에 미련 있을까 323
2024 송가(頌歌), An die Freude 326
성탄절 풍경 셋 330
운명(運命)은 분명 있는 것 334
What a Wonderful World! 338
고도(Godot)를 기다리며 342
우정의 축하글
고은정 축하할 이유 몇 가지 346
유혜자 선배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348
책 끝에 | 우리의 La La Land 349
저자소개
저자 : 김옥균
동아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문화방송(MBC) 입사(1965)
수상
-1971년 제4회 방송의 날 문화공보부 주관
프로그램 콘테스트 작품상
PD <전설 따라 삼천리>
-1992년 제29회 방송의 날 한국방송협회 주관
프로듀서(PD) 대상
한국영상자료원 방송분야 구술자 선정(현재)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현재)
출판사 서평
추천사
김옥균 처녀 출판을 누구보다 축하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가 카톡방에 연재할 때 우선 놀라운 것은 뒷방 노인네로 손자 재롱이나 볼 나이에 웬일인가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용기와 필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시점에 옛날 90 노인임을 자인하면서 움츠리고 있는 나에게 김옥균 님은 동갑내기로서 용기와 힘을 선사할 뿐 아니라, 많은 독자에게도 매한가지로 그랬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옥균 님은 MBC 프로듀서로서 드라마 연출로 생업을 시작했다. PD 중에 결혼축의금과 장례부의금을 두 번씩이나 내게 한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지만, 실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꾸준히 PD 자리를 지킨 그에게 1977년 MBC 공모 드라마 당선작 〈대니 할머니〉의 연출을 맡게 된 그가 ‘임현빈’이라는 작가 이름이 사실은 고은정의 필명이라는 것을 몰랐다. 본인 작품에 본인 출연이라는 역할이 맡겨졌을 때 그가 내게 한 말은 “여기는 할머니가 주연인데 고 여사가 할 역할이 마땅치 않네”였다. 그는 내가 벌써 10년 전에 노역 주연을 해낸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필명 역시 ‘고은정’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와 PD 관계는 끝없이 이어졌고 때로 작품이 늦어지면 전화에 대고 화를 불같이 내는가 하면 “나 역시 빨리 안 써지는 걸 어쩌란 말이야. 가을 들판 김장 무밭에서 무 뽑듯 나오면 좋겠어!” 그렇게 아웅다웅하면서 몇십 년이 지나갔다.
문학 수업을 제대로 했으면서도 평생 남의 다리만 긁는 셈이었으니 구순이라 한들 어찌 한이 안 남았으랴! 이제 그가 또 한 번 동갑내기의 자극제가 되어 불 지르는 역할을 한 셈이다.
-고은정 | 방송극작가
새벽에 조간신문의 칼럼과 사설을 읽으며 시작하던 루틴이 장기 입원으로 깨져버렸다. 그런데 이 시대의 현실을 투영하고 과거로부터의 흐름과 전망, 바람직한 지평을 바라보게 하는 논객이 가까이에 계셔서 든든하다. 바로 2022년부터 거의 매일 MBC라디오 ‘인사동 클럽’ 단톡방에 올리는 〈김옥균의 아르카디아〉가 있기 때문이다.
김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 우리 세대가 10대 때부터 읽은 동아일보 백광하 논설위원의 ‘단상단하’, 한국일보 유광렬 논설위원의 ‘지평선’ ‘메아리’, 근년에 경향신문의 ‘여적’,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만물상’ 등 유명 칼럼이 떠오른다. 팝송과 가요, 영화와 영화음악, 드라마의 PD와 작가로 종사한 김옥균 선배, 방송되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전파 매체에서 젊음을 바친 선배님의 필력이 아깝던 참이었다.
방송 후배들은 한 번 읽고 지나치기엔 아깝다며 책을 만들자고 권유하여 많은 글 중에서 추려서 내게 되었다. 방송 스튜디오 부조정실에서 유리 벽 너머로 손가락 큐 사인으로 연기자들을 연기하게 하는 지휘자, 여객선 선장처럼 김옥균의 《잃어버린 아르카디아》에서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으로 따라 가 볼 일이다.
-유혜자 | 수필가
책 속에서
<나의 아르카디아>
1935년 3월 10일 밤, 혁명의 소용돌이 중국에서 백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중국 바스크룰(國技學校)에 파견된 영국인 로버트 콘웨이(Robert Conway)를 포함한 다섯 명을 태운 경비행기가 고도 21,000피트 상공에서 운항하다가 행방불명이 됩니다.
비행기는 티베트 국경지대 히말라야 계곡에 비상착륙하고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시간이 흘러 이들에게 다가온 사람들을 따라 일행은 Blue Moon 계곡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샹그릴라(Shangri-La)’, 지도에도 없는 곳으로 티베트어(語)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입니다. 거대한 서양식 건축물과 그 안에 채워진 예술품들, 그들의 음악이 흐르는 대초원에 들어앉은 이 도시. 여기서 평생 살고 있는 장 노인에 따르면 벨기에 출신의 페롤트 신부가 1713년 티베트 계곡에서 발을 헛딧고 쓰러져 동사 직전에 있다가 원주민에게 구출되어 이곳에 와 108세 때 완공한 도시라는 겁니다.
“미래는 푸른 달에 꼭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전설로 상징되는 지평선이 커튼처럼 열려있는 세계 ‘샹그릴라’는 시간이 확장되고 공간이 응축되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긴 세월을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장 노인은 말합니다.
“이곳은 중용(中庸)이 기본 철학이오. 중용을 지키면 행복해질 수 있소. 범죄자가 생기는 것도 결핍 때문이며, 이곳은 부족한 것이 없으니 범죄란 없소. 여기서는 편한 마음으로 무병장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오.” 그러면서 당연히 탐욕과 시기도 없다고 합니다. 수많은 예술품과 책들은 계곡에 있는 황금으로 바깥 세계와 교환해 몇백 년 동안에 걸쳐 구해놓은 장서라는 것입니다.
콘웨이는 장 노인의 안내로 적어도 250살이 넘어 보이는 페롤트 신부를 만납니다. 페롤트 신부는 자기는 ‘하이 라마(High Lama)’라고 하면서 콘웨이를 “계획적으로 납치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계속 번영하려면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했소. 오래 살아야 할 확고한 명분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샹그릴라가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이오. 지배욕과 광기로 혈안이 된 인간들이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봤소. 잔인한 지도자들뿐이며, 탐욕과 추악한 정복욕은 곧 심판받을 것이오.”
시간이 지나면서 콘웨이의 동생 조지를 제외하고 모두 현실의 세계를 잊어가며 샹그릴라의 풍요롭고 안락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갑니다. 이곳에는 어릴 때 들어온 샌드라와 열아홉 살 때 들어온 마리아가 있습니다. 콘웨이가 사랑하게 된 샌드라는 샹그릴라에 젖어 현실을 잊고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1888년에 들어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는 마리아는 한때 샹그릴라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조지를 사랑하면서 바깥 현실 세계를 더욱 동경하게 됩니다. 콘웨이 역시 과거 세계에 대한 향수에 빠져 조지와 마리아의 계획에 따라 떠나기로 합니다.
세 명은 어렵사리 샹그릴라를 빠져나왔지만, 길 안내를 맡았던 짐꾼들은 모두 눈사태로 죽고, 이어서 샹그릴라를 벗어난 마리아의 몸과 얼굴은 흉물스러운 노파로 변합니다. 마리아의 그런 모습을 본 조지는 충격에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샹그릴라의 진실을 한순간 의심했던 콘웨이는 다시 돌아가려 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게 되죠. 콘웨이는 1년간 실종돼 있다가 현실 세계 중국에서 발견됩니다. 그는 몸이 회복하자마자 샹그릴라로 돌아가겠다고 탈출하죠. 훗날 그를 뒤쫓던 사람들은 티베트 국경 부근에서 그를 잃었다고 전합니다.
샹그릴라는 불교와 유교에서 중요시했던 ‘중용’을 미덕으로 삼고, 탐욕과 시기가 없는 기독교적 윤리로 선한 이들을 위한 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샹그릴라를 떠나는 순간 자신의 나이와 모습이 변할 줄 알면서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현실 세계’를 선택하는데, 그것은 죽음조차도 각오한 일이었던 겁니다.
1933년 33세의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단 4주 만에 완성했다는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입니다.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 감독은 1937년에 영화화합니다. 당시의 유럽은 경제 공황에 빠져 있었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아 세계는 뒤숭숭한 상태에 있었는데, 샹그릴라는 당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갈망할 수밖에 없는 ‘꿈’, 유토피아(Thomas More의 Utopia)의 세계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동양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죠. 남아메리카엔 ‘엘도라도’(El Dorado)가 있습니다. 그곳들은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세상을 바라는 이상향(理想鄕)의 꿈의 세계입니다.
‘무릉도원’은 중국 동진(東晉) 시대 도연명(陶淵明)이 421년에 쓴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글에서 유래하죠. 줄거리는 ‘잃어버린 지평선’의 콘웨이가 불시착한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샹그릴라’와 ‘무릉도원’이 정신적 평화와 안식을 구하는 인간의 열망에서 탄생한 낙원이라면 ‘엘도라도’는 인간의 물질적 탐욕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황금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 그리스 신화 시대의 이상향이라면 바로 ‘아르카디아’(Arkadia)입니다. 유럽 문학, 특히 詩와 회화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원적(Pastoral) 이상향입니다. ‘샹그릴라’나 ‘무릉도원’이 깊은 산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낙원이라면 아르카디아는 푸른 초원 위에서 양을 치며 노래하는 평화로운 시골 세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르카디아는 허구가 아닌 그리스의 실제 지명이라는 거죠. 아르카스(Arcas 아르카디아 조상)에서 유래하는데, 칼리스토(Callisto 아르카디아 공주)는 아르테미스(Artemis 처녀별의 여신)를 섬기며 처녀로 살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칼리스토는 너무 아름다워 모든 남신(男神)들이 짝사랑합니다. 그중 제우스가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접근, 사랑을 나누죠. 아홉 달이 지난 어느 날 목욕을 하다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칼리스토는 멀리 쫓겨나 동굴 속에서 아르카스를 낳습니다. 그리고 아르카스가 자라 걸음마를 하게 되자 동굴 밖으로 나가고 엄마는 아기를 찾아 동굴 밖으로 따라 나갔다가 제우스의 부인 헤라(Hera)를 만나게 되고 헤라는 칼리스토를 곰으로 변신시킵니다. 아들 아르카스는 한 농부에게 발견돼 키워집니다.
곰이 된 칼리스토는 숲에서 홀로 지내다가 훌륭한 사냥꾼이 된 아르카스를 보게 되죠. 아르카스는 곰을 향해 활을 쏘려 하고, 칼리스토는 아들을 향해 다가갑니다. 위기의 순간에 제우스가 둘을 하늘로 불러올립니다. 그리고 ‘큰곰자리별’과 ‘작은곰자리별’로 만듭니다. 그러나 헤라는 이들이 바다에서 즐길 수 없도록 포세이돈(Poseidon 바다와 지진의 神), 오케아노스(Oceanus 大洋의 神)와 짜고 계속해서 북극의 하늘만을 맴돌도록 합니다. 이 신화에서 유래된 <아르카디아>는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Peloponnesian) 반도에 있는 고대부터의 지역명으로, 척박한 땅이었지만 후세에 ‘목자의 낙원’으로 ‘이상향’의 대명사가 됩니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결핍을 떨어내지 못합니다. 이 결핍 심리가 ‘이상향’을 낳았습니다. 이상향을 꿈꾸는 행위를 허황하다고 할 수 있을까? 꿈은 삶을 의식하게 해줍니다. ‘샹그릴라’를 그려보고 ‘아르카디아’를 찾는 꿈이 곧 희망입니다. 아르카디아는 거창한 낙원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꿈일 뿐입니다. 치열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이상향은 어느 곳일까?
“나의 아르카디아여!”
<우리의 La La Land>
주어진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바라는 꿈은 문명 발생과 함께 시작됐다고 하겠습니다. 종교는 이 꿈을 많은 사람이 공유한 현상일 겁니다. 기독교의 낙원, 불교의 극락세계를 비롯해 종교마다 초월의 세계를 향한 꿈이 있습니다.
이미 낙원의 꿈을 갖고 있던 기독교 세계에 ‘유토피아’(Utopia)라는 또 하나의 꿈이 나타난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1516년 책 제목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유럽에서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꿈이 자란 것입니다.
《국가와 최선의 형태와 새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라틴語 De optimo reipublicae staludeque nova insula Utopia)는 제목 그대로 정치형태의 선택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된 근대 유럽에 오래된 ‘낙원’ 대신 ‘유토피아’가 새로운 꿈의 이름이 됩니다.
모어의 유토피아는 대륙에 가까이 붙어있는 섬으로 6천 가구의 도시 54개가 있고, 30가구에서 하나씩 뽑힌 대표 200명이 비밀투표로 도시의 통치자를 선출합니다. 사유재산도 없고 직업의 구분도 없습니다. 농사가 모두에게 주업이고 직조 석공 목수 등 부업은 각자 하나씩 가집니다. 생활 방식이 소박해서 부업에 높은 수준 기술이 필요 없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만 일하면 됩니다. 단 하나 특별한 직업은 종교와 행정을 담당하는 학자들로, 어린아이의 소질에 따라 선발됩니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내부 완결성을 가진 사회로 그리려 했지만, 그 성립과 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외부’와 ‘타자’(他者)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자로서는 노예가 있었고 노예는 전쟁 포로 등 외부에서 획득하기도 하고, 내부의 범죄자로 충당했습니다. 전쟁을 하되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포획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유혈을 통한 승리를 부끄럽게 여기죠.
훗날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이상향(理想鄕)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모어 자신은 라틴어(語)로 쓴 이 책에서 그리스어(語) ‘없다’(ou) 또는 ‘좋다’(eu)라는 접두사와 ‘장소’(topos)를 합성해서 ‘없는 곳’,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없는 곳’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은 단순히 허황된 판타지를 쓰지 않았죠. 주인공 콘웨이를 낙원에 심취하기보다 현실 세계의 책임감과 낙원의 평화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유토피아가 철학적 개념이 있다면, ‘샹그릴라’는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시각적이고 감성적인 낙원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의 결말은 단순히 주인공의 탈출과 복귀를 다룬 모험담을 넘어 ‘문명의 파멸’과 ‘인간 정신의 구원’이라는 힐튼 문학 세계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샹그릴라’라는 거울을 통해 현대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라라랜드(La La Land)》(2016)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꿈꾸는 청춘 미아와 세바스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음악과 춤으로 그리고 있었죠. 배우 지망생 미아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서로의 꿈을 격려하며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각자의 길을 선택하며 이별합니다. 그리피스(Griffith) 천문대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百媚)였죠.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거지?” 미아가 물었을 때 세바스찬은 대답합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대사는 불안한 미래 속 현재에 충실하려는 마음을 보여주지만, 꿈을 향할수록 둘의 관계는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았다는 겁니다. 세바스찬은 현실에 타협하고, 미아는 배우로 성공합니다.
5년 후 재회하는 두 사람의 에필로그(Epilogue)는 ‘만약’이라는 상상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참담함을 극대화합니다.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가 흐릅니다. 그들은 파리로 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꿈과 사랑을 모두 이룹니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 현실로 왔을 때, 미아의 곁에는 다른 남자가 있고, 세바스찬은 불 꺼진 빈 무대에 혼자 서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La La Land》는 어디에 있는가. ‘만약’이 함유(含有)한 것은 무엇인가? ‘유토피아’이고 ‘무릉도원’이고 ‘엘도라도’이고, 그리고 또 ‘아르카디아’, 그저 인생의 에필로그.
서정적인 기타 톤을 창조하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와 2004년을 흔들어댄 를 발표합니다.
“It’s the end of a perfect day for surfer boys and girls/ (즐거움이 가득한 날이 저물면 서핑을 즐기던 젊은 남녀들 뒤로) The sun’s dropping down in the bay and falling off the world/ (석양이 해변을 아름답게 물들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There’s a diamond in the sky our evening star in our Shangri-La./ (저녁 하늘에 반짝이며 너와 나의 별들이 반짝인다. 여기가 우리의 낙원 ‘샹그릴라’이지.) (중략) Tonight your beauty burns into my memory (오늘 밤 그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내 기억 속에 불타오르고) The wheel of heavens turns above us endlessly/ (하늘의 바퀴는 우리 위로 끝없이 돌고 있다.) This is all the heaven we've got right here where we are in our Shangri-La/(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주이고, 바로 지금 여기가 우리의 낙원 샹그릴라.)”
마크 노플러는 ‘바로 우리가 우주이고 우리 눈앞이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마크 노플러의 밤하늘에도 반짝이는 별(理想)이 있었지만, 그 이상(以上)을 탐하기보다 바로 우리가 우주(宇宙)라고 하는 겁니다. La La Land의 ‘La’ Shangri-La의 ‘La’, 떨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꿈’입니다.
理想(꿈)이란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처럼 그것을 안내자로 삼고 그것을 따르면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하늘로 두고 있지만, 자기 천정(天)의 거미줄은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별만을 응시하지 말고 자기 발 앞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콘웨이는 자기가 버리고 떠난 샹그릴라를 다시 찾으려 헤맵니다. ‘무릉도원’에서 어부도 다시 그곳을 찾으려 바다를 돌고 돌지만 실패합니다. 이렇게 동서양이 전하는 메시지가 같은 의미는 ‘인간이 탐욕을 품고 인위적으로 찾아가려 하면 낙원은 모습을 감춘다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좌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비움’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는 정신적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빵, 지상의 빵>
대심문관이 “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날 만큼 지상의 빵은 양립할 수 없다.”라고 예수에게 말합니다. 도스토옙스키(F. M. Dostoevsky)의 마지막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종교재판이 횡행하던 16세기 스페인에 예수가 재림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모여들어 치유의 기적을 간청합니다. 그때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나타나 예수를 체포하고 화형에 처하려고 하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의 빵’이지 ‘천상의 빵’이 아니라는 것이 예수를 처형하려는 이유입니다. ‘예수가 가르친 영혼의 자유는 양심의 고통만 더해줄 뿐이다’라는 것이 대심문관의 전제(前提)죠. “인간은 무력하고 비열한 족속이므로 차라리 노예 상태에 남겨진 채 단순한 물질적 만족만을 보장받는 편이 낫다. 그러니 인간 사회를 ‘공통의 조화로운 개미집’으로 만들어 모두가 복종하고, 노동하고, 어린애처럼 행복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자신의 웅대한 기획에서 방해꾼 예수는 제거되어 마땅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작품의 핵심이자 작가가 줄곧 골몰해 온 사상의 요약본(要約本)으로 손꼽히고 있죠.
소설 속의 대심문관조차도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에 있다’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바로 그 ‘무득을 위해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예수는 다행히도 화형에 처형되지 않죠. 대심문관이 논증을 마친 후 예수가 행동한 답은 단 하나, 상대의 메마르고 핏기없는 뺨에 조용히 입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몸을 부르르 떤 늙은 대심문관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며 예수를 풀어줍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입맞춤은 노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소신을 고수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기독교적 사랑의 믿음과 반기독교적 이념의 대립은 계속되죠.
두 번째 아내의 내조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말년을 제외하면 도스토옙스키는 평생 빈곤했죠. 페테르부르크 기념관에는 생전의 집이 보존돼 있는데 작가의 책상에는 성경책과 찻잔이, 아내 책상에는 주판과 가계부가 놓인 것이 그의 일상을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면서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원고를 써야만 했던 이 프롤레타리아적 작가는 같은 시대 귀족 작가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의 여유를 부러워하면서도 원칙적으로 부르주아 정신을 혐오했습니다. 그는 학대받고 모욕당한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분노했습니다.
젊은 시절 진보주의 사상운동에 관여했고, 그로 인해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산 적이 있는데도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공상(空想)적 사회주의 ‘유토피아론’을 일축했습니다. 혁명을 꾀하는 급진주의자를 신랄하게 조롱했죠. 바로 ‘천상의 빵’이 ‘지상의 빵’에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강제적 평준화와 비인격화를 수반한 전제주의 제도보다 개인 정신의 자유가 그에게는 소중했던 겁니다.
“돈이 전부다!”를 외치면서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라며 저항하는 소설 <도박사>의 주인공처럼 그는 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빵의 노예로 남기를 거부했습니다. ≪惡靈≫(악령)에서는 조직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혁명가의 말로를 그리고 있죠. 무한한 자유에서 출발해 무한한 전제(專制)로 끝날 수밖에 없는 혁명의 아이러니를 도스토옙스키는 예고했습니다. “혁명을 만들고 있는 정신의 허위와 부정을 그보다 더 격렬하게 비난한 사람은 없다.”라고 철학자 베르디예프(Nikolai Berdyaev 1804~1948)의 평입니다.
레닌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쓰레기 취급하고, 과거 소련과 중국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칭송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민중 혁명을 믿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신앙은 ‘서로 사랑하라’ ‘고통을 나누라’ 하는 인류애의 근본을 역설했습니다. “평등은 오직 인간의 정신적 존엄성 안에 깃들며, 서로 형제가 된다면 박애(博愛)도 생겨날 테지만, 박애가 있기 전에는 분배란 불가능할 것이다.”-소설에서 대심문관과 대척점에 선 ‘조시마(Zosima)’ 장로의 가르침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제도의 선함이 아니라 민중의 선함을 믿으려고 했죠.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사이고, 세계의 기본 모습은 계급 모순이다. 그런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사파들은 웃기게도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지 않고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본다. 이걸 보더라도 주사파는 마르크스주의와는 안 맞는다. 한국 사회에 민족 모순도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계급 모순이 본질적이다. 주사파는 계급 모순을 민족 모순으로 치환(置換)했다. 이게 나의 주사파의 가장 큰 차이다.”-민족미술인협회 편집실장, 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 아카데미 기획실장,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페이스북에 <전환기의 인식>이라는 글을 올리며 30년 좌파 활동을 공식 청산한다고 이념적 전향을 공개 선언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한 사회주의의 허상을 붙들고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죠. 그리고 푸틴은 옛날 대소련을 추억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변이물(變異物)을 수혈한 한국의 주사파는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최범과 같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2022. 11. 4)
<맥주는 즐겁고, 책은 괴롭다. 치맥은?>
우리들의 책은 먼지투성이/ 훌륭하게 해주는 건 맥주일 뿐/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책은 우리를 괴롭힌다네. 이것이 누구도 아닌 괴테(Goethe)의 詩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괴테는 포도주뿐 아니라 맥주도 무척 즐겼던 모양입니다.
독일은 맥주의 본고장이죠. 그래서 맥주에 관한 격언(格言)이며, 시(詩)와 노래가 꽤 많습니다. 그중에 특히 오랫동안 전해지는 얘기로, “새해에 맥주를 마시러 가는 사람은 젊어져서 빨갛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튀링겐(Thuringen. 중부 독일의 한 주(州), 3세기경에 투링기족(族)이 차지한 自由洲)의 격언입니다.
오래전부터 가장 좋은 맥주가 생산되던 북부 독일에서는 사육제(謝肉祭) 무렵에는 장수(長壽)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던 풍습이 있었습니다. ‘맥주는 영양이 되고 포도주는 여위게 한다’ 이건 독일 근대에 나온 격언이라고 합니다. 맥주는 영양이 있는 게 사실이죠. 그래서 맥주를 가리켜 ‘유동(流動)빵’이라 하기도 했고, 15세기경 축제 연극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맥주와 빵을 손에 내려 주노라. 그리하여 그대들의 볼은 붉어지리라.”
독일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든지 맥주를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라운슈바이크(Braunchweig. 독일 중부 Niedersachsen 니더작센주에 있는 도시로 1918년까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수도) 격언에는 ‘맥주 한 병과 소금에 절인 양배추는 의사에게서 금화(金貨) 반쪽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맥주와 소금에 절인 양배추는 건강에 좋아서 병에 걸리지 않고, 그래서 의사에게 치료비를 바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죠. 함부르크(Hamburg 독일 북부에 있는 독일 제2의 도시) 같은 곳에서는 의사의 치료 약이 듣지 않을 때는 마지막 수단으로 ‘그때는 맥주와 빵이 살려줄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맥주의 본고장이고, 맥주 역사가 긴 나라이다 보니 독일에서는 맥주에 대한 사랑이 대단합니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았다면 맥주로 상처를 잘 씻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잘 이해되지 않는 격언들일 수도 있지만, 조금 보태서 맥주가 물값과 같다니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천년이라는 독일 벨텐부르크(Weltenburg) 수도원 맥주 양조공장이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민간 회사에 팔렸다고 하죠. 이 수도원 양조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하는데, 수도사들은 금욕 생활을 하면서 기도에 집중해야 할 텐데 왜 술을 만들었을까.
수도원은 4세기 이집트의 수도사 파코미우스(Pachomius. AD 292~AD 224. 초대교회 수도사)가 공동 수도 생활을 한 데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고, 중세에 가톨릭교회에서 성직(聖職) 매매나 면죄부(免罪符) 판매 같은 부정부패가 나타나자, 일부 수도원은 성경 필사(筆寫)나 육체적 노동 같은 고행을 통해 ‘초기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개혁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신앙은 권력과 돈이 아니라 신(神)의 말씀과 검소한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죠. 수도원 맥주도 이런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겁니다. 기독교에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전 40일 동안 기도와 금식을 하는 ‘사순절’이 있습니다. 이때는 수도원에서도 역시 금식을 합니다. 사순절 규정에 액체는 섭취할 수 있다고 해서 수도사들이 만들어 마셨던 게 바로 맥주였습니다. 맥주는 곡물의 영양을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료였던 겁니다.
맥주는 기원전 4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지역에서 물에 탄 곡물을 발효해 마시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오래전 깨끗한 물이 귀했던 때부터 흔하게 마셔왔다고 하는데, 수도사들은 직접 농사지은 곡물로 맥주를 만들어 저장했고, 사순절 금식 기간에는 맥주를 ‘액체빵’이라 부르며 마셨습니다. 특히 17세기에는 독일 뮌헨의 파울라너(Paulaner. 독일 맥주 제조사 중 생산량 기준 8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수도원에서는 곡물을 추가해 더욱 열량이 높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파울라너 수도원이 만든 맥주는 특유의 진한 맛으로 인기를 얻게 되는데, 수도사들은 이 맥주에 구원자라는 뜻의 살바토르(Salvator. 라틴어로 구원자 또는 구세주 Savior를 뜻함)라는 이름을 붙였죠.(※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는 세상의 구원자로 유명. 이탈리아어로는 Salvatore, 남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음) 그러니까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맥주 파울라너도 파울라너 수도원 양조장에서 시작됐다고 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 이야기에도 맥주가 등장하죠. 수도사였던 루터는 1517년 면죄부 판매가 정당하지 않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95개 조(條) 반박문’을 발표하는데, 이 사건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교황 중심 체제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자 1521년 신성 로마 제국 의회인 보름스(Vorms.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에 있는 도시) 국회는 루터를 소환하죠. 이 자리에서 황제는 그에게 ‘95개 조 반박문’을 철회하라고 하죠. 그러나 루터는 거부합니다. 이때 브라운슈마이크 영주였던 에리히(Eric) 1세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지만, 루터의 용기를 높이 평가해 도수가 높기로 유명한 아인베크(Einbek) 지역의 맥주를 은잔에 담아 보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의 조합이 환상적인 한국의 Soul Food ‘치맥’을 괴테가 맛본다면 괴테는 ‘치맥과 책’에 대해서 어떻게 시(詩)를 쓸까?
(2026. 3. 5)
<헬멧을 쓴 신(神)>
서울 홍제동 2층 주택가에서 불이 났습니다.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길엔 차들이 주차하고 있어 진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를 끌고 수십 미터를 달립니다. 구조대는 불 속에 뛰어들어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을 구출합니다. 그런데 집주인 여자가 “아들이 안에 있다.”라고 울부짖는 겁니다. 소방관 3명이 다시 불 속에 뛰어들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죠. “분명히 있는데 왜 그냥 나왔느냐?”라는 집주인 여자의 항변에 방화복도 입지 않은 소방관 10명이 또다시 뛰어들었습니다.
얼마 후 굉음과 함께 집 전체가 내려앉았습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소방관 수십 명이 다시 달려들었습니다. 굵은 눈발 아래 처참한 잔해 속에서 소방관 6명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래도 수색은 멈추지 못합니다. 애를 태우는 집주인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참 후, 아들이 화재 현장이 아니라 친척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구조 작업을 끝냅니다. 이 아들이 불을 지른 방화범이었습니다.
이때 순직한 소방관 책상에서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소방관의 기도>가 발견됩니다.
“하나님,/ 제가 부름을 받을 때/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주소서./ (중략)/ 당신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게 되면/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1950년대 미국의 어느 소방관이 쓴 것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소방관이라면 이 기도문을 모르지 않습니다. 공감(共感)의 힘이 있어 그럴 겁니다. 세계 곳곳의 소방관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재난 현장에 뛰어듭니다. 2001년 서울 홍제동에서 순직한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에도 이 글이 놓여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날, 이 소방관들의 죽음은 허무했나? 아들이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았어도 불 속에 뛰어들어야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 신(神)의 부름일까? 소방관은 모두 “그렇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 직업의 ‘소명(召命)이기 때문입니다.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기며 이부자리에서 한참을 꿈틀대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평택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대응 2단계 발령.’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가연성 물질 등이 많은 물류센터 화재는 결말이 좋지 않았습니다. 걱정은 현실이 됐습니다. 잔불 정리와 인명 구조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송탄소방서 소속 이형식 소방경과 박수동 소방장, 조우찬 소방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방관 시험에 못 붙게 해야 했다”라는 유족의 절규가 가슴을 찢었습니다.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광주소방서 김동식 소방령의 유가족도 같은 말을 합니다. “소방관 하지 말라고 할 걸….” 울부짖는 유가족은 그런 후회를 하며 오열합니다.
엊그제 우리는 또 한 명의 영웅을 잃었습니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한 주택에서 불이 났습니다.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화재 진압을 하면서 집안 수색에 들어갔죠. 한 부인이 성공일 소방교를 붙잡고 “남편이 안에 있다.”라며 발을 구릅니다. 목조 건물이라 불이 순식간에 집 전체로 번져 검은 연기와 화염이 뿜어져 나왔지만, 성 소방교는 여인의 남편을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에 불길은 잡혔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남편과 성 소방교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됩니다.
성 소방교는 우석대 소방방재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5월 임용돼 김제 소방서 금산 119안전센터에서 화재 진압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죠. 고교 시절부터 소방관의 꿈을 키우며 네 번의 도전 끝에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유족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성 소방교의 아버지는 “오는 16일 아들 생일을 열흘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라며, 참변 전날에는 “생일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라며 원하는 식당을 예약해 두라고 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살기 위해 탈출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직업이 군인, 경찰, 소방관입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런 직업인의 역할이 빛나는 나라입니다. 6.25 전쟁 이후 연평해전과 천안함까지 수많은 군경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번영도 없었을 겁니다. 유일하게 목숨 걸고 소명을 지키는 직업이 이런 그들의 직업입니다. 하지만 소방관 순직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와 정치권은 약속이나 한 듯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입을 모읍니다. 순직 사고 때마다 수십 번은 들었던 말이죠. 이제는 더 유가족의 입에서 “소방관 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소방차들을 보게 될 때, 잠시라도 그들을 향한 기원을 해야 합니다. ‘살려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하고. 2020년 울산에서입니다. 33층 꼭대기에서 구출된 한 시민은 말했습니다. “연기에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헬멧을 쓴 신(神)인가’ 하며 의식을 잃었다.” 정녕 그들은 ‘헬멧을 쓴 신(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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