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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은 비어서 비어 있음- 풍경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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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402230
ISBN
9791168231559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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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26-09-23
페이지, 크기, 무게 148쪽, 125*205mm, 192g
목차
모든 집은 빈집이 될 운명이다
개구리는 정원이다
거주지이지만 서식지입니다
도시의 선주민
그림자를 돌려주기
바람에 흔들리는 집
빗물이 밴 풍경
비워진 조각
앉을 자리
지도에는 없는 나라
수직에서 수평으로
나무를 읽는 도서관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강예린, 이치훈
강예린과 이치훈은 건축가이며, 2011년부터 SoA(Society of Architecture)를 이끌고 있다. 강예린은 2019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은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변화하는 도시 및 건축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을 작업의 토대로 삼는다. SoA는 통의동 ‘브릭웰’로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2023)과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2020) 등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의 우승작인 ‘지붕감각’(2015)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건축 전문지 『아키텍처럴 리뷰』가 주관하는 이머징 아키텍트 어워드(Emerging Architect Award, 2016)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김수근프리뷰상(2016), 젊은건축가상(2015) 등을 받았으며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2023)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전시에 작가 또는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건축적 사유를 확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글쓰기와 출판을 지속해 왔다. 함께 쓴 저서로 『도서관 산책자』, 공저로 『파괴적 창조: 소멸의 디자인을 위한 워크숍』 『세 도시 이야기』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건축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뼈대,
도시와 사회를 바라보는 건축가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다
건축사 사무소 SoA의 ‘브릭웰’은 2020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 2023년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을 받으며 서촌의 명소가 된 건물이다. 동그란 벽돌(brick) 건물 안에 네모난 연못을 품고 하늘에 열린 이 공간은 이름 그대로 커다란 우물(well)을 닮았다. 시민들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이곳을 산책하고 정원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다. 그런데 수많은 이들의 쉼터로 사랑받은 이 공간이 “개구리가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의뢰인의 엉뚱한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빈집은 비어서 비어 있음』은 브릭웰을 비롯해 SoA를 이끄는 강예린과 이치훈이 함께 작업한 열두 개의 프로젝트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산문집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건축가의 작업을 대개 완성된 결과물로만 마주한다. 그 형태가 어떤 영감과 문제의식, 의도에서 비롯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사회를 고찰하는 건축가의 시선, 구체적인 재료와 배열로 변화를 구축해 가는 사고의 과정, 그리고 그 실천이 만들어낸 실질적인 변화가 이 책에 담겼다. 안그라픽스가 시작한 건축·조경가 에세이 총서 ‘풍경시’의 세 번째 책으로서, 결과물 이면의 판단과 태도를 기록한다는 시리즈의 지향을 잇는다.

새로운 것을 세우기 전에 이미 있던 것과 관계 맺기
채우는 한편 다른 존재의 자리를 비워두기
강예린과 이치훈의 작업은 도시와 건축이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의 시선은 설치될 구조물보다, 그것이 자리할 공간과 공간을 공유할 공동체를 향한다. 이때 공동체는 이웃한 인간의 집합보다 넓은 개념이다. 우리는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사람의 거주지가 될 텅 빈 땅으로 바라보곤 하지만, 저자들은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존재를 눈여겨본다. 이들에게 건축은 인간보다 먼저 땅에 서식하던 동식물, 햇빛, 비, 바람 같은 날씨까지 수많은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건축이 자리하지 않는 땅에 대한 질문은, 건축이 물러나야 할 땅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지붕을 열어주고 나니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군산 빈집에서도 개망초와 오동나무가 자라났고, 흙이 변하면서 작은 곤충과 풀벌레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도시의 빈 땅은 개발이 유보된 땅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이 건설을 시작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다. 집이 더 이상 인간의 거주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빈집은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서식지로 순환을 시작한다.” _「거주지이지만 서식지입니다」
열두 편의 글은 각기 다른 장소에 얽힌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관계’와 ‘비움’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을 여는 것은 ‘파괴적 창조’ 작업이다. 저자들은 군산에서 폐가를 해체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이를 재현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에 전시했다. 인간이 떠난 빈집은 비워졌지만,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건물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빈 대지는 다른 생명체가 자라나는 서식지가 되었다. 도시에서 빈 땅은 종종 짓고 남은 잉여로 여겨지지만, 저자들은 비우는 일은 세우는 일보다 더 다채로운 관계와 연결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다. 짓는다는 것은 채우고 비우기를 함께 다루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개체가 서식할 수 있도록 어디를 비울지, 이웃한 빈 땅들을 어떻게 이을지 고민하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열두 개의 프로젝트 작업에서 엿보는,
평범한 지침의 특별한 독법
건축가는 헌신적인 청자로서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경청하고, 이를 구조와 치수와 재료라는 건축의 언어로 번역한 뒤, 작업으로 그의 말에 회답한다. 그런데 저자들은 요청이나 지침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도, 곧이곧대로 읽어내지 않는다. ‘설치’와 같은 관습적인 표현마저도 창의적으로 해석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건축전에서는 짓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을 전시한다. 농원에 띄엄띄엄 심겨 방치된 나무들을 옮겨심지 않고도 조화로운 숲을 조성한다. 그늘을 만들어달라는 단순한 요청에는 짙은 그림자 대신 흔들리는 지붕 사이로 들어오는 부서진 그림자로 답한다. 기후에 대처하기보다 기후를 맞이하고 들이는 건축을 고안한다. 공공 미술 작품을 설치하라는 공문을 받고는 위로 세우는 대신 아래로 파고 내려가고, 장애인의 자리를 따로 구분하는 대신 같은 자리를 다른 몸들이 쓸 방법을 찾는다. 도서관의 오랜 금기를 거스르고 책장과 책상을 햇빛이 들어오는 유리창 근처로 끌어온다.
이처럼 이 책은 폭넓은 형태의 프로젝트 현장을 오가며 저자들의 독특한 접근법이 어떤 태도에서 비롯했는지, 그 과정에서 축적된 이들의 고유한 건축관과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파괴적 창조, 브릭웰, 미래농원, 지붕감각, 레인체인포레스트, 윤슬, 국립중앙박물관 으뜸홀 리뉴얼, 신촌 파랑고래, 발렛-다이맥숀, 성수 사일로, 내포-해미 세계청년문화센터, 성남고등학교 도서관까지 다양한 건축 및 설치미술의 사례가 담겼다. 착상과 구현을 거쳐 완공에 이르는 과정은, 건축을 공부하거나 업으로 삼는 이들뿐만 아니라 생태 공동체와의 공생과 서로 다른 몸들의 공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시와 사회를 향한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모두 빈집이 될 집을 일시적으로 채우며 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집은 결국 비워진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줄면 집이 남는다. 도시가 남는다. 건축가는 그것을 알면서도 짓는다. 알고 짓는 것과 모르고 짓는 것은 다르다. 집이 언젠가 빈집이 될 것을 알고 짓는다면, 짓는 방식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콘크리트 말고 지진이나 바람 같은 횡력에 버티거나 습기와 바람에 저항하는 외벽은 없을까. 군산에서 손으로 해체한 그 집들은 사람의 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재료로 지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부서지면 폐기물이 된다. 흙으로 지은 집은 허물어지면 흙이 된다. _10-11쪽, 「모든 집은 빈집이 될 운명이다」

“백송터가 좋아서 그 옆에 땅을 샀는데, 개구리가 살았으면 좋겠어요.”
클라이언트의 언어는 때로 일종의 문학이다. 지침서의 지시어가 아니라 바람을 담은 상상의 언어다. 상징을 해석하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 말이 건축이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상상하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대개 헌신적인 청자다. 집을 원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면서 그가 원하는 바를 구조와 치수와 재료로 번역한다. 이때 건축가의 작업은 클라이언트의 말에 회답하는 서신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의뢰인과 많은 대화를 주고받아 왔지만 집에 개구리가 살게 해달라는 요청은 처음이다. _20쪽, 「개구리는 정원이다」

도시의 빈 땅은 개발이 유보된 땅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이 건설을 시작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다. 집이 더 이상 인간의 거주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빈집은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서식지로 순환을 시작한다. _37쪽, 「거주지이지만 서식지입니다」

도로 한복판에 나무가 서 있다.
차들이 그 나무를 피해 지나간다. 신호등과 가로등과 전봇대 사이에서 나무는 혼자 다른 시간에 서 있다. 처음 이 풍경을 마주했을 때, 나는 도시가 자연을 포획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도로를 내고 건물을 세우면서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 저기 남겨진 것이라고. 그런데 한참을 그 나무 앞에 서 있다 보니,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원래 내가 있던 자리야. 도시가 내 주변을 잠식한 거지, 내가 도시 안에 포획된 게 아니야. 이 나무는 서초구 우면동 218-4번지에서 220년 동안 자라고 있는 회화나무로, S22-28이라는 지정 번호가 붙은 보호수다. _44쪽, 「도시의 선주민」

소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그림자가 콘크리트 벽 위에 맺혔다. 유행이 지난 지 한참이라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향나무가 뾰족한 그림자를 담장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리를 바꾼다. 같은 벽이지만 오전과 오후가 다르고,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보살핌을 잃고 경계를 지키던 나무들이, 건축이 들어선 뒤에야 제 그림자를 가질 벽을 얻었다.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이었던 나무가 장소의 풍경이 되었다. 관심 밖에 있던 것들이 마침내 자기 자리를 얻었다. _58-59쪽, 「그림자를 돌려주기」

건축은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위한 대단한 노력이다. 예를 들면,
빛이 들게 하려고,
길에 열려 있기 위해서,
이 길과 저 길을 이으려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게 하려고,
방에서 산이 보이게 하려고,
회랑 아래 비를 피하기 위해서,
중정을 두기 위해서,
바람이 통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은 건축이 존재하는 아주 구체적인 이유들이다. 어떤 위대한 건축도 건축 스스로를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구체적 이유들에 관념이 덧씌워지면서 건축은 건축이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한다. 말, 혹은 신화. 시대마다 건축의 언어가 있었고, 건축가들은 그 언어를 구사하면서 자신의 작업이 더 큰 무언가에 속한다는 느낌을 얻으려 했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념은 때로 건축가가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이끄는 인식의 도구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관념이 목적이 될 때, 건축은 자꾸만 구체적인 것들을 잃는다. _66-67쪽, 「바람에 흔들리는 집」

기후 위기 시대에 ‘기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점점 더 길어지는 더위 속에서 고층 건물은 창문 하나 열리지 않는 폐쇄적인 내부가 되어가고, 사람들은 공조空調 장치에 의존해 숨을 쉰다. 학교의 여러 건물을 잇는 다리들, 아파트의 외부 복도와 외부 계단도 하나둘 내부로 들어오면서 바깥을 잠시 지나는 경험마저 줄고 있다. 건축은 점점 견고한 내부를 만들어 더욱 밀실과 비슷해지고, 건물 밖에서의 경험을 왜소하게 남길지도 모르겠다. _82-83쪽, 「빗물이 밴 풍경」

서울로7017은 수십 년간 차들이 달리던 서울역 고가도로를 걷는 길로 바꾸는 프로젝트인데, 서울역 위를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규모의 공중 보행로 끝자락에 우리의 작은 공공 미술이 놓이는 셈이었다. 이곳은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세워져 있는’ 장소였다. 낡은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한 보행로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높이로 연결되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솟아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의 맨 끝에 무언가를 또 올려 설치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더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_90-91쪽, 「비워진 조각」

건축은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여기서 의자는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누구의 자리인지, 어떤 몸을 상정하는지, 무슨 풍경을 경험하게 하는지 의자를 통해 제안할 수 있다. _107쪽, 「앉을 자리」

발렛파킹은 주차 ‘공간’만으로 주차를 해결하지 않는다. 계속 차를 순환하고 움직여서 차가 멈출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든다. 발렛파킹의 동학 속에서 주차는 더 이상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으로 해소된다. 시간이공간을 대신한다. 시간지리학에서는 이것을 ‘공간의 시간화timing space’라고 부른다. 시간과 공간의 상보적 작동. 강남이라는 도시가 자신의 결핍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_116쪽, 「지도에는 없는 나라」

학교는 자리를 지정하고 시선을 통제하고 이를 매일 반복함으로써 규율을 몸으로 익히게 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정면에 학교 건물이 있다. 운동장 앞에 높이 올린 조회대가 군대 연병장과 유사하다. 교실에 들어가면 책상과 의자가 선생님이 서 있는 연단 방향으로 줄지어 놓여 있고, 창은 교실마다 같은 위치에 있으며 크기도 동일하다. 복도는 직선으로 교실과 교실을 빠르게 연결한다. 근대의 학교 공간은 하나의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고 쉬고, 같은 방향으로 앉고 바라보고, 동일하게 움직임을 익히는 훈육의 공간이었다. _126쪽, 「수직에서 수평으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칠판에 그림을 그리듯, 건축은 빈 대지에 새로운 무언가를 세우는 일로 이해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지는 비어 있지 않다. 식물이 자라나고 동물이 오고 가며, 이웃이 산다. 땅 위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더라도, 땅 아래에는 흙이 있고 물이 있어서 머지않아 새싹이 돋을 수 있다. 생명체뿐 아니다. 해가 들고 비가 오고 먼 산이 보이고, 바람이 지나간다. 건축가는 이미 서식지인 곳에 초대받은 셈이다. 어디를 비우고, 무엇을 남기고, 어떤 이웃과 손잡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국 건축가는 짓기에 앞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 조절자에 가까운 것 같다. _143쪽, 「나무를 읽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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