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앙리 바르뷔스
1873년 프랑스 파리 근교의 아니에르쉬르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문학, 특히 시에 매료되었다. 개신교도이자 기자 겸 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진보적 이념, 인본주의 등에 관심을 두게 된다. 파리의 콜레주 롤랑에서 스테판 말라르메, 앙리 베르그송의 가르침을 받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문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1892년 작가 겸 평론가 카튈 망데스가 주최한 시 공모전에 투고해, 망데스의 후원 아래 시인으로 데뷔했다.
1895년 시집 『흐느끼는 여인들』을 출간했고 내무부, 농림부에서 일하면서도 꾸준히 작품을 썼다. 1903년 첫 소설 『애원하는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시에서 소설로 옮겨갔으며, 1908년 타락한 군상들을 묘사한 실존주의적 소설 『지옥』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흔한 살의 나이에 자원입대했으며 최전방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부상과 피로로 건강이 악화돼 후방에서 복무하게 되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다가 전역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그린 『포화』를 1916년 발표해 그해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반전평화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점차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다. 1935년 모스크바에 체류하던 중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신은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역자 : 김웅권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모주대학교와 몽펠리에 제3대학교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한남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사전Dictionnaire Malraux』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혁명을 통한 초월과 구원』 『앙드레 말로: 소설 세계와 문화의 창조적 정복』 『타자와 나, 숨겨진 진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희망』 『S/Z』 『상상의 박물관』 『몽상의 시학』 등 50여 권이 있다.
출판사 서평
앙리 바르뷔스에게 공쿠르상을 안긴 대표작
이후의 전쟁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구적 작품
제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포화』는 바르뷔스가 최전방에서 복무하며 틈틈이 쓴 메모를 바탕으로 한 생생한 기록이며, 유럽이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던 1916년 출간된 선구적 작품이다. 1914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바르뷔스는 마흔한 살, 보충역 동원령이 있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면 되는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징병관을 찾아가 사병으로 현역 입대해 전선에 배치되었다. 농민, 노동자, 하층민 출신 병사들과 부대끼는 동안 포격 속에서 부상자들을 옮긴 공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상과 피로로 쇠약해져 후방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1917년 전역할 때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다.
『포화』는 바르뷔스가 후방과 병원에 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 1916년 8월부터 11월까지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출간된 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된 『포화』에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특히 소설의 내용에 공감한 병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 이후의 전쟁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헤밍웨이는 “지난 전쟁 동안 나온 책 중에서 훌륭한 것은 『포화』뿐”이라고 했다. 레닌, 그람시 등 지식인들 또한 민중의 각성을 그린 이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기존의 전쟁문학은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애국심과 사기를 고취하고 승리를 찬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특히 전쟁중에는 당국의 검열이 존재하고 작가들 역시 자기검열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으나, 바르뷔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분대의 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작가 자신이 투영된 화자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외에도 분대의 일상이나 분대원들의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다. 바르뷔스는 평범한 병사들, 이름 없는 병사들을 내세워 그들이 당면해 있는 전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집중포화나 무인지대처럼 극적인 고통은 물론 추위, 배고픔, 향수병, 참호에서의 지겨운 대기 등 덜 극적인, 그러나 더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고통까지 말이다.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 찾아오는 희망의 새벽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묻히지 않는 민중의 외침
『포화』는 총 24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명확한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데 1장 「전망」과 24장 「새벽」의 배경이 각각 석양과 새벽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석양과 새벽 사이에는 길고 어두운 밤이 있다. 그 고난은 20장 「포화」에서 절정에 이르지만, 동시에 전쟁의 희생자였던 민중이 깨어나는 계기가 된다. 마치 지옥을 눈앞에 펼쳐놓은 듯한 19장 「포격」과 20장 「포화」를 거쳐, 부상자들을 묘사한 21장 「구호소」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대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싹트고, 병사들은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전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들이 말살해야 할 적은 독일군이 아니라, 전쟁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한편 22장 「산책」은 분대원들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때를 그리고 있어, 혹독한 전장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장이야말로 가장 뼈아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자 부족과 온갖 불편에 시달리는 참호 생활과 대조적으로, 도시는 전쟁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기차고 풍요롭다. 병사들은 전방에는 불행한 자들이 너무 많고, 후방에는 행복한 자들이 너무 많다며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씁쓸히 말한다. 그리고 24장 「새벽」에서 드디어 그들의 외침이 터져나온다. 병사들은 더이상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전쟁을 일으킨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자신들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외친다.
제1차세계대전의 별명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과 동시에 낙관은 냉소로 바뀌었고, 전쟁은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은 전쟁과 무관하다고, 전쟁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바르뷔스가 『포화』에 담아낸 외침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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