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희준
1995년 서울 출생.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20년, 살인 누명을 쓴 로봇 교사가 진범을 추적하는 내용의 추리, SF, 청소년 소설을 결합한 장편소설 《로봇 교사》를 출간해 작가가 되었다. 이어 2022년에는 자신을 길러준 도깨비 아빠를 구하려는 인간 소년의 모험을 그린 장편소설 《하현》을 출간하였고, 2024년에는 전설 속의 용을 둘러싼 고등학생 소년과 여왕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푸른 용의 나라》를 출간하였으며, 2025년에는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10명의 이야기가 퍼즐처럼 연결되는 역사 판타지 소설 《엑스터시》를 출간하였다. 같은 해에 ‘무한히 위대한 소설’을 쓰고 싶은 고등학생의 성장담을 담은 《목동의 예쁜 신》도 출간했다. 이 중 데뷔작 《로봇 교사》는 OTT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출판사 서평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 시를 쓰기 위해 애쓰다
점점 시가 되어 가는 시인 지망생의 이야기
《추모시》는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닌 소설과 서사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런 독특한 형식으로 이 참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특별한 아이디어로 떠오른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머리에 깃들었다고 말한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에 당연히 언어로 쌓은 시와 소설에도 한계가 있다. 시와 소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모든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거나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어떻게 꺼내놓을지 고민해왔는데 ‘소설로 시작해서 시로 끝나는 작품’이야말로 자신이 이 비극을 담아낼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시인 지망생 시윤은 추모시를 쓰기 위해 고뇌한다. 그는 좋은 시를 쓰고 싶지만 수백 명의 목숨을 감당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글을 쓰지 못한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윤이처럼 언어의 한계와 재능의 부족으로 이토록 큰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한 작가는 그 자체를 곧 문학적 형식으로 삼기로 했고 이 소설의 독특한 형식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비록 언어를 빌리긴 했지만 언어 이전의 울음을 최대한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했기에 소설은 그렇게 시가 되었다.
저는 이 작품이 저 자신의 슬픔을 누군가에게 희미하게나마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유족과 희생자들에게, 여러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감사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곁을 떠나간 이들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책 속에서]
나는 별생각 없이 옆에 있던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 아침에 하는 재미없는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넘기다가 뉴스에서 채널을 멈췄다.
뉴스에서는 전라남도 진도군 근처의 바다에서 ‘노을호’라는 대형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노을호는 어제저녁 인천항을 출발해서 제주도로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서 나는 잠시 멍하니 뉴스 화면을 응시했다. 그 배가 어제 내가 탔어야 할 배였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에 경련이 이는 것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달려갔다. 바닥에 있던 휴대폰을 붙잡았다. 두 손이 덜덜 떨렸다. 휴대폰을 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가장 최근에 전화한 사람의 번호가 떴다. 현수였다. 나는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수의 휴대폰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민규와 진호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 64쪽에서
“그러게 가난한 애들이 뭐하러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
그들이 나를 향해 조롱했다.
“노을호 진짜 지겹다. 그만 좀 해라.”
“유족들이 자식들 시체 팔아서 정치에 이용해 먹네.”
나는 손을 내저었다.
하지 마세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겨우니까 그만하라고.”
지겨워? 뭐가 지겨운데?
“노을호 얘기 이제 지겹다고.”
입 다물어 제발!
나는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으나 말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제발 그만해. - 111쪽
시를 쓰겠다는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내가 감히 시를 쓸 자격이 있을까?
그 참사 앞에 감히 시가 서 있어도 되는 걸까?
나는 두 손을 펼쳐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 안에 덧없고 가벼운 단어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두 손을 꽉 쥐었지만 언어는 물처럼 손에서 흘러내렸다. 이런 걸로 뭘 하겠다고? 이런 덧없는 것으로 추모를 하고 기억을 하겠다고?
시는…
내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무너져 내렸다.
시는 보잘것없는 것이구나.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나는 한없이 떨어졌다. - 152~153쪽
“난 네가 꼭 시를 써 줬으면 좋겠어. 솔직히 말하면, 난 그 시를 쓰는 게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너는 시인이잖아.”
내가… 시인이라고?
난 내가 시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는 서영이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영이는 내게 그런 생각 하지 말라는 듯,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넌 할 수 있어. 난 시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떠난 우리 친구들은 네가 시를 써 주길 바라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그들을 위해서 시를 써 줘.”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 여태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 165~166쪽
시는 언어로 쓰는 게 아니구나.
시는 언어로 쓰는 것이지만
언어 이상을 그려야 하고
언어 이하를 보듬어야 하는구나.
그래서 시는 언어가 아니구나.
시는 언어가 머무는 곳이 아니구나.
나는 더 이상 시를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성이의 글을 읽는 순간,
그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돌이킬 수 없이 시가 되어 버렸다.
허공에 떠도는 별.
그 아래 짙은 외로움.
별빛 닿지 않는 저 깊은
내 외로움 한 조각. - 185~186쪽
시는 나와 너를 노래하며
시는 내가 되어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들 부르다가
결국 나는 시가 되었다
이 가난한 시는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혼자가 아니야
너희처럼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영원히 그럴 거야
너희가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내가 너희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래할게
미안해
기억할게 -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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