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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양장본
한강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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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185155
ISBN
9788954651134
출판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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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18-04-25
페이지, 크기, 무게 196쪽, 120*188mm, 370g
판형 양장본
목차
1장 ─ 나 007
2장 ─ 그녀 045
3장 ─ 모든 흰 115

해설 권희철(문학평론가)|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141
작가의 말 181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한강
1970년 겨울에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말라파르테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2024년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 : 최진혁
이 작가의 신간 & 인기 도서
출판사 서평
고독과 고요, 그리고 용기.
이 책이 나에게 숨처럼 불어넣어준 것은 그것들이었다.

1.
이 책의 끝에 붙일 ‘작가의 말’을 쓰겠느냐고 편집자가 물었던 2016년 사월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 년이 지나 개정판을 준비하며, 비로소 어떤 말을 조용히 덧붙여 쓰고 싶다는―쓸 수 있겠다는―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서

2.
2018년 봄,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이 년 전 오월에 세상에 나와 빛의 겹겹 오라기로 둘러싸인 적 있던 그 『흰』에 새 옷을 입히게 된 건 소설 발간에 즈음해 행했던 작가의 퍼포먼스가 글과 함께 배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작가의 고요하고 느린 퍼포먼스들은 최진혁 작가가 촬영한 영상 속에서 그녀의 언니-아기를 위한 행위들을 ‘언어 없는 언어’로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다시 만나게 된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은 수를 놓듯 땀을 세어가며 지은 책, 그런 땀방울로 얼룩진 책입니다. 이참이 아니라면 ‘흰’이라는 한 글자에 매달려 그가 파생시킨 세상 모든 ‘흰 것’들의 안팎을 헤집어볼 수가 있었을까요. ‘흰’이라는 한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니 ‘흰’이라는 한 글자의 생김과 발음에서 끓어 넘친 숭늉처럼 찐득찐득한 슬픔 같은 게 밀려듭니다. ‘흰’, 익숙한 듯 편안했다가 낯선 듯 생경스러워지는 이 느낌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안다고 말할 수도, 또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 기묘하고 미묘한 ‘흰’의 세계 속에서 한강이 끌어올린 서사는 놀라우리만치 넓고 깊습니다. 예민하면서도 섬세한 특유의 감각으로 예리하게 건져올린 사유는 얼음처럼 차갑고 막 빻아져 나온 뼛가루처럼 뜨겁습니다. 우리는 모두 ‘흰’에서 와서 ‘흰’으로 돌아가지 않던가요. 한강이 백지 위에 힘껏 눌러 쓴 소설 『흰』. 그 밖의 모든 흰 것을 말하는 소설 『흰』. 『흰』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의 목록은 총 65개의 이야기로 파생되어 ‘나’와 ‘그녀’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장 아래 스미어 있습니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때론 65편의 시가 실린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힘에 손색이 없는 것이 각 소제목 아래 각각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밀도 있는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얇은 볼륨감을 가진 이 한 권의 소설은 쉽게 읽혀버리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 읽게 하다가, 흐린 연필 한 자루를 들어 문장에 혹은 단어에 실금을 긋게 하다가, 다시금 앞서 읽은 페이지로 돌아가 그 앞선 데서부터 다시금 읽기 시작하게 만듭니다. 내 마음의 멍울 같은 게 책장에 스미면서 점점 묵직해져가는 소설 『흰』의 무게감을 받치기 위해 불려나온 흰 것들. 예컨대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흰 도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흰 돌, 흰 뼈, 백발, 구름, 백열전구, 백야,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흰나비, 쌀과 밥, 수의, 소복, 연기, 아랫니, 눈, 눈송이들, 만년설, 파도, 진눈깨비, 흰 개, 눈보라, 재, 소금, 달,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손수건, 은하수, 백목련, 당의정…… 등등 온통 무참히도 흰 것들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발음해봅니다. 이 소설은 이렇듯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는 두 가지 과정 속에 불현듯 진정한 제 속내를 들켜주기도 한다지요. 흰 것을 떠올리고 불러내고 불러주고 글로 쓰는 일련의 과정이 결국은 흰 것을 보고 흰 것을 읽는 우리를 치유시켜주는 일이 아닐까요.

4.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죽은 제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의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봄 누군가 나에게 물었지요.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그 순간 나는 그 죽음을 떠올립니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나는 지구 반대편의 오래된 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우연히 1945년 봄 미군 항공기가 촬영한 이 도시의 영상을 보게 되지요.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이 도시를 (…)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깨끗이, 본보기로서 쓸어버리라”는 히틀러의 명령 아래 완벽하게 무너지고 부서졌던 도시, 그후 칠십 년이 지나 재건된 도시 곳곳을 걸으면서 나는 처음 “그 사람-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지요.

오직 목소리만을 들었을 것이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알아들을 수 없었을 그 말이 그이가 들은 유일한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확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그이가 나에게 때로 찾아왔었는지. 잠시 내 이마와 눈언저리에 머물렀었는지.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어떤 감각과 막연한 감정 가운데, 모르는 사이 그이로부터 건너온 것들이 있었는지. 어둑한 방에 누워 추위를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32~33쪽)

나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아가기에 이릅니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처럼 새겨져 있으므로” 나는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통해 세상의 흰 것들을 다시금 만나기에 이릅니다. 희게 얼어 있는 바다여, 태양의 빛이 조금 더 창백해지기 시작하는 서리가 내릴 무렵이여, 죽은 나비의 투명해져가는 날개여, 움켜쥘수록 차가워지는 창백한 두 주먹이여, 검은 코트 소매에 내려앉았다 녹아 사라질 때까지 일,이초를 살다 가는 눈이여,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여, 어느 추워진 아침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로 입술에서 처음으로 새어나오는 흰 입김이여,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흰 새여, 날개를 반쯤 접은 새처럼, 머뭇머뭇 내려앉을 데를 살피는 혼처럼 떨어지는 손수건이여,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여.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넋들을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사소하게, 그녀는 자신의 재건에 빠진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의 넋은 아직 육체에 깃들어 있다. (…)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 (108~109쪽)

결혼을 앞둔 동생의 신부가 죽은 어머니의 몫으로 마련해온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태우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그리고 나는 말합니다.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라고. ‘모든 흰’의 이름으로 알게 되고 앓게 된 통증, 이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견뎌낸 뒤에 나누는 작별의 인사라니 최선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진정한 만남의 인사라 할 수 있겠지요. “이승과 저승 사이를 소리 없이 일렁이는 저 거대한 물의 움직임”이 그렇게 섞이는 거라지요.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133쪽)

『흰』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벽을 모래로 허물고, 삶과 죽음이라는 단단함을 무르게 만들고, 삶과 죽음이라는 당연함을 낯설게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평면을 입체로 분산시키고, 삶과 죽음이라는 유한을 우주라는 무한으로 확장시킵니다. 넘나든다는 일은 몸에 유연성을 기르는 일이지요. 유연한 사고가 빚어내는 끌어안음은 연대를 이루기에 충분하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 어차피 모든 산 자는 모두 죽은 자가 될 것이 아닌가요.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 『흰』 ebook에는 사진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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