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삶의 변주곡
마음의 눈
봄날에 추억하는 동백꽃
삶의 변주곡
보이지 않는 사랑 26
첫눈 30
사랑하는 딸아 34
내 맘의 강물 37
브레인게이트 41
chapter 2. 희망의 빛
겨울 바다
희망의 빛
인연, 그 축복
제2의 고향 팔로스버디스
끝없는 방황
빛바랜 편지
사람의 향기
chapter 3. 처음 만남처럼
처음 만남처럼
치료의 힘
다르게 부대끼며
그 사람의 아우라
한글, 세계 무대에 서다
분노의 시대
행복은 바로 이 순간
chapter 4. 역에서 역으로
생일
좋은 이별 연습
팜스프링스의 오페라 길드
작별 인사
연말 단상
역에서 역으로
chapter 5. English Translation
Mind’s Eye
Dear Beloved Daughter
My Second Hometown, Palos Verdes The Palm Springs Opera Guild
Light of Hope
Farewell
Faded Letter
The First Snow
해설 | 유성호
사람, 시간, 풍경에 대한 섬세한 기억과 사랑의 문장들
저자소개
저자 : 오세리현
재미 여류작가로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83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세리(Sherrie)는 영어 이름, 현(어질 賢)은 한글 이름이다. 월간 ≪한국수필≫에 작품 <시간의 발자취> <이웃 사랑 있음에>가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수필집으로 『인연, 그 축복』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출간했으며, 『생각의 유희』 『꽃을 따라온 별』 『골목길 쉼 돌에 앉아』 등 동인지와 공저를 펴냈다. 국제PEN 한국본부 세계한글작가대회기념문집에 <한글, 세계무대에 서다> 수필이 수록되었다. 작품으로 <생일>, <겨울바다>, <역에서 역으로> 외 다수의 수필을 문학지에 발표하고 있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전 칼럼니스트,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으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사람, 시간, 풍경에 대한 섬세한 기억과 사랑의 문장들
-오세리현의 수필 미학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1. 은밀하고 신비로운 삶의 운명에 대한 탐구
오세리현의 수필집 인연, 그 축복 (선우미디어), 2026은 진솔한 고백을 통한 자기 확인의 의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면서, 특정 주제나 현상에 대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크나큰 친화력을 동반하고 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울리는 그녀의 명편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진솔함과 소통 지향성을 가지고 있고, 이때 고백과 소통의 내용은 독자들의 삶에 한없는 위안과 치유의 순간을 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주변에서 경험하는 일상에 언어적 초점을 맞추면서 순간적 감동과 깨달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 점에서 오세리현의 수필은 인간 영혼과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산문 양식으로 우뚝하게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그녀의 수필이 이러한 은밀하고 신비로운 삶의 운명에 대해 균형감 있게 탐구한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세리현의 수필에는 오랜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한 인생론적 성찰이 줄곧 담겨 있다. 그 내용과 문체가 작가의 단정한 인격과 교양을 드러내면서 작가 스스로의 인생론적 태도를 그 안에 선명하게 담아두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가 고유의 예술성이 또한 담겼는데, 이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건네려는 의지를 깊이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그녀의 수필은 삶의 순리에 대한 긍정과 추인으로 천천히 다가오면서 일상에서 역사까지, 삶의 구심에서 원심까지, 생성에서 소멸까지 사유해 가는 특유의 인생론적 해석을 펼쳐내고 있다. 그렇게 오세리현 작가는 삶을 안아들이는 넓은 마음과 해석안眼을 통해 수필의 존재론적 가치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나아가 오세리현 수필의 원리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실존적 경험을 아름답게 유지해 가는 과정에서 생성되고 펼쳐진 언어적 성취이다. 작가는 살아갈 날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삶의 순리를 탐색하면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 자아와 대상, 현상과 실재, 죽음과 삶,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지워가며 한 차원 높은 사유를 완성해 간다. 거기에 스스로의 삶을 완성하려는 사랑의 힘이 숨쉬고 있고, 삶의 흐름에 대한 친화와 긍정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수필은 삶을 차분하게 관조하여 그 존재론적 의미를 밝혀내기도 하고, 날카로운 지성으로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제 이러한 수필의 존재론적 본령에 충실한 언어를 구축해 온 그녀의 세계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 보도록 하자.
2. 소중한 인연들, 그 경험적 기록과 인생론적 성찰
전체적으로 오세리현의 수필은 삶의 아름다운 순간과 그때 반응하는 마음의 파동으로 구축되어 있다. 오랜 기억을 가다듬어 자신만의 심원한 통찰과 심미적 문장으로 수행하는 성스러운 실존적 제의祭儀 같은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렇게 오랜 꿈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오세리현 작가는 다양한 인물군(群)을 호명하고 간절한 문체로 그들을 하나씩 소환해간다. 그녀 수필의 한 축에는 이들과의 기억이 은은하게 들어서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삶에 바탕을 둔 경험적 기록과 인생론적 성찰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을 찾아 나선 몇몇 사례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인연, 그 축복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부모와 자식의 가족으로서의 만남은 우주의 신비에 버금가는 각별한 인연”이라고 강조한다. 특별히 “내 사랑 손녀 혜나”가 준 기쁨도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40여 년 전 미국 유학으로 시작한 이민자로서의 삶도 스쳐가고, 미국에서 그동안 만났던 이들의 크고 작은 도움도 떠오른다. 그 인연 가운데 “나의 은사님 대학원 동기이며 친구” 분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작가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시고 따뜻하게 돌보아주신 은인이었다. 그러나 만남도 잠시, 그분은 안타깝게도 뇌종양으로 세상과 하직하셨다. 병환 중 잠깐 회복하셨을 때 그분은 많은 인연들을 초대하셨는데 그 조촐한 순간에도 사람들은 하나로 녹아든 듯 웃다가도 눈시울을 붉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연과 잊을 수 없는 작별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별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는 순간들을 다음 문장에 담아둔다.
인연이 다하면 모든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고 사라진다. 인생에 있어서 인연은 신비스럽고 친밀하며 깊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한 가족의 인연으로 태어나 내 생에 다시없는 행복을 가져다준 내 사랑 손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손녀 혜나가 순리적으로 아름답게 잘 자라 제 몫을 멋지게 해 주길 바라는 나의 소망이다.
작가는 손녀에게서 아침이슬과 같은 맑음과 밝음을 본다. 손녀와의 교감을 통해 인생의 전율을 느끼고,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만끽한다. 딸이 결혼하여 이렇게 해맑은 아기가 혈육의 인연으로 품에 안긴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이제 태어난 지 6개월 된 손녀가 전해주는 축복이야말로 ‘인연’의 말할 수 없는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징한 문장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좋은 만남과 좋은 이별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성장” 좋은 이별연습 시킨다고 믿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기쁨과 감사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 행복은 바로 이 순간 내 앞에임을 고백하고 있다.
사람의 향기에서 작가는 ‘꽃’의 비유를 들어 사람이 꽃향기를 지닌다는 것의 가치를 들려준다. 비록 꽃은 피었다가 지면 그 모양과 향기는 자취 없이 사라지지만, 사람의 향기는 그 아름다운 순간의 여운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는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짧은 지혜의 글을 통해 스스로 장미꽃 향기를 띠기도 하면서, 얼마 전 만난 한 선생님을 기억한다.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연보랏빛 라일락 한 그루가 담긴 화분”을 통해 사람의 향기를 떠올린 것이다. 또 한 분은 대학 은사님 친구 분이신데 “조용한 나눔의 일생을 사신 분”이었다. 사랑, 관용, 봉사, 희생이라는 진정한 인간적인 사람의 향기가 나던 분이었다. 강원도 화전민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며 절절한 배고픔을 누구보다 더 많이 겪으셨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신 정성과 사랑은 작가가 품은 이상과 꿈을 펼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되어 주신 것이다.
따뜻하고 선한 본성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큰 감동의 파동을 일으키며 전달이 된다. 사람의 향기, 그것은 바로 그 사람 속에서 배어나는 향긋한 내음이며 따뜻한 온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남의 깊이만큼 짙고 은은한 향기로 남아 오랜 세월 마음속에 배어있다.
나는 말없이 그리운 이에게 다가가는 꽃향기이고 싶다. 주변에 가난한 마음을 적셔주는 향기이고 싶다. 외롭고 아픈 가슴을 달래주는 이슬 젖은 꽃향기이고 싶다.
“따뜻하고 선한 본성”은 사람의 향기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진다. 그리고 큰 감동의 파동을 일으킨다. 그렇게 사람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깊이만큼 은은하게 마음속에 두고두고 남는다. 작가가 재현하는 “특별히 가까이하지 않아도 어쩌다 함께 있으면 그냥 편안하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사람”은 그 점에서 참으로 멋진 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번 수필집에서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 아니 몇 번씩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생일 있다고 되뇔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아우라는 어느 선배가 보내준 한 줄 짧은 메시지에 용기를 얻은 경험을 기록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일러 “단비를 만난 들녘의 풀처럼 내 안에 잠재해 있던 힘이 용수철처럼 솟아오른다.”라고 고백한다. 누군가 내 편에 서서 이해해 주고 인정해 줄 때 우리는 강하고 신비한 생명력을 얻게 되지 않던가. 특별히 “오랜 세월 수련된 사람의 인품과 기품”이 거기에 동반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순간이 어디 있겠는가.
밤하늘 은하의 길은 무수한 작은 별이 모였을 때 빛을 발한다고 한다. 별빛은 별이 각자 하나씩 떨어져 있으면 그 빛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우라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의 빛으로 밝게 비춰주길 바란다. 어둡고 쓸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희망의 빛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그 빛으로 우리는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은하의 길을 함께 걷게 되리라는 나의 바람이다.
무수한 별들이 모여 가장 밝은 빛을 발하고 그때 우리가 경험하는 아름다움의 아우라는 서로의 빛이 되어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 어둡고 쓸쓸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희망의 빛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따습게 전해진다. 나아가 작가는 남을 대할 때 정도에 충실하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좁은 도량으로 그릇 채우기에 연연해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가끔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도 반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나눔의 미덕과 공로는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는 아름답고 지대한 사랑” 연말 단상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함께 나누기를 갈망하는 작가의 마음이 아름답기만 하다. 독일 미학자 벤야민W. Benjamin은 세계와 내면의 순간적 통일성을 “아우라Aura의 경험”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때 ‘아우라’는 사물들이 내뿜는 일회적이고 고유한 속성이자 그 외현外現을 뜻한다. 작가는 이러한 아우라가 살아 있는 순간들을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재현해 간다. 그러한 실례들을 증언하는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오세리현 작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암시하는 시선을 우리에게 건넨다. 따뜻한 삶을 설계하고 귀결시키는 장치로서 언어와 시선을 줄곧 배치해 간다. 그것은 무연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것 자체로 응시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모든 시선은 그 자체로 사물의 매혹에 반응하는 일일 테지만, 오세리현의 경우, 그것은 작가가 희원하는 가장 높은 정신적 차원으로 도약해 간다. 그래서 우리는 낮고 느릿한 시선을 보여주는 그녀의 수필을 통해, 우리를 치유하고 위안해 가는 전언이 추상적 선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존재자들을 통한 따뜻한 실감 속에 있음을 알아가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언어는 삶이 가지는 관성에 인지적, 정서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시선의 깊이를 우리에게 선사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오세리현 수필의 가장 보편적이고 절실한 존재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존재자들을 향한 시선의 실감과 역동성이 거기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이처럼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경험적 기록과 인생론적 성찰이 한없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3. 삶의 흔적을 승인하고 사랑의 불가피성을 희원해 온 시간들
원래 시간이란 모두에게 등가적으로 주어진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모두의 내면에서 지속되는 흐름으로 경험되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실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간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현재화하게 마련이다. 오세리현 작가에게 ‘시간’이란 시인 자신의 자기실현을 끊임없이 유예하면서도 몸 안에 수많은 흔적을 새겨놓는 궁극의 파문과 같은 실체이다. 작가는 시간이라는 것이 숨기도 하고 휘돌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영원을 지향하면서 언젠가는 사라져갈 존재자들에게 불가항력적인 사랑의 유전자를 남기는 원리라고 사유한다. 그래서 그녀가 건네는 시간에 관한 언어는 과거 미화美化의 원리나 미래 전망의 원리가 아니라 삶의 흔적을 승인하고 그 위에서 사랑의 불가피성을 희원하는 원리로 나아간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처한 현재형에 구체적 육체를 입히는 방식으로 시간을 낱낱이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에 관한 유한자有限者들에 대한 연민과 애착은 수필집 곳곳에서 돌올하게 나타나 크나큰 감동을 선사한다. 시간예술로서 그녀의 수필이 오롯하게 서는 순간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삶의 변주곡은 작가의 클래식 경험담이다. 지난 계절 우연하게 들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생각하면서 그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은 경험을 들려준다. 베토벤이 청각을 잃어가는 중에 작곡했다는 피아노 소나타 14번 악보를 접했을 때, 작가는 가장 예술적이며 서정적인 음악이 고요한 달빛처럼 스며드는 기분을 느낀다. 한 줄기 빛의 환희와 감동이 어두운 영혼을 서서히 비추어주던 그 순간 ‘월광 소나타’는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는 한 편의 시로 다가왔던 것이다.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이 곡은 작가가 사춘기 때 처음 들었는데, 그 후 그녀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원천적 동기가 되어 주었다. 언니가 청계천 음반 가게에서 구한 중고 엘피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들었을 때가 바로 오세리현 작가가 가지게 된 클래식 음악의 원형이 되어 준 것이다.
작곡가가 겪은 고뇌와 비탄을 표현한 ‘월광 소나타’처럼 한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응축된 음악과의 교감은 내 안에 쌓인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와 평안을 얻게 하며 혼탁해진 정신을 맑게 정화한다. 음악은 고단한 인생 여정에 따뜻한 온기가 되어 거친 세상에 뿌려지는 향유이다. 권태로운 일상에 새로운 삶의 리듬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음악은 내 삶의 변주곡이다.
한 예술가의 고뇌와 비탄이 담긴 ‘월광 소나타’처럼, 그녀의 수필도 한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응축된 언어예술로 태어난 것일 터이다. 그녀의 글쓰기도 음악과의 교감을 통해 번민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와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음악은 고단한 인생 여정에 온기가 되어 세상에 뿌려진 향유처럼 다가왔을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 작가는 우리가 불행을 거치며 행복의 참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다고 사유한다. 신은 우리에게 불행을 견뎌내는 힘도 주셨고, 고난을 이겨 낸 후의 성취감과 행복감도 가지게 해 주시지 않았던가. 그렇게 작가는 “강물처럼 유연하며 강한 삶을 배우고 싶다. 강물은 남과 다투지 아니하며 장벽이나 방해물이 있어도 망설임 없이 돌아간다.”(내 맘의 강물)면서 인생의 고통과 자유의 양가적 가치를 모두 사랑하는 예술적 등가물로서 글쓰기를 오늘도 수행해 간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브레인게이트(Brain Gate)지 않는가.
역에서 역으로는 어느 봄날 미국을 방문한 감태준 시인의 강의를 들은 작가가 시와 삶을 사유한 기록이다. 감태준 시편 역에서 역으로의 “공원 벤치는 자고 나는 간다./ 레일을 따라 아득한 세월 속으로/ 투덜대는 바퀴를 달래며/ 긴 짐칸을 끌고/ 간다.”라는 구절을 떠올린 작가는 삶이 비록 고통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감내하며 종착역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하기까지 마주치는 수많은 인연을 짐칸에 쓸어 담고 목적지까지 끌고 간다. 우리도 삶이라는 무게를 지고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야 한다. 이때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싣고 다음 역으로 떠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이승의 간이역처럼 머물다 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게 된다.
인생은 “집으로 아득한 세월 속으로” 가는 것이라고 시인은 시구를 마무리했다. 주어진 삶이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무언가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온갖 인연의 무게를 짐칸처럼 끌고 가는 것이며 역에서 역으로 몸을 옮겨 안식처인 집으로 향한다. 영혼의 세계인 죽음으로 향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살아가는 동안 심층의 시 한 편을 품고 산다면 덧없는 이 지상의 삶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애수에 차 있는 간이역이리라.
“집으로 아득한 세월 속으로”라는 결구結句를 떠올리면서 작가는 삶이란 정해진 궤도를 따라 무언가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에 상도(想到)한다. 심층의 시 한 편 품고 살아감으로써 덧없는 지상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애수에 차 있는 간이역”을 예술적으로 구축한 것이다. 그렇게 삶이란 출생이라는 출발역에서 죽음이라는 종착역까지 가야 하는 일회성의 유한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역에서 역으로 나아가는 동안 “사랑의 자비가 있기에 우리는 실패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생”아픔을 딛고, 나는 글을 쓰네을 그 역설적 가능성으로 품게 된다. 오세리현 수필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안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는 이른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피력한 고백적 수필이다. 글쓰기를 처음 배우던 시간, “문인이란 이름을 가진 지도 어언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작가는 이러한 시간의 간극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사유한다. 글을 쓰는 동안 자아의 눈이 크고 깊게 뜨였고, 고뇌와 희열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일상에 획기적 변화를 준 글쓰기는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끔 해 주었고, 등단 과정은 작가를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글 쓰는 일은 인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매사 사는 일이 조심스럽고 사려도 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좌우명처럼 다짐하는 것은 좋은 글을 쓰겠다는 초심자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초심이 본심이라고 했다. 등단하던 그때의 환희와 감격, 각오로 글쓰기에 꾸준히 노력하며 매진할 것이다. 본심은 인간애의 심성을 잃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녀는 초심처럼, 글 쓰는 일이 인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거듭 다짐한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초심이 본심”이라고 강조한다. 등단하던 그때의 환희와 감격과 각오로 글쓰기에 매진해 갈 오세리현 작가의 의지가 미덥게 다가온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고 넓고 깊은 수필의 세계에 한 발 내디딘 그때 발걸음으로 그 길을 기꺼이 가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이 따뜻하게 찾아온다. 그렇게 작가는 “처음 만남처럼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불빛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남처럼 하고 생각하면서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며 내 생명을 귀히 여길 때 다른 사람의 생명 또한 사랑할 수 있는”(분노의 시대) 글쓰기의 이법(理法)을 거듭 새겨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순리란 삶의 순간순간을 지탱하는 운동이지만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실존적 경험을 힘겹고 아름답게 유지해 가는 원리이기도 하다. 오세리현 작가는 자신의 수필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어떤 지남指南 역할을 하는 삶의 순리를 탐색해 간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수필의 격조는 시간이라는 실체를 가다듬고 반영하고 해석해 가는 눈높이에서 완성되고 있는데, 이때 시간이란 그 자체로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미학적으로 변형한 순리의 은유로 다가온다. 그만큼 작가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경험과 기억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속성을 활용하여 가장 아름다운 시간예술을 창조해 낸 것이다. 삶이나 사물의 비의秘義를 암시하려 할 때 우리가 시간의 흐름이라는 은유를 택하여 기억을 구성하려는 것도 시간의 이러한 속성 때문이 아닌가. 요컨대 오세리현 작가는 구체적 공간을 탐사하면서도 그 안에서 삶을 시간 형식으로 은유함으로써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을 구성해 가는 원리를 충실하게 수행해 감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도 섬세하고도 심미적인 시선을 한결같이 보내고 있다. 그래서 ‘보이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의 위의威儀를 동시에 우리에게 들려준 것이다. 이때 작가는, 삶의 흔적을 승인하고 사랑의 불가피성을 희원해 온 시간들을 적극 호출하고 있다.
4. 깊은 사유와 어우러지면서 산뜻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풍경들
오세리현의 수필은 서정성과 서사성, 고백성과 소통성, 인생론과 문명 비판론 등 다양한 무늬들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면서, 수필이라는 양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전범典範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녀의 안정되고 투명한 문장이 그러한 빛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일 것이다. 그렇게 오세리현의 수필은 사물과 어우러지는 사유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산뜻한 깨달음의 과정을 투명하고 잔잔한 언어로 들려준다. 그 흐름을 따라 우리도 적막하고 고독한 삶을 순간적으로 넘어서게 된다. 그만큼 오세리현의 수필은 오랜 시간의 적층積層에서 발원하면서도 자신이 치러온 경험과 상상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현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한 미학적 의지를 통해 삶의 궁극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 그녀 수필의 확연한 진경(進境)일 것이다. 이번 수필집은 어떤 작품을 인용해도 그녀의 이러한 섬세한 삶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균질적 수준을 갖추고 있는데, 그러한 언어로써 삶의 궁극적 지경을 탐색하는 치열하고도 섬세한 성정의 미학이 어찌 아름답고 벅찬 과정이 아니었겠는가. 이때 작가는 지나온 흔적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데, 이때 그리움이란 대상을 향한 욕망이 시간의 풍화 끝에 남은 정서적 지향을 말한다. 이는 작가로 하여금 존재론적 기원(origin)을 향하게 하면서 어떤 부재 상황을 극복하거나 깨끗한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지향을 동시에 함유하게끔 해 준다. 그 그리움의 마음을 담은 명편 몇몇을 만나보도록 하자.
겨울바다에서 작가가 수행하는 “아득한 수평선이 보이며 낭만이 있고 푸른 정열이 있는 저 바다가 좋다.”라는 고백은 이 작품을 한껏 청신하게 만들어 준다. 바닷가 가까이 사는 작가가 아침저녁 바닷바람과 내음을 맡으며 생기를 얻어온 과정은 바다가 “내 영혼의 쉼터”라고 말하게끔 해 준다. 햇살이 넓고 깊은 바다를 한순간에 화려한 금빛 옷으로 갈아입히는 장엄한 풍경은 늘 벅찬 감격으로 다가온다. 이어 작가는 겨울 바다에서 큰 인생론을 얻는데 “모든 것을 포용하는 큰 가슴의 생명체”인 바다야말로 “멀리서 바라보면 온유한 사람처럼 순하고 부드러워” 보이고 “인간을 황홀하게 하기도 하고 두렵게 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향긋한 커피 향이 방 안 가득히 퍼진다.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을 비우니 정신이 맑아지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온기가 느껴진다. 무한한 생명의 근원지인 바다를 닮고 싶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수용하며 포용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동녘으로부터 해가 솟아오른다. 바다에 취한 듯 유희하던 달님은 시나브로 떠나가고 그 겨울 바다는 홀로 찬연히 새 아침을 맞이한다.
향긋한 커피 향과 어우러지는 “무한한 생명의 근원지인 바다”는 작가로 하여금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수용하며 포용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배우게끔 해 준다. 특별히 겨울 바다는 홀로 찬연히 새 아침을 맞이함으로써, 이민 초기 삶을 살았던 이들의 기억을 환기시켜 준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귀담아 들어줄 친구가 없어 가슴에 고인 한恨을 바닷가에 두고두고 풀었을 것이다. 바다가 그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어주고 아픔을 감싸준 친구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끊임없는 보급에 애쓰는 것은 바로 해외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의 몫”한글, 세계 무대에 서다이라는 다짐처럼, 오세리현의 수필이 이민자들의 애환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그녀의 수필은 “슬픔처럼 우울한 마음의 바탕에 즐거웠던 기억이나 긍정적인 생각과 사랑했던 일을 떠올리면 마음 치료의 힘이 될 것”‘행복한 생각’이 치료의 힘을 믿는 예술적 향연으로 찬연한 빛을 품고 있다.
봄날에 추억하는 동백꽃에서 작가는 앞뜰 동백꽃 풍경을 두고 “환하게 불을 밝히는 꽃망울이 꽃 등불처럼” 눈부신 기억을 떠올린다. 고창 선운사는 동백꽃이 아름다운 곳이고, 서정주의 명편 선운사 동구가 새겨진 시비가 있는 곳이다. 동백나무는 언 땅속에 뿌리를 뻗고 안으로 안으로 맑은 향기를 품는데, 작가는 동백을 통해 생명이 이토록 고결하고 거룩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향기를 남길 것인가를 생각한다. 학창 시절 작가는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한국화를 배웠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서예를 배운 예술 통通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동백꽃을 그릴 때에도 붓의 끝이 화폭에 닿을 때마다 느꼈고, 그때 한 잎 한 잎 붉은 꽃잎이 하얀 화선지에서 피어나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렇게 흰색 한지에 그려진 한 송이 꽃이 순백의 눈 속에 핀 동백꽃을 연상하게 해 줄 때, 작가는 겸손한 아름다움, 완벽한 사랑, 희생을 거기서 배운 것이다. 모두 예술이 하는 일이다.
동백꽃은 잔설 속에서도 불꽃처럼 만개한다. 해풍에 스러질 때면 꽃잎이 흩어짐 없이 송이채로 꼿꼿이 뚝 떨어진다. 동백꽃은 물러설 때나 떠날 때 절제와 용기 있는 단아한 미덕을 지녔다. 동백꽃의 그 품위와 기개가 한층 더 우러러보이는 3월의 봄날이다.
동백꽃 나무 앞에 서서 어머니의 사랑이 붉은 동백꽃처럼 가슴 속에서 따뜻한 온기로 다시 피어나는 것을 감각하는 작가는 잔설 속에서 불꽃처럼 만개한 아름다운 꽃처럼 살자고 다짐한다. 물러설 때나 떠날 때 절제와 용기를 보여주는 동백의 미덕을 생각하면서 그 품위와 기개를 사유하는 그녀의 수필이 “사람은 저마다 찾고 싶은 섬이 있다. 그것을 찾으려면 익숙한 항구와 헤어져야 한다. 떠남이 없다면 섬도 발견할 수 없다.” 끝없는 방황 같은 잠언을 여지없이 충족하고 있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사랑은 이른 봄 잔설이 남은 워터맨 산에 다녀온 행장의 기록이다. 사막이어서 7천 피트 이상에서만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이곳은 솔향의 청량함과 고요한 산길이 인상적이다. 눈꽃이 환하게 피어난 겨울 산에서 작가는 곧 눈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눈snow)과 눈eye의 상생적 조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얼마 전 자연 발화된 산불로 소나무들이 밑둥만 남긴 채 잿빛으로 검게 탄 겨울산을 걸으면서 작가는 햇볕에 반짝이는 송진 방울 몇 개가 타다 남은 나뭇등걸 끝에 매달려 있음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방울처럼 맺혀 있는 송진 방울은 나무 자신에게 보낸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불에 탄 산자락에서 새로운 움을 틔우며 연한 잎의 아기 소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고통 속에서 새로 경험하는 은총을 상상한다. 그러한 행운을 우리 모두 한 번이라도 경험하며 받은 복을 온전히 누렸으면 좋겠다고 사유 해보는 것이다. 그러한 흐름 안에서 “서로 다른 인간관계는 바람 부는 가을 들판의 벼처럼 부대끼며 사는 행복이 있다.” 다르게 부대끼며 살기라는 지혜도 파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작가는 ‘바다’와 ‘꽃’ 같은 풍경과 ‘보이지 않는 사랑’을 통해 지나온 흔적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각인한다. 물론 그리움이란 과거를 향하는 것이겠지만 작가의 그리움은 현재적 삶을 지탱하는 원형으로 새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가에게 기억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상이자 살아갈 날들의 근원적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게 기억은 작가로 하여금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종의 존재 전환을 꾀하게끔 해 주면서 일상적 현실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게끔 해 준다. 비록 순간적이지만 새로 펼쳐진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그리움의 경험은 다양한 사물이나 풍경들로 그 권역을 넓혔다가 다시 자기 확인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밟아간다. 그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귀소歸巢 지점이 그녀의 수필들일 것이다. 그녀의 잘 짜인 언어를 통한 감동은 그만큼 우리가 지녀온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깊은 사유와 어우러지면서 산뜻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풍경들이 아닐 수 없다.
5. 고유한 문장과 사유의 정점을 구가해가는 존재 완성의 의지
지금까지 우리가 천천히 읽어왔듯이, 오세리현의 수필은 지나온 시간 속의 사람, 시간, 풍경을 섬세한 기억으로 복원하면서 그들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따뜻하고 애틋하게 건네고 있다. 이러한 회상과 재현의 예술성이 말하자면 그녀 수필의 정수精髓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수필은 이러한 세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힘을 이렇게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수필은 우리가 살아가는 미세한 삶의 국면에 대한 빼어난 관찰과 표현을 통해 예술적 정점을 구가한 것이다. 운문 장르의 자유로운 감각과는 달리 산문 장르의 빽빽하고 단정한 사유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수필 양식의 성취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오세리현 작가의 면밀한 관찰과 판단과 형상화 과정을 경험하면서 삶의 불모성과 한계를 깨닫는 동시에 지난 시간에 대한 위안과 반성적 시선을 얻기도 한다. 특별히 새롭고 충격적인 소재보다는 충분히 낯익은 이야기를 택해 고전적 감동에 이르는 그녀의 수필은 우리에게 창조적 영감을 선사하면서 생명력을 가진 아우라를 풍요롭게 소환해 주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또한 수필에는 일상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는 감상을 솔직한 주관에 의해 표현하는 작가의 예술적 솜씨가 반영된다. 그 안에는 강렬한 인생론적 태도와 함께 작가 고유의 예술성이 강하게 들어 있게 된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가 자신의 정서를 독자에게 전달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오세리현 수필이 삶의 주변, 외곽, 상실된 것들을 향해 손길과 눈길과 발길을 여는 언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탈환하면서 친근하고도 머나먼 대상들을 호명해 가는 작가의 필치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대상을 찾아가는 오세리현 수필의 사랑과 그리움은 두고두고 우리 수필의 근원적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수필은 자기 확인이라는 욕망과 함께 궁극적 삶의 지향이라는 보다 더 큰 의지를 아울러 품은 언어적 결정結晶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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