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새로운 여성 서사를 탄생시킨 구병모 작가의 《파과》가 새 옷을 갈아입었다. 40여 년간 날카롭고 냉혹하게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아온 60대 여성 킬러 ‘조각(爪角)’.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조각은 새삼스레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게 된다.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모든 것,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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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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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병모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있을 법한 모든 것』, 중편소설 『바늘과 가죽의 시詩』, 장편소설 『파과』 『네 이웃의 식탁』 『상아의 문으로』 등이 있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오늘의작가상〉 〈김유정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수상 : 2022년 김유정문학상, 2015년 오늘의작가상, 2008년 창비청소년문학상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 영화 〈파과〉 원작 소설
전 세계 13개국 수출, 뉴욕타임스 선정‘주목할 만한 책 100선’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
이름은 조각(爪角). 한때 ‘손톱’으로 불리던 그녀는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으며, 날카롭고 빈틈없는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 작업’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면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한편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평생을 되뇌어온 조각의 마음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는가 하면, 청부 살인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발견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외면하고 살아온 조각의 눈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조각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이 소설은 ‘냉장고 속 한 개의 과일’에서 비롯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를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파과’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다. 부서진 과일, 흠집 난 과실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나이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우리 모두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지는 ‘파과(破果)’임을 받아들일 때, 주어진 모든 상실도 기꺼이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결심할 때 비로소 ‘파과(破瓜)’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처럼 소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여성 서사의 탄생
노인, 여성, 킬러.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를 조합한 주인공 조각은 65세 여성 킬러다. 한국 소설 가운데 이토록 파격적인 주인공이 또 있을까. 그동안 아가미를 가진 소년(《아가미》), 인간을 닮은 로봇(《한 스푼의 시간》) 등 환상적인 상상력을 통해 독특한 주인공들을 탄생시킨 구병모 작가는 한국 소설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여성 서사를 써내려가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사회의 최약자로서 차별받아온 ‘노인’과 ‘여성’이라는 인물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 ‘킬러’라는 강렬한 이름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자신을 치료해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된 조각, 그런 조각을 경멸하는 투우, 킬러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려는 강 박사. 마침내 투우가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하고, 조각이 투우에게 총을 겨누며 생애 마지막 작업을 실행키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절정으로 향한다. 읽는 내내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과 긴장감이 넘치는 이 소설의 말미에서 조각과 투우가 벌이는 총격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파과》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이 지독하고 잔혹한 현실 속에서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이,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기꺼이 살아내는 모든 것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를 전한다.
한 자 한 자 혼신을 다한 문장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피어나다
이번 리커버 작업은 이은정 자수 화가의 작품을 활용하여 박연미 디자이너가 새롭게 표현해냈다.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은, 한 문장 한 문장 혼신을 다해 밀고 나가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 세계와 닮아 있다. 이은정 자수 화가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찰나의 순간’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살아가면서 제일 반짝였던 순간들, 기억, 시간, 감정의 조각들을 통해 꿈속 공간, 꿈꾸는 공간을 그려내는 자수 작품들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구병모 월드를 그대로 재현해낸 듯하다. 표지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 그 빛나고 아름다운 찰나를 담고자 했으며, 활짝 핀 꽃처럼, 누구나 한 번쯤 갖게 되는 빛나는 순간을 그려냈다. 형형색색의 식물과 꽃, 나무의 모습으로 주인공 조각이 살아온 삶을, 저마다 고요하지만 힘 있게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떠올려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 소설은 2024년 뮤지컬 <파과>로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랑을 받은 데 이어, 민규동 감독, 이혜영, 김성철 배우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2025년 제75회 베를린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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