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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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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99284
ISBN
9791158546434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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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9-15
페이지, 크기, 무게 192쪽, 135*200mm, 250g
목차
머리말_ 결

1부. 그리움이 몸에 남긴 것

하얀 캔버스
아버지와 크레파스
버스
엄마·1
엄마·2
외할머니
개코 문학 선생님
말더듬
약속
길
죽음
하얀 지퍼

2부. 그림이 나를 살리다

고향
절망
은행나무
유훈
강아지풀
전시
그림
스승
명상
선생님
귀향
평화의 소녀상

3부. 꿈과 몸이 그림이 되는 순간

숨
그림명상
나바오명상
걷기명상
몸
아이
사람
세 사람
연꽃
빛
돌탑
호랑이

4부. 나의 심장에서 너의 심장으로

소나무
찔레
나팔꽃
풀꽃
하루살이
폭죽
행복
길
하얀 꽃나무
기억
템플스테이
마음

에필로그_ 죽음, 바람에 날린 꽃잎이 물위에 떨어지는 소리
저자소개
저자 : 나순단
1976년 한겨울, 경북 구미 금오산 산골에서 태어나 숲과 계곡, 바람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순심여고를 졸업하고, 서른아홉에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가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동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수묵으로 그린 〈강아지풀〉 연작으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채색화 〈지금 이 순간, 천국〉 연작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꿈과 희망을 그렸다. 최근에는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바라보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행복과 사랑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삶 속에 있다고 믿는다. 명상하는 화가로 살아가며 생각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쓴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세상에 보여 주고자 한다.
국회아트갤러리 초대 개인전을 비롯해 수십 차례의 초대전과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외 단체전과 그룹전, 아트페어에 다수 참여했다.
출판사 서평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신의 생을 오래 바라보는 일

화가 나순단은 스스로를 ‘명상하는 화가’라고 말한다. 그에게 명상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한 걸음 물러서서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 사람들과 부대끼며 얻은 기쁨과 상처, 꿈과 현실, 스승과의 인연,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그렇게 삶에서 만난 수많은 시간과 마음이 그의 그림 안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겹쳐진다.

『너에게 가는 봄』은 화가 나순단이 그림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살아온 시간을 담은 수필집이다. 작가에게 그림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머물고, 꿈과 현실이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기쁨과 상처뿐 아니라 늙음과 죽음까지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림의 뿌리가 된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 화가로 살아오며 겪은 삶의 굴곡, 예술의 길에 깊은 흔적을 남긴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도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작가는 그것들을 미화하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좋았던 날과 아팠던 날 모두가 지금의 자신과 그림을 만든 시간임을 받아들이며 오래 들여다본다. 그래서 책은 그림 수필집이지만 그림을 싣지 않았다. 읽는 이가 스스로 그림을 상상해 작가의 세계에 닿게 한다.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며 지나온 시간,
그리고 삶의 끝에서도 놓지 않고 싶은 사랑과 감사에 관한 이야기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울 수 있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나순단 작가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바라본다. 만약 자신의 삶이 여섯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가정한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이루고 가지려 하기보다 산과 들을 걷고, 부모님 곁에서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과 인연을 맺은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남는 것은 그림이라고 말하는 화가 나순단. 그 그림이 외로운 사람과 힘겹게 하루를 견디는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숨’이 되어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너에게 가는 봄』은 그림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그림과 삶, 기억과 꿈, 만남과 이별, 사랑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나순단 화가가 오래 바라본 마음의 풍경이 담겨 있다.

책 속에서

그림은 평온한 마음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꿈과 현실, 기억 사이를 오가며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을 그대로 느낄 때 그림은 생생한 감각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서로 다른 감각의 흔적은 하나의 결로만 남을 수 없다. 그림에도 반드시 따라야 할 하나의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없는 것이 곧 법인 것처럼.
나는 고정된 형식에 갇히지 않는다. 매 순간 일어나는 내면의 느낌과 흐름을 살피며 자유롭게 화면을 마주한다. 흔들리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렇게 남겨진 다채로운 결이 곧 나의 그림이다.
- 머리말

산 아래 작은 초가집 같은 우리 집 옆에는 양옥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반듯한 옷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세욱이가 살았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농번기마다 학교에 오지 못하고 일하러 갔던 경자네 집을 지난다. 우리 셋이 오 년 동안 함께 학교에 간 기억이 없다.
내리막길 끝에는 논밭이 펼쳐진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좁은 샛길이 이어진다. 벼를 심는 아버지와 엄마,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어느 순간 벼는 내 키만큼 자라 있다.
-p. 49, ‘길’ 중에서

‘만약 내 인생이 여섯 달만 남았다면 무엇을 할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마다 나도 모르게 새해 목표에 적어 두었던 말이었다.
미술대학 가기.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 서른 후반의 늦은 나이에 편입을 준비하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에 이끌리듯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희뿌연 잿빛의 허허벌판 같던 도시가 파스텔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며 윤기를 잃어 가던 몸에 고운 이슬비가 내렸다.
-p. 66, ‘절망’ 중에서

대학원에 입학한 뒤 무엇을 그려야 할지 한참 동안 헤매고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피어난 강아지풀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 참 기특하구나. 정말 대단하다. 이 틈을 뚫고 피어나다니.”
며칠 동안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외면하고 있었는데 강아지풀에게 대단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릴 적 강아지풀과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어와 작고 기특한 강아지풀을 수묵으로 그렸다.
교수님이 그림을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강아지풀 좋은데.”
그 한마디에 강아지풀을 그렸고 졸업 논문 소재가 되었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내 그림 앞에 서 계시다가 의자를 가져와 앉으셔서 오래 보셨다.
“그림이 되겠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은 말씀하셨다.
“어, 그림이 되었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힘들지 않았는지 늘 물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쉽게 그려. 쉽게.”
살면서 그림이 제일 어려운데 쉽게 그리라니.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p. 72, ‘유훈’ 중에서

할머니를 도와드린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 주었다. 전쟁과 평화, 국가와 개인, 역사와 한 사람의 몸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림 속 꽃과 바다와 배와 여성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를 품고 비추며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글씨 한 줄은 나를 할머니에게 데려갔고, 할머니는 나를 한 점의 그림으로 데려갔다.
-p. 107, ‘평화의 소녀상’ 중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다른 세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다른 세상을 보다 보면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 같은 세상을 만난다. 몸을 보고 숨을 보고 그림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깊은 명상에서 가상과 현실은 서로 마주 보는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 안에서 겹친다.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잠시 나를 빌려 스스로를 바라본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몸은 저절로 숨을 쉰다. 그림명상은 그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호흡이 잔잔해지면 몸 어디에 힘이 들어가고 어떤 느낌이 남아 있는지 천천히 살핀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를 오가던 마음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p. 114, ‘그림명상’ 중에서

연꽃은 오래도록 피어나지 못한 마음이었을까.
몸이 기억하는 밤, 욕조 안에서 물을 틀어 놓고 옷을 입은 채 앉아 있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물은 계속 흐르고 몸은 젖어 갔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흩어졌다.
연꽃호수 물속에서 새롭게 피어나고 싶었겠지. 진흙 같은 마음을 누구에게 말하지 못해 알아볼 수 없는 파란 달의 글씨로 썼을까. 나무처럼 커진 푸른 강아지풀은 우리 안에서 바깥세상으로 빛나고 싶은 바람일까.
가끔 파란 달에 적힌 글씨가 궁금하다. 언젠가 그림으로 그리면서 글씨를 써 놓고 그 위를 달로 지웠다. 글은 기억나지 않는다.
-p. 137, ‘연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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