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망설임(1)
2.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망설임(2)
3. 출발에 대하여
4. 영적 자서전
5. 그녀의 지적 소명
6. 마지막 생각들
에세이
신을 향한 사랑을 위해 학업을 선용하는 것에 대한 고찰
신을 향한 사랑과 불행
신을 향한 암묵적인 사랑의 형태들
주기도문에 관하여
노아의 세 아들과 지중해 문명사
부록
J.-M. 페랭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귀스타브 티봉에게 보내는 편지
모리스 슈만에게 보내는 편지
주
저자소개
저자 : 시몬 베유 (Simone Weil, 1909-1943)
34년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 정치활동가. 1909년 2월 3일,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31년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부임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학교를 휴직하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1934-1935). 스페인 내전(1936-1939)이 발발하자 인민전선 편에서 참전하기도 했다. 1942년, 나치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랐지만, 반나치 활동에 가담하기 위해 자유프랑스정부가 있는 런던으로 홀로 돌아왔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최전선에 투입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후방에서 투쟁을 지원했다. 1943년 8월 24일, 켄트 주 애슈퍼드 요양소에서 폐결핵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생애 동안 베유는 엄청난 양의 글을 썼는데, 흩어져 있던 그 글들은 그녀 사후에 수집되어 편찬되었다. 앙드레 지드는 그녀를 우리 시대 최고의 영적 작가로 평했고, 그녀를 누구보다 존경한 알베르 카뮈는 그녀를 ‘우리 시대의 유일한 위대한 정신’이라 불렀다. 대표작 『신을 기다리며』 외에 『중력과 은총』(문학과지성사), 『뿌리내림』(이제이북스), Oppression et liberte(Gallimard) 등은 전후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역자 :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와 실비 제르맹,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품들을 비롯해 『키에르케고르』『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동문선), 『너무 시끄러운 고독』(문학동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순수하게 시몬 베유의 글만으로 이루어진 알뱅미셸(Albin Michel, 2016) 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 빼어난 번역자의 손으로 시몬 베유의 숨결을 생생하게 살려 냈다.
- 우리 시대 고전이자, 시몬 베유의 전체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글
- 이해를 돕는 옮긴이의 해설 수록
대상 독자
- 고전을 통해 삶과 인감됨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
- 시몬 베유의 삶과 사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
- 신앙의 본질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
책 속에서
제 말에 신부님께서 마음이 상하실지 모르고, 또 그렇게 된다면 저로선 무척 괴롭겠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신을, 그리스도를, 가톨릭 신앙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엔 저는 너무도 부족한 존재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성인들을, 그들이 쓴 글과 그 삶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사랑합니다. 저로선 성인이라 여길 수도, 제가 완전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는 몇몇은 제외하고요. 그런가 하면 살면서 우연히 마주친, 진정한 영성을 지닌 가톨릭 신자 예닐곱 명을 저는 사랑합니다. 또 가톨릭 의례와 의식을 비롯해, 전례와 찬송가, 건축물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랑하는 이 모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엄밀히 말해 교회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 사랑을 가진 이들에게 공감할 순 있어도 저 자신은 그런 사랑을 느끼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모두 그런 사랑을 느꼈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모두가 교회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죠. 어쨌거나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고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로선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사랑이 영혼의 성장을 위한 조건이거나 혹은 제 소명의 일부라면, 제게도 언젠가 그 사랑이 허락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예요.
_37쪽,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망설임
신부님께서 제게 그리스도교적 영감을 불러일으키신 것도,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것도 아니에요. 제가 신부님을 만났을 당시, 그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 이미 완수된 일이었으니까요. 그 어떤 인간의 개입도 없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암묵적으로뿐 아니라 의식적으로 제가 이미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면, 신부님은 제게 아무것도 주시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신부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부님을 향한 제 우정이 오히려 신부님의 메시지를 거절한 이유였을 수도 있어요. 신성한 것들의 영역에 어떤 인간적인 영향력이 행사됨으로써 야기되는 오류나 환상을 두려워했을 테니까요.
_52쪽, 영적 자서전
신의 자비는 기쁨에서나 불행에서나 똑같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드러나 보입니다. 신의 자비이기에 인간의 자비와는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인간의 자비는 오로지 기쁨의 선사에서 드러나거나, 아니면 육신의 치유나 교육 같은 외적인 결과물을 위해 가해진 고통에서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신의 자비를 증명하는 것은 불행의 외적인 결과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불행의 외적 결과물은 대부분 부정적이에요.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신의 자비가 빛을 발하는 건 바로 그 불행 안에서입니다. 그 맨 밑바닥에서, 위로받을 길 없는 쓰라림 한복판에서입니다. 우리가 사랑 속에서 인내하며, 영혼이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나요?”라는 외침을 더는 억누를 수 없는 지점까지 추락한다면,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러서도 계속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마침내 우리는 더 이상 불행도 기쁨도 아닌 무언가에 닿게 됩니다. 기쁨과 고통의 공통 요소로서, 감지되지 않는 무엇이며 순수하고도 핵심적인 본질, 바로 신의 사랑이지요.
_91쪽, 마지막 생각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사고를 멈추는 것, 사고가 텅 빈 유연한 상태가 되어 대상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습득된 다양한 지식들을 자체 안에 유지하는 것이다. 사고와 인접해 있어도 그보다 낮은 수준에, 사고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기존에 형성된 모든 개개의 생각에 대하여 사고는 산 위에 있는 사람 같다. 즉 앞을 바라보고 있어도 동시에 발밑에는 수많은 숲과 평원이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인지하는 것이다. 사고는 무엇보다 텅 빈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 아무것도 찾아서는 안 되며, 자신의 적나라한 진실 속으로 침투하게 될 대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_121-122쪽, 신을 향한 사랑을 위해 학업을 선용하는 것에 대한 고찰
인생의 큰 수수께끼는 고통이 아니라 불행이다. 무구한 사람이 죽임당하고, 고문당하고, 국외로 추방당하고, 비참한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수용소나 독방에 감금당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또 병이 긴 고통을 야기해 생명을 마비시키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연은 기계적 필연성의 맹목적인 작용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이 무구한 이들의 영혼을 낚아채 왕처럼 지배할 수 있도록 신께서 허락하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불행의 낙인이 찍힌 자라면 최선의 경우에도 영혼의 절반밖에 지켜 내지 못할 것이다.
_131-132, 신을 향한 사랑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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