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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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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400009
ISBN
9791167903822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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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서의 태그
  • # 한국일보-[책과 세상]
품목정보
출간일 2026-09-10
페이지, 크기, 무게 212쪽, 128*188mm, 212g
책소개
현실과 허구,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흔든다!
일본 전위문학의 거장, 아베 고보의 '이색 SF'

일본의 가장 전위적인 예술가, 아베 고보의 『인간 판박이』가 현대문학 모던 라이브러리의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다. 현대문학 모던 라이브러리는 고전의 단순한 재출간을 넘어, 오늘의 독자가 다시 읽어야 할 문제의식과 감각으로 고전문학의 주요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획선이다. 첫 번째 기획은 1970년대 일본 문학계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함께 거론되었던 아베 고보,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를 다시 읽는 데서 출발한다.

그 시작을 여는 『인간 판박이』는 아베 고보 문학의 주된 문제의식이 SF적 상상력과 결합한 장편소설이다. 『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등으로 세계문학 속에서도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 아베 고보는 현실과 허구, 개인과 사회, 자기와 타자의 경계를 집요하게 탐문해 온 작가다. 이 작품에서 그가 겨냥한 것은 과학기술의 미래나 우주적 상상력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이라 믿어온 세계의 불안정성과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유지해 온 정상성의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내는 데 있다.

『인간 판박이』는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작가인 ‘나’에게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화성의 토지를 알선하고 자신을 모델로 한 소설을 쓰라고 권하는 남자의 기묘하고도 치밀한 논리에 휘말리면서 ‘나’는 점차 현실과 허구, 사실과 망상, 자기와 타자의 경계를 잃어간다. SF의 형식을 빌린 이 소설은 사실과 망상이 ‘꼭 닮은’ 것으로 환원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급진적인 질문을 던지는 아베 고보의 치열한 문학적 실험이다.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아베 고보
1924년 도쿄에서 태어나 이듬해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도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지만, 의사가 아닌 작가의 길을 택했다. 1951년 『붉은 누에고치』로 제2회 전후문학상을, 『벽─S. 카르마 씨의 범죄』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62년에 발표한 『모래의 여자』로 요미우리문학상을 받았고, 프랑스에서는 최우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희곡 「친구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초록색 스타킹』으로 요미우리문학상을 받는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부터 연극집단 ‘아베 고보 스튜디오’를 결성해 독자적인 연극 활동을 펼쳤다.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92년에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93년 급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허구, 인간과 비인간,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집요하게 흔들어왔다. 『인간 판박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SF적 상상력과 결합한 대표적인 장편이다.

역자 : 곽형덕
일본어문학 연구자 및 번역가. 명지대 일어일문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 문학』이 있고, 번역서로는 『오키나와문학 선집』, 『고질라가 오는 밤에』, 『낙하산 병사의 선물』, 『돼지의 보복』, 『무지개 새』, 『지평선』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거짓말쟁이인가, 미치광이인가, 아니면 진짜 화성인인가?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작가다. 화성 로켓 발사가 보도된 이후 프로그램은 허황된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송이라는 비판 여론에 휩싸이고, 결국 폐지 위기에 몰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세일즈맨처럼 보이는 낯선 남자가 찾아와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남자를 방송국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곧 남자의 아내라고 밝힌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그녀는 남자가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열성 팬이자 정신분열증 환자이며, 폭력 성향까지 있으니 함부로 쫓아내지 말라고 경고한다.

믿을 수도, 쫓아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결국 남자를 집 안으로 들인다. 남자는 자신이 화성의 토지를 알선하는 중개업자라고 말하며, 자신을 모델로 한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얼핏 허무맹랑한 궤변처럼 들리지만, 남자의 말은 이상할 만큼 치밀하고 집요하다. ‘나’는 남자를 단순한 미치광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만, 남자가 내놓는 주장과 논리는 쉽게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현실의 빈틈을 파고든다.

남자는 화성인과 꼭 닮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간과 꼭 닮은 화성인일지도. 남자의 주장을 반박하면 할수록 ‘나’는 사실과 우화, 논리와 망상, 자기와 타인의 경계가 무너지며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꿈꾸는 것은 문학 속에서 SF 정신이 복권되는 것”
아베 고보가 SF로 되찾고자 한 가설문학의 영토

“그래서 나는 SF의 유행 따위는 믿지 않는다. SF가 SF 전용 우리 안에서 아무리 돼지처럼 번식한다 한들, 그것은 아무 자랑거리도 되지 못한다. 내가 꿈꾸는 것은 문학 속에서 SF 정신이 복권되는 것이다. 자연주의 문학에 점령당한 가설문학의 영토를 되찾는 일이다.”
─ 아베 고보

아베 고보에게 SF는 유행하는 장르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가정하고 검증하는 문학적 태도였다. 『인간 판박이』에 등장하는 화성인이나 화성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들은 독자를 우주적 모험으로 이끌기보다, 한 평범한 가정집 안에서 현실의 기준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의 말은 처음에는 황당한 망상처럼 들리지만, ‘나’가 그를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인간을 전제하는 기준이 흔들리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평론가 후쿠시마 마사미는 『인간 판박이』 가 “거의 대부분이 대화와 지문에 가까운 상황 설명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임에도 독자에게 “현기증과도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한다. 그 현기증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질수록 현실이라 믿어온 언어의 질서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기준이 불안정해지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 판박이』에서 SF는 현실을 벗어나는 장르가 아닌, 현실의 균열을 끝까지 드러내는 방식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일 수 있는가. 현실은 무엇으로 현실일 수 있는가. 이 작품은 그 질문을 기이하고도 밀도 높은 대화의 형식으로 밀어붙이며, 아베 고보 문학의 핵심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베 고보의 가장 치열한 문학적 실험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그 기묘한 남자는 5월 어느 맑은 날 정오를 조금 지난 무렵, 재봉틀 외판원 같은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나타났다.
---p.5

사실을 말하자면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주 일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안녕하세요 화성인’이라는 제목으로 평론 풍 사회극의 정규 프로그램의 각본 구성을 맡고 있고, 그것이 우리 집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만큼 나도 힘을 쏟아서 소박하지만 독자 투고도 하루에 스무 통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끔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2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 화성 로켓이 발사된 후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p.12

“여보세요, 지금 화성인에 관한 일로 상의를 하고 싶다면서 선생님 댁에 방문한 사람이 있나요? 네, 남자입니다. 제 남편인데요.”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했지만, 그런 자세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러면 방송국 분인가요?”
“아닙니다. 제 남편이에요.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제 남편은 사실 정신분열증이 있어요.”
“분열…… 이라면,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가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라디오 프로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엄청난 팬이에요. 물론 그것만이 원인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자신이 화성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요. 여하튼 그 프로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오늘 아침 화성 로켓 뉴스까지 겹쳤고요. 완전히 흥분해서 꼭 선생님께 상의드려야 한다고 아침부터 줄곧 그 이야기만 하더니…….”
---p.32

“이야, 선생님 기쁩니다.”
남자가 갑자기 상기된 양 작은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하며 상반신을 비틀더니 낄낄 웃어댔다. 어쩐지 남자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깐 주춤대는 틈을 타서 더욱 다그치듯 말을 잇는다.
“저는 선생님 라디오 프로의 팬입니다. 이렇게 뵈니 참으로 유쾌하군요. 방송을 듣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은 선생님께 엄청난 소스를 제공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정말 엄청난 특종입니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p.38

“괜찮아. 이래 보여도 이런저런 경험만은 풍부한 편이라서 웬만한 일로는 놀랄 리가 없어.”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큰맘 먹고 말씀드립니다만…….”
혀끝으로 입술을 한 번 핥더니 수줍은 듯이 가방을 다시 끌어안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보통의 인간이 아닙니다. 화성인입니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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