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곰팡이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내 속을 긁어대는데, 잠시 깜빡 잊고 있으면 어느새 성장해버리는 푸른곰팡이와도 같다. 늘 긴장을 해야 하는데, 마음 약한 나는 그것이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식구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한없이 잘해주시니 무장해제가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 혼자 주방이나 방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밀착수비를 하고선 돈 얘기를 꺼낸다. 그분은 나의 시어머니다.
신혼 초에는 놀라기도 하고 당황한 적도 많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눈도 끔벅하지 않는다. 구슬리고 달래도 꼼짝하지 않으면 독화살을 뿌려대기 시작한다.그때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푸른곰팡이가 번식을 위해 급속도로 포자를 확산시키고 극한 환경에서는 딱딱한 아포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주변 상황에 맞춰 활개치는 것처럼, 시어머님이 딱 그 방식으로 나를 공격한다.
---「푸른곰팡이」 중에서
시댁에서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울림을 주고 떠난 세 분이 있다. 그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힘들 때마다 위로가 되었다. 한 분은 시할머니이다. 첫 만남에서 “참으로 곱고 선하게 생겼구만” 하며 “시부모님이 어떠한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라”고 하셨다. 또 한 분은 작은시아버님이다. 시아버님은 친동생이라 믿거니 하고 며느리 험담을 하신 것 같다. 작은시아버님은 “조카들이 형님한테 소중한 자식이듯 조카며느리도 한 집안의 소중한 자식입니다” 하며 시아버님 험담을 멈추게 했다. 시외삼촌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내게 살짝 다가와서는 “너의 시어머니가 어떠한 말을 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곧바로 흘려보내거라.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도 일러주셨다.
---「낯선 길에서 만난 뜻밖의 행운」 중에서
시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들이 아니라며 외면했다. 말을 시작했을 때는 또래에 비해 빠르고 정확한 아이에게 ‘촉새’ 같다면서 비수를 꽂았다. 몸이 약한 아이를 보고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겠냐고 남에게 하듯 하는데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취업했을 때는 부모를 잘 만나서 그런 거라고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하셨다. 아이 스스로 노력해서 이룬 결과를 부모 잘 만난 복으로 돌린다는 건 듣는 나로서도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이가 혹여 마음이라도 상할까 싶어 눈치를 봤지만, 다행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듯했다. 그나마 나보다 강한 이이였다.
---「너는 좋겠다」 중에서
B어린이집은 주방이 지하 강당에 있었다. 그해에 TV에서 나오는 회계사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조리사가 그곳에 입사했다. 직장에는 저마다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고 상황에 맞는 인력을 채용하는 건 기본이다. 그의 첫 이미지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도 같았다. 통솔에 애를 좀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레인지후드에 기름때가 끼어, 주방은 위생이 첫째라고 말하며 청소 좀 하라고 말했다.
조리사는 대뜸 “내가 다치면 책임질 거냐고” 대꾸했다. 직업의식이 다소 미흡한 직원이었다. 위생개념 또한 뒷전이었다. 조리사가 기본을 거부한다는 것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위생교육을 시키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몇 달이 지나고 그 조리사는 영유아 인원이 많아 힘들다며 스스로 그만두었다.
---「나는 영양사였다」 중에서
시어머니는 강아지를 내보내지 않았으면 불호령이라도 칠 기세로 서울에 올라오셨다가 상황은 역전되어 있었다. 시숙은 연실 입가에 웃음을 지어대고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니 나무랄 수도 없고 더군다나 개가 백내장이 걸려서 수술을 해줘야 한다며 비용이 천만 원 정도 든다는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듣던 시어머니는 안색이 변하더니 거친 숨을 내몰아쉬고 계셨다. 오래 전에 한 전자제품회사 세탁기 광고처럼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했듯이 사람에게 있어서 순간의 판단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억 속에 떠나지 않는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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