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삶의 뿌리가 되는 시간
닭띠 따숨이 14
반짝반짝 나의 예순 18
숯불 21
억새꽃 언니 24
오월의 산책 28
가장 귀한 농사 32
시월의 햇살 36
도둑고양이와의 협상 39
예순 철부지의 스승 43
첫눈 내리는 날 밤의 낭만 46
졸업식 풍경 50
나에게 건네는 악수 53
제2부 흙과 함께 살아가는 일
자연의 농사법 58
얼떨결에 들어선 길 61
사월의 보쌈꾼 64
작은 것들이 여는 문 67
접목 71
무한 리필 막걸리 75
나는 외치고 싶다 78
유월의 기도 82
황소도 때려잡을 가족 84
껍데기의 항변 88
내년에는 91
건망증에 걸린 사람들 95
농부들의 비요일 99
흙을 믿는 마음 102
겹치지 않는 시간 104
제3부 기후와 시대를 건너는 마음
폭염 속에서 108
계산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111
소시민의 까치설날 114
변명거리 없는 계절 117
지난여름의 저주 120
마지막 0.5도 앞에서 123
유월의 비, 복숭아의 시간 127
빗속을 지나며 130
그날 밤, 화면 앞에서 134
제4부 역사와 문명 앞에 선 인간
먼 기억 속 잊혀진 영웅 140
청령포에서의 상념 144
그리움이 만든 산책길 149
시간 너머에서 온 눈빛 154
질문의 시간을 견디는 일 157
시인이 낸 길 위에서 161
흥과 예절 사이의 방황 165
별빛에 새긴 시간 169
끝나지 않은 기도 174
20,933일의 약속 178
별이 빛나는 밤에 182
제5부 저무는 계절의 깊이
국화를 닮은 사람들 188
가을 산의 모습처럼 191
가을 그림 196
라떼 위에 그리는 나의 계절 200
팔월의 햇살 아래 204
산길을 내려오며 206
굽어 자라는 나무 210
뿌리의 독백 214
다시 밭으로 218
에필로그라도 괜찮아 221
저마다의 시간으로 오는 봄 225
닫는 글|함께 걸어와 주셔서 228
저자소개
저자 : 이수안
<문예운동>으로 등단(2004)
40년 과수 농사에서 은퇴
한국문협 음성지부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수필집 《날마다 해가 뜨는 이유》
《포도밭에서 쓰는 편지》
sangrape@hanmail.net
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닭띠 따숨이>
구정을 나흘 앞둔 친정아버지 제삿날, 핸드폰에서 연신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고향 본가에 모인 형제들이 이쪽 사정을 묻느라 분주하다.
“아기 아직 안 태어났어?”
“응, 아직….”
출산예정일이 지나도 따숨이는 영 태어날 기미가 없었다. 예정일 열하루가 지나 담당 의사와 상의 끝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딸 내외는 어제 산부인과로 가면서 나를 떼어놓고 갔다. 어미가 있으면 출산에 방해된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촉진제를 맞고도 진전이 없다는 소식이었다. 오늘 아침나절 다시 촉진제를 맞는다고 들었는데 오후 내내 기다려도 무소식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을 모조리 닦고, 앞뒤 베란다를 홀랑 뒤집어 다시 정돈하도록 소식이 없다. 온 신경이 딸에게 가 있는데 병원에서는 연락이 없고, 아버지 제사 준비 중인 형제들에게서만 연방 카톡이 온다.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사위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 딸이 만 하루가 넘는 산고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소식이다. 핸드폰 안에서 제 아비를 쏙 빼닮은 따숨이가 왼쪽 눈을 찡긋하며 할미에게 인사한다. 2017년 정유년생 닭띠 내 둘째 손녀다. 어린 것의 윙크를 마주하는 순간 같은 띠의 동질감이 나를 60년 전의 정유년으로 데리고 간다.
1957년, 그 정유년에 어머니도 오늘 내 딸이 겪은 산고를 겪으며 닭띠인 나를 낳으셨다. 먹이를 얻기 위해 늘 땅바닥을 헤집어야 하는 닭. 하여 어머니는 내가 닭의 고단한 운명을 닮지 않기를 소망하셨으리라. 아니 어쩌면 아침부터 밤중까지 땅바닥을 긁어서라도 배만 고프지 않기를 소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는 굶주리는 친구도 가끔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나는 그나마 닭띠의 행운이 따랐던 걸까.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남아선호 사상 속에서 어린 마음이 다쳤고, 결혼 후에는 가난이 젊음을 갉아먹었다. 삶이 왜 이리 고단한가 싶어지면 나는 애꿎은 닭띠를 탓하곤 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동네 하늘을 빙빙 돌며 병아리를 노리는 매가 많았다. 하늘에 매가 뜨면 나는 마당비를 허공에 휘저으며 “훠이 훠이” 소리치며 쫓았다. 어미 닭은 철없는 병아리들을 지켜내느라 안절부절못했다. 날갯죽지 속에 노랑 병아리를 숨긴 채 땅바닥을 기듯이 담장 쪽으로 가며 “꼬고고고 꼬고고고” 저음으로 새끼들을 다독이던 모성. 두 딸을 향한 내 모성애가 어미 닭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삶이 미궁에 빠진 것은 두 딸에게도 위기가 왔다는 뜻, 출구 없는 미궁이라면 담을 허물어서라도 길을 내야 했다.
내 삶에서 어둠의 시간을 잘라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닭은 날개가 있어도 높이 날지 못한다. 내 운명도 그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달리고 달리다 보면 나의 날개에 새 깃털이 돋아날지 누가 아는가. 죽기 살기로 달린 끝에 마침내 나는 미궁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두 딸이 어미 곁으로 와 결혼하면서 사위 둘을 얻었고 다섯 살 서연이와 오늘 태어난 닭띠 따숨이까지 손녀도 둘이나 얻었다. 어설프던 나의 날개에 하늘을 날 수 있는 특별한 깃털이 돋은 셈이다.
이제 나는 닭띠를 원망하지 않는다. 설령 따숨이가 닭띠의 운명을 닮는다고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도 않는다. 닭에게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확대한 핸드폰 속의 내 손녀를 보며 생각한다.
‘때로는 수탉처럼 활기차게, 때로는 어미 닭의 따스한 심성으로, 또 때로는 지금 할미에게 보내는 그 윙크처럼 밝게 살아라, 따숨아….’
할미 말을 알아들은 듯 따숨이가 나를 향해 다시 왼쪽 눈을 찡긋한다.
[그린에세이 2017.3-4.]
<자연의 농사법>
겨울답지 않게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날이 계속된다. 그 때문에 저기 읍내 풍경이 미세먼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공기가 나쁘다고 바깥일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 어서 이 일을 마쳐야 복숭아나무 전지를 시작할 게 아닌가. KF94 마스크를 쓰고 희뿌연 공기를 헤치며 길을 나선다.
화물차를 몰고 가는 곳은 은행나무 숲이다. 읍내를 벗어나는 지점에 나목으로 서 있는 우람한 은행나무 숲에 들어 차를 멈춘다.
나무 아래에는 지난가을에 떨어진 은행이 땅바닥이 비좁도록 깔려 있다. 이 보배를 아무도 주워가지 않은 것이 그저 고맙다. 갈퀴로 긁어모아 잎사귀를 대충 걷어내고 은행만 자루에 담는다.
복숭아 농사에서 큰일 중의 하나는 소독을 자주 해야 하는 점이다. 열흘에 한 번, 장마철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도 해야 한다. 이렇게 농약을 많이 뿌리는 농민을 비도덕적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약은 용법만 지켜 사용하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두려워하는 농약을 직접 뿌려야 하는 농민의 건강은 안전할까.
요즈음은 농기계가 좋아 방제기에 앉아 운전만 하면 되니까 소독하는 일이 힘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한 이랑을 다 뿌리고 돌아서 다음 이랑을 시작할 때면 나는 내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직전 이랑을 뿌릴 때 하늘을 뒤덮을 듯 뿜어져 나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공중을 부유하는 농약을 숨 쉴 때마다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더러는 쿨럭쿨럭 기침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지만 미세한 입자를 다 막을 수는 없다.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며 부지런히 소독해도 장마철에는 치료가 잘 안 된다. 이 약 저 약을 다 써 보아도 효험이 없어 실농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내 건강이 위협받는 것은 다음 문제고 복숭아나무 지키기에도 역부족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찾은 길이 자연에 물어보는 것이다. 내 복숭아나무와 똑같이 장맛비를 맞는 저 산의 나무는 어째서 병에 걸리지도 않고, 동해 피해도 없으며, 벌레 피해도 적은 걸까. 어떻게 하면 내 복숭아나무도 저처럼 단단하게 키울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진즉에 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자연의 농사법을 따를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돈만 주면 손쉽게 사 쓸 수 있는 농약이나 거름을 두고 농자재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 써야 하는 농사법이 아닌가. 고단한 길을 피해 농약사에서 사 쓰는 편한 길을 택한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디뎠다. 지난겨울 내내 자연의 농사법을 공부했고 친환경 농약도 만들었다. 한 해 동안 쓸 천연 농자재도 준비했고 필요한 시설도 보강했다. 이 길로 들었다고 이쪽 길만 고집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다가 안 되면 뒷걸음질도 하며 천천히 갈 것이다. 땅과 나무와 내가 익숙해지면 그때 이 길로 쭉 가리라는 복안이다.
한나절 쓸어 담은 은행이 한 트럭이다. 이걸로 한약처럼 푹 달여 진액을 받으면 올해 복숭아 농사에 쓸 살충제는 충분하겠다. 1억 년 전부터 살았으며 몇 번의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은행나무. 그 강한 생명력이 올 농사에서 모든 벌레로부터 내 복숭아나무를 지켜줄 것이다.
한낮이 되었지만 미세먼지는 아직도 자욱하다. 저만치 앞의 길도 짙은 안개에 묻힌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지금 나의 영농 현실이 이처럼 암담하지만 그래도 힘을 내본다. 자연의 농사법을 따라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저 너머에는 더욱 선명한 길이 보일 것이므로.
[좋은수필 2018. 3.]
<폭염 속에서>
얼굴이 달아오르고 온몸에 땀이 흐른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이제 겨우 여덟 시가 되어간다. 아침부터 이런 걸 보니 오늘도 어지간히 더울 모양이다. 수확한 복숭아를 싣고 작업장으로 향하며 나무들을 바라본다. 종일 불볕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겪을 저들이 안쓰럽다.
작업장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부터 켜고 돌아서는 데 마음이 불편하다. 웬만하면 선풍기를 틀 텐데, 이 더위에 에어컨을 안 켜면 두통이 생겨 일을 할 수 없다. 시원한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는 나의 행동은 환경에 얼마큼의 영향을 줄까.
나는 환경이 정말 걱정인 사람이다. 이상기후 때문에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반복되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것 같다.
보름쯤 전에도 나는 하늘에서 물 폭탄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예순 나이가 넘도록 삽시간에 그렇게 큰비가 내리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한낮에 더위가 맹렬하더니 늦은 오후가 되자 갑자기 시원해졌다.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돌풍이 들이닥치는 것과 동시에 폭우가 쏟아졌다. 그것은 보통 폭우가 아니라 하늘 둑이 터져 갇혀있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딸과 나는 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복숭아밭 쪽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돌풍은 정원수 가지들을 사납게 흔들어 부러트렸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금방 차올라 잔디가 잠겼다. 그러기를 불과 10여 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딸과 함께 복숭아밭으로 뛰었다.
돌풍이 휘젓고 간 과수원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과수원을 둘러싼 방풍망은 쇠 파이프가 뜯겨 내동댕이쳐져 있고, 수확을 앞둔 품종의 복숭아가 낙과되어 나무 아래는 마치 타작마당처럼 복숭아가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어떻게나 심하게 흔들어댔는지 가지도 숱하게 부러져 있었다. 이상기후가 일상인 이 환경에서 나는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까.
기후는 이제 30여 년 전에 내가 농사를 시작하던 때의 예측 가능하던 날씨가 아니다. 그때는 아무리 추운 겨울도 삼한사온이 있었고, 오랜 가뭄도 때가 되면 장마가 찾아와 땅을 적시고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를 채워 주었다. 마냥 눌러앉을 것 같은 지루한 장마도 삼복더위가 힘을 쓰면 슬며시 꼬리를 감추고는 했다.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추위도, 더위도, 가뭄이나 장마도 한번 시작했다 하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일 리 없다. 문득 뉴스 속 다른 나라의 재난 화면들이 겹쳐진다.
이제는 촌부인 나조차도 알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더 나빠질 거라는 사실을. 문제는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의 불편함이나 효율성 앞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 만일 농사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면 내 농사도 멈추게 될 것이다. 나는 병충해 방제, 풀 깎기, 운반기 등의 기계를 쓸 때 휘발유를 에너지로 쓴다. 수확물이나 농자재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에는 경유를 쓴다. 농사짓는다는 핑계로 내가 배출하는 탄소는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억겁의 세월 축적된 에너지 화석연료, 이 에너지를 통해 산업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인류의 삶이 풍요로워졌다. 그것은 지구의 시간을 앞당기는 결과로 나타나지만, 나는 에어컨을 끄지 못한다. 이 더위 속에서 우리는 지구의 경고를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농어민신문 2021.8.3]
<먼 기억 속 잊혀진 영웅>
신미양요의 영웅 충장공 어재연 장군 묘역을 찾아간다. 음성 사람이 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 장군의 묘역이 지척에 있는 걸 모르고 살았다니. 이렇게 가까이 두고도 이제야 찾는 것이 민망하다.
장군님은 오후 햇살이 쏟아지는 양지바른 언덕 저만치 위에 어재순 아우님과 나란히 잠들어 계신다. 신미양요에서 어재연 장군이 있어야 할 곳은 마땅히 전장이었다. 그런데 그 아우님은 본인 식솔은 물론 형님 식솔까지 두루 살피며 집안을 지켜야 할 사람이 왜 전장으로 달려가 형님과 운명을 같이 했을까.
결전을 앞두고 고군분투 중인 형님을 찾아 집을 나서는 아우님. 고향의 가족들은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며 말렸을 것이다. 그 만류를 뿌리치고 비장한 마음으로 길 떠난 아우님. 기어이 당도한 아우에게 너는 가서 고향을 지키라 호통치는 형님. 그러나 아우는 고개 숙인 채 망부석처럼 서 있는 것으로 그 뜻을 거부했으리라. 조선 말, 기울어가는 나라의 장수와 그 아우의 눈물겨운 고초가 희미한 영상처럼 바람결에 스친다.
당시 미군과 조선군의 전력은 천양지차였다. 수천 톤 규모의 군함 다섯 대에 각종 포를 탑재하고 강화 초지진에 나타난 미군. 거기에다 남북 전쟁을 통해 뛰어난 전술에 강력한 전투력을 갖게 된 적군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화승총으로 맞선 조선군이 하룻강아지처럼 무모해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선군에게는 저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용맹성과 충성심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조선군은 미군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단 한 명의 용사도 탈영하는 이가 없었다. 총알이 떨어지면 칼을 휘둘렀고, 칼날이 부러지면 창을 들었다. 마지막에는 돌과 흙까지 던지면서 저항했다. 많은 병사가 쓰러지고 패배가 완연해지자 살아남은 용사들은 바다로 투신해 삶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전멸하다시피 한 조선군의 죽음은 전투에서 패배했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조선군은 전우가 죽어가는 아수라장 속에서 자신도 죽을 것을 알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 반해 미군은 완승했으면서도 무섭도록 처절한 조선군의 용기에 퇴각했고 신미양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는 조선군의 저항이 그들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남긴 것이다.
병인년과 신미년, 두 번의 양요 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더 굳건해졌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했다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다만 엄청난 전력의 차이에도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신 장군님과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막걸리 한 병과 포 한 마리, 사과와 배 한 알씩을 준비했다. 장군님과 아우님을 뵙고 술 한 잔 올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찾아온 묘역의 입구는 안내 표지만 하나가 없다. 네비게이션도 헤맨 끝에 겨우 찾은 비포장의 좁은 진입로는 눈이 덜 녹아 질척거린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장군과 용사들을 기리는 자리라면, 적어도 그 마음만은 단정히 남아 있을 거라 믿었는데…. 뜻밖에도 묘역은 폐허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바람만이 쓸쓸한 묘역을 지키며 두 형제의 충정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쌍충제雙忠祭라는 현판이 달린 제실 가까이 가본다. 제실로 오르는 계단에는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다. 울타리를 타고 지붕까지 번진 덩굴, 마루를 침범한 가시나무, 먼지를 뒤집어쓴 제실, 그리고 삐딱하게 벽에 기대선 문짝 하나….
묘소 주변도 온갖 덤불과 잡목들이 수북해 언제 벌초했는지 짐작이 안 될 정도다. 일반 가정에서도 선대의 묘소는 벌초하고 가꾸거늘, 하물며 나라에 목숨 바친 장군님의 묘역이 이런 모습이라니. 누구 하나 돌보는 이 없는 이곳이 장군님 형제의 묘소라는 사실에 마음 착잡해진다.
의아한 것은 묘역을 이렇게 방치한 우리가 신미양요 때 미군들이 전리품으로 들고 간 수자기를 돌려받으려 애쓴다는 점이다. 수자기는 2007년에 임대 방식으로 국내에 들여왔다가 반환했다고 한다. 그 후로 신미양요의 격전지였던 강화군과 문화재청 등에서 영구적으로 돌려받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소식이 있었다.
수자기는 신미양요의 참상과 조선군의 용맹성, 어재연 장군님의 충정이 담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장군님의 살과 피와 뼈가 묻힌 묘소에 비한다면 한낱 헝겊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당신의 묘역을 방치하는 우리가 수자기에 매달리는 것을 내려다보시고 쯧쯧쯧 장군님이 혀를 차실 것만 같다.
바람 한 줄기, 풀 한 포기, 흙 한 줌까지도 긴박했던 전투의 순간을 기억하는 묘역. 외로운 언덕 위에 동그마니 잠든 두 형제만이 서로를 위로하며 보듬고 있다.
묘역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쓸쓸하다. 먼 기억 속 용감했던 영웅은 바래가는 한 줌의 기억처럼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음성신문 2025.4.1]
<국화를 닮은 사람들>
가을은 떠날 채비로 분주하다. 된서리에 고춧대가 까부라지고, 두 손녀가 오가며 따 먹던 까마중은 주저앉은 지 오래다. 모두가 떠나가는 계절인데, 고고한 자태의 국화가 아직은 꽃의 계절이라 말하고 있다.
봄이면 온갖 꽃들이 피고 지며 겨울잠에 들었던 대지를 깨운다. 그러기를 몇 계절, 그래도 잠잠하던 국화가 수상쩍은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이즈음이다. 자그마한 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다가, 금수강산의 두 번째 꽃, 단풍이 울긋불긋 만개하면 오랜 침묵을 깨고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고 된서리가 오자 반짝 강산을 물들이던 단풍도 서둘러 떠나고 있다. 하얗게 내려앉은 잔디밭의 서리를 보면 나는 국화가 얼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침마다 들여다본다. 연거푸 서리 맞으면서도 국화는 의연한 모습 잃지 않다가, 시린 꽃잎에 햇볕이 닿으면 물기 어린 말간 얼굴로 기품 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이 곧 들이닥칠 텐데도 초연한 모습으로 단풍을 배웅하고 홀로 빈자리를 지키는 늦가을 국화. 그 고운 꽃 무더기 위로 지난주 문학기행에서 만난 밝은 얼굴들이 겹쳐 보인다.
예순 중반의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평생 꿈꾸던 일이지만, 늦은 나이에 농사까지 지으며 공부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깊어 가는 내 열망에 두 딸이 부추기자 덜컥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40여 년 눌러 온 꿈을 실현하는 설렘이었다.
평생 입력된 정보가 비좁도록 들어앉은 머리로 새 지식을 익히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과수원에서 일할 때도, 집안일할 때나 운전할 때도 핸드폰을 통해 교수님의 강의를 반복해서 듣는다. 처음에는 낯선 내용도 자꾸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 것이 되는 감동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오프라인 강의가 있는 날이나, 여러 행사에서 또 다른 많은 나를 만나는 것은 공부 이상의 기쁨이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사정으로 향학열을 눌러 온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 국문학의 꿈을 접고 다른 학과를 전공했다가 이제야 이 길에 든 학우님도 있지만, 여건이 안 되어 꿈을 묻어두었던 학우님도 많다. 젊음이 빛나던 그때 우리는 방지턱 저 너머의 대학교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내 꿈을 주저앉힌 대가로 가정과 사회에 대한 과제를 하나하나 잘해 낸 우리. 마침내 그 높아 보이던 방지턱을 넘어 학문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호시절 다 보낸 뒤에 서리 맞으며 피는 국화처럼, 예순 중반에야 그토록 원하던 학문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그 동질감 때문일까. 학교에서 만나면 우리는 너에게서 발견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쉽게 헤어지질 못한다.
지난주 문학기행에서 가장 특별한 프로그램은 보물찾기였다. 국민학교 소풍 때도 보물쪽지를 찾은 기억이 없는 나는 이번에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넘치도록 행복했던 이유가 있다.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물찾기에 열중인 학우들. 그 모습이 자칫 황량할 수도 있는 이 나이에 내가 찾은 보물이기 때문이다. 늦게 시작한 공부 국문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문학작품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앞으로 또 있을까.
모두가 꽃 피우는 계절 봄은 놓쳤지만, 그 모두가 떠났을 때 꽃피워 텅 빈 계절을 지키는 늦가을 국화를 닮은 사람들. 우리는 지금 짧은 계절을 가장 길게 쓰는 기적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좋은수필 202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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