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작가, 사뮈엘 베케트
전통적인 사실주의극에 반기를 든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
‘고도’는 구원이자 자유이며, 빵이자 희망이다
“고도가 내일은 꼭 온다고 그랬지. (사이) 그래도 모르겠어?”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가 프랑스 미뉘 출판사와 정식 계약하여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입말에 맞는 맛깔스러운 우리말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널리 인정받는 극단 산울림 공연의 대본을 담당하고 있는 오증자 교수가 꼼꼼하게 다듬은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였다. 『고도』는 1952년에 출판되어 극히 일부의 지식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에게 일약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일반 극장 못지않게 학교와 감옥에서도 많이 공연되고 있는 베스트셀러이며, 아일랜드에서는 현재 닐 조던 등 이름난 영화인들이 베케트의 희곡들을 영화화하는 ‘베케트 온 필름(Beckett on film)’이라는 프로젝트가 추진하는 등 출간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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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제1막 9
제2막 95
작품 해설 159
작가 연보 179
저자소개
저자 : 사뮈엘 베케트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남쪽 폭스록에서 유복한 신교도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이탈리아문학을 공부하고 단테와 데카르트에 심취했던 베케트는 졸업 후 1920년대 후반 파리 고등 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었던 제임스 조이스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에 대한 비평문을 공식적인 첫 글로 발표하고,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를, 1931년 비평집 『프루스트』를 펴낸다. 이어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게 되지만 곧 그만두고, 1930년대 초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을 쓰고, 1934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을, 1935년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을,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출간하며 작가로서 발판을 다진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프랑스에서 전쟁을 치르고, 1946년 봄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후 198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편의 시, 소설, 희곡, 비평을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쓰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번역한다. 전쟁 중 집필한 장편소설 『와트』에 뒤이어 쓴 초기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미뉘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1952년 역시 미뉘에서 출간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수차례 공연되고 여러 언어로 출판되며 명성을 얻게 된 베케트는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극과 텔레비전극 및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당대의 연출가, 배우, 미술가, 음악가 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평생 실험적인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고,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고도』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은 이 작품이 인생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전후 실존주의 문학의 한 흐름임을 보여 준다.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라는 블라디미르의 대사는 그 단적인 예이다. 실제로 『고도』의 창작 배경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 베케트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국 국민이라는 안전한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왔다. 그러던 중 그가 가담하고 있던 단체가 나치에 발각되어 당시 독일의 비점령 지역이었던 프랑스 남단 보클루즈(이 지역의 이름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에 숨어 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얘깃거리 하나가 동이 나면 또 다른 화제를 찾아내야만 했는데 바로 이것이 『고도』에 나오는 대화의 양식이다. 이렇게 베케트는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적인 요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성을 극도로 단순화함으로써 작품을 창조해 낸 것이다.
역사적인 첫 공연―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황량한 무대, 특별한 줄거리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내용. 그 때문에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 공연이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실제로 『고도』는 이미 다른 여러 연출가들에게 거부당한 상태였고, 배우들마저도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못한 채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르 피가로》 지에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라는 평이 실리자 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기껏해야 한 달 정도 공연될 예정이었던 『고도』는 장기 상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존의 사실주의극과는 거리가 있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신문과 방송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작품의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를 난해한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품의 토대가 되는 기다림의 상황은 오히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음으로 인해 보편성을 띠게 된다. 1957년 등장인물 중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샌 퀜틴(San Quentin) 교도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1,400여 명에 달하는 죄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고도’가 “바깥세상이다!” 혹은 “빵이다!” 혹은 “자유다!”라고 외쳤다. 한편 1960년대 폴란드에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통치하의 알제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땅이 없는 농부들은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예 실시되지 않은 토지 개혁에 관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도(Godot)가 영어의 신에 해당하는 단어인 God와 프랑스어의 같은 단어 Dieu의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으며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고도’의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텍스트의 의미가 열려 있음으로 인해 『고도』는 지금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널리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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