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은 반드시 실수를 해요 7
2부 입에서 나오는 그것 63
3부 두꺼비와 뱀이 우수수 117
4부 처음으로 멀리 가 169
작가의 말 255
추천의 글_박민정(소설가) 258
저자소개
저자 : 박문영
소설·만화·일러스트레이션을 다룬다. 제1회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 『사마귀의 나라』 『지상의 여자들』 『주마등 임종 연구소』 『세 개의 밤』 『허니비』 『컬러 필드』, 어린이책 『그리면서 놀자』, 에세이 『3n의 세계』, 공저 『봄꽃도 한때』 『천년만년 살 것 같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한국 SF 명예의 전당』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당신 곁의 파피용』 『SF 보다 Vol.1 얼음』 등이 있다. 제2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제6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SF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그룹 ‘sf×f ’에서 활동 중이다.
출판사 서평
■말 없는 사체 위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말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의 수원지에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가에 누워 있는 남자는 말을 걸어 봐도, 어깨를 흔들어 봐도 대답이 없다. 마침 고향인 구화로 돌아와 공원 근처 펜션에서 이모 ‘언희’를 돕고 있던 ‘설원’은 비명을 듣자마자 공원으로 달려가고, 죽은 이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준목’임을 곧 알게 된다. 외로운 삶을 택했던 이의 죽음에는 많은 말들이 달라붙는 법이기에, 준목의 죽음에도 갖가지 말들이 던져진다. 준목과 학창 시절부터 각별했던 설원은 경찰의 수사 종결에도 그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 여기며 단서 찾기를 멈추지 않고, 준목이 다니던 공장의 공장장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경우’는 준목을 이미 과거에 속한 사람으로 여기며 비정한 말을 내뱉는다. 역시 동창 사이인 ‘해지’는 그런 경우를 나무라면서도 설원과 준목의 사이를 의심한다. 사건은 종결되었어도 말들은 길게 이어진다. 겹치고 쌓이고 얽히는 말들 속에서 준목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의 정체는 계속해서 얼굴을 바꾼다.
■쏟아지는 말을 막을 수 있을까
준목이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하던 일터는 ‘가드 온’을 만들던 공장으로, 작은 시골 마을 구화를 먹여 살리는 곳이었다. 턱 밑에 붙이는 동그란 스티커 가드 온은 사용자가 말실수를 할 때, 그러니까 누군가의 외모와 환경을 멋대로 평가하거나 무절제한 욕설을 내뱉거나 격앙된 말이 튀어 나가려고 할 때, 사용자의 호르몬 변화를 감지하곤 일정한 세기로 진동하며 말을 막아 주는 장치다. 효과적인 광고 덕에 예의와 배려의 상징이 된 ‘온’은 세상을 무서운 속도로 뒤덮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턱 밑에 온을 붙이고 다니며, 온을 붙이지 않은 이는 예의 없는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상은 온이 존재하기 전보다 훨씬 매끈해졌으며 섣부른 실수로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온은 과연 세상을 보다 따뜻하고 살 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한 걸까. 온에 가로막힌 말들, 온 때문에 삼켜진 말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
■안으로 썩는 고름
우리의 삶이 이토록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은 탓일 테다. 질병, 관계, 재해, 날씨, 사랑, 증오, 슬픔과 기쁨. 돌발과 우연으로 가득한 순간들은 통제 불가능하여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지만 같은 이유로 생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위험한 욕망은 통제 밖 영역에 끊임없이 손을 뻗친다. 이에 ‘온’이라는 장치가 개발되고 많은 이들이 장치에 의존하게 되지만, ‘온’으로 입을 틀어막자 고름은 안으로 썩기 시작한다.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 말실수로 떠밀리듯 구화로 돌아온 배우 ‘설원’은 준목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명백히 밝혀내겠다며 다짐하지만 스스로를 향한 자책은 나날이 깊은 구덩이를 판다. 설원의 이모이자 동화 작가 ‘언희’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려고 하지만 구강암에 걸린 뒤로는 비틀린 장면들만 포착될 뿐이다. 복서 은퇴 이후 엄마 언희를 돌보며 화를 누르고 감추기만 해 온 ‘기선’은 점점 자신을 잃어 간다. 각자 품은 고름이 곪다 못해 다 함께 터지고 만다면 그 폭발력은 상식 범위를 가뿐히 초월해 버릴 것이다.
책 속에서
무게 1그램, 지름 22밀리미터, 효과 24시간, 매끈한 피부와 흡사한 실리콘 패드. 성인 손가락 한 마디 면적의 동그란 스티커는 턱 밑 피부에 붙이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실언 직전, 스티커의 진동을 통해 부주의한 말이 튀어나오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이 부착형 필름의 정확한 명칭은 ‘가드 온’이었지만, 짧게 ‘온’으로 불렸다. 온은 대화가 활발히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권장되는 제품으로, 무례하고 공격적인 말이 나오려고 할 때 신체의 호르몬 변화를 감지하는 칩이 내장된 스티커였다.
---p.23
설원은 경찰에게 묵례를 한 뒤 화장실에 서둘러 들어갔다. 그의 관심은 준목이 아닌 자신, 정확히는 망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 그 꼴을 구경하기 위해 사진과 문자를 잠자코 봐 준 것뿐이다.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원한다고? 그날부로 내 앞길이 끝났는데? 내 입으로 내가 다 망쳤는데? 이렇게 설치는 바람에. 손을 씻은 설원은 거울을 보지 않고 돌아섰다. 지금 얼굴을 보면 자신을 더 미워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헛소리하지 마. 그냥 입을 닫아. 설원은 복도에서 두 손으로 자기 뺨을 여러 번 쳤다.
---p.47
딸이 느릿느릿 한쪽 에어팟을 뺐다. 뭐라고 했냐는 기선의 물음에 언희가 손을 내저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최선이었다. 뭐라고? 뭐라고 했어? 나한테 무슨 말 했어? 기선이 매일 하는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언희는 어딘가로 더 떠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양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있는 딸을 보면 그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좀 쉬고 싶어.
---p.57
경찰의 말대로 그저 사고 아닐까. 나는 준목의 죽음이 순전히 허망하다는 이유로 사고를 사건처럼 대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급한 마음에 시야가 한없이 좁아진 게 아닐까. 창가 커튼을 둘러친 설원이 침대에 누웠다. 나서지 말자. 섣불리 들이받았다가, 입을 함부로 뗐다가 어떻게 됐어. 네가 왜 여기 있게 됐지? 설원이 눈을 질끈 감고 돌아누웠다. 미간의 주름이 펴지지 않았다. 빛은 막아도 소리는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펜션 근처의 새소리가 야멸찬 휘파람 소리로 들렸다. 우우우우, 우우우. 머릿속의 관객들이 설원에게 야유를 보냈다.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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