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회가 괴물과 타자를 사유하는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작품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로 재탄생한 대중문화의 영원한 아이콘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로 재탄생하며 대중문화의 영원한 아이콘이 된 고딕 공포 소설의 영원한 고전 『드라큘라』(1897)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이후 백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드라큘라』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대중의 집단 무의식에 새겨 넣은 원형적 서사이자, 근대 사회가 괴물과 타자를 사유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스토커의 모친은 출간 당시 이 작품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만큼 유명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전해지는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드라큘라 신드롬은 그 예언마저 훌쩍 뛰어넘는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학적 재평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퀴어 이론, 탈식민주의 비평, 젠더 연구 등 다양한 비평적 시각이 이 작품에서 풍부한 논의를 길어 올리고 있다. 『드라큘라』는 고정된 의미의 고전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공포와 질문을 불러오는 열린 텍스트로 오늘도 거듭 읽히고 있다.
저자 : 브램 스토커 (Bram Stoker)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이브러햄 스토커. 몸이 약해 여덟 살 무렵까지 침대에 누워 지내며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썼으며, 열여섯 살 때 명문 트리니티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극단의 비서로 일했으며, 르 파뉴의 『흡혈귀 카르밀라』를 읽고 흡혈귀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대표 작품으로는 『드라큘라 Dracula』(1897), 1897년 흡혈귀 전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괴기소설 『드라큘라』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드라큘라』는 현실적인 가상의 글을 모아 놓은 형태의 서간체 소설로 일기, 전보, 편지, 항해 일지, 신문 스크랩은 소설의 세부적인 현실성의 수준을 더하였다. 그 밖에 저서로 첫 소설 『뱀 길』 (The Snake's Pass) 1890년 고딕 소설의 고전, 공포 소설 『수의를 입은 부인』 (The Lady of the Shroud, 1909년) 『흰 벌레의 소굴』 (The Lair of the White Worm, 1911년)이 있다.
역자 : 김일영
성균관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Georgia 영문학 석사 학위,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영어영문학회 연구이사, 한국 18세기 영문학회 회장, 한국 근대영미소설 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성균관 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로렌스 스턴의 축소와 확대의 미학」,「광대의 웃음: [트리스트람 섄디]에 나타난 스턴의 섄디이즘과 스턴의 탈(반) 도그마적 사고」,「선정소설에 나타난 여성의 광기와 빅토리아 사회: 오드리 부인의 비밀을 중심으로」,「필딩의 새로운 글쓰기와 이중적 재현: 조셉 앤드류즈를 중심으로」,「레베카에 나타난 금지된 지식/실재의 귀환과 가부장제의 비밀」,「House of Words and Home of Friday」,「[속죄]에 나타난 트라우마적 오독/“놓친 읽기”와 트라우마에 대한 (미완의) 증언으로서의 글쓰기」,「Stoker’s Dracula as a figure of pharmakos/scapegoat」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주석달린 드라큘라』외 다수, 저서로『18세기 영국소설 강의』,『영미소설 해설 총서: 로렌스 스턴』,『영국소설과 서술기법』,『상처와 치유의 서사』,『기억과 회복의 서사』,『공포와 일탈의 상상력』외 다수가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브램 스토커는 어린 시절 원인 모를 병으로 일곱 살까지 걷지 못했지만 이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 시절부터 연극 평론가로 활동하며 당대 최고의 배우 헨리 어빙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878년 런던으로 이주해 라이시움 극장의 지배인으로 20년 이상 일하면서 상류층과 예술가들을 폭넓게 접하는 한편, 작가로서 꾸준히 글을 썼다. 특히 동유럽 흡혈귀 전설에 깊이 매료되어 헝가리 민속학자 밤베리 교수와 교류하고,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잉글랜드 북동부 항구 도시 휘트비를 답사하는 등 7년에 걸친 연구 끝에 『드라큘라』를 완성했다.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이자 잔혹한 처형으로 악명 높았던 역사적 실존 인물 블라드 3세―스스로를 ‘용의 아들’, 드라큘라라 칭했던―와 동유럽 흡혈귀 전설을 결합해, 스토커는 이후 모든 뱀파이어 신화의 원형이 될 인물을 창조했다.
19세기 말 런던, 고대의 악이 깨어나다
19세기 말 영국, 젊은 변호사 조너선 하커는 업무차 루마니아 국경의 외딴 지역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기이한 분위기의 드라큘라 백작. 하커는 곧 자신이 끔찍한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백작은 수백 년을 살아온 불멸의 흡혈귀였으며, 이제 새로운 사냥터인 런던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드라큘라가 영국에 상륙하면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연이어 생겨나기 시작하고, 하커의 약혼녀 미나의 친구 루시는 정체 모를 병으로 생기를 잃어 간다. 미나와 조너선, 그리고 용감한 동료들은 마침내 흡혈귀 사냥 전문가인 반 헬싱 교수와 의기투합한다. 이들은 과학과 미신, 이성과 공포가 교차하는 치열한 대결 속에서 악의 화신에 맞서 싸우기로 한다. 그러나 드라큘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남은 지혜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춘 그는, 인간들의 추적을 한발 앞서 따돌리며 미나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과연 인간들은 이 고대의 악을 물리치고 희생된 영혼들을 구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무의식, 성욕, 전염병, 적그리스도―빅토리아 시대의 불안이 응축된 괴물
『드라큘라』를 단순한 공포 소설로 읽는 것은 이 작품의 깊이를 절반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스토커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억압하고 봉인하려 했던 모든 불안을 이 작품 안에 압축했다. 빅토리아 시대는 어느 때보다 보수적 가치관이 지배하면서도 동시에 여성 참정권과 재산권 확대, ‘신여성’ 출현 등 근본적인 변혁의 요구가 거세지던 시기였다. 드라큘라의 흡혈은 성행위의 은유이자, 1860년대부터 세 차례에 걸쳐 성병 검사 법안이 통과될 만큼 당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성병의 전파를 상징하기도 한다. 초대한 자에게만 다가갈 수 있다는 그의 속성은 욕망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에 이끌리는 인간 무의식을 정확히 가리키며, 피를 빼앗긴 자가 결국 흡혈귀가 된다는 전승의 논리는 전염병이 퍼져 나가는 과정과 일치한다. 나아가 드라큘라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피를 나누어 준 것과 정반대로 타인의 피를 빨아 영생을 이어가는 적그리스도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존재하는 가장 깊은 공포를 형상화한 것이다.
루시와 미나라는 두 여성 인물을 통해 스토커는 빅토리아 시대의 모순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복수의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루시는 드라큘라의 희생양이 되어 파멸하는 반면, 남편에게 헌신하며 탁월한 논리적 능력으로 일행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미나는 구원받는다. 스토커는 이 두 여성의 운명을 통해 신여성의 출현에 대한 불안과 처벌, 그리고 이상적 여성상을 둘러싼 근대적 통제의 구조를 날카롭게 그려 냈다.
일기, 편지, 신문 기사―근대적 기록의 형식으로 형상화한 공포
『드라큘라』는 형식 또한 내용만큼이나 혁신적이다. 조너선 하커의 일기에서 시작해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 신문 기사, 전보, 항해 일지, 축음기 녹음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문서들이 겹겹이 쌓이며 드라큘라라는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구조는 탐정 소설의 긴박감과 증언 문학의 사실성을 동시에 구현하면서 공포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각각의 서술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기록하고, 독자는 그 파편들을 조합하며 이야기의 전모를 스스로 재구성하게 된다. 편지와 타자기, 축음기 등 당대의 최신 정보 기술이 공포에 맞서 싸우는 무기로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나가 흩어진 기록을 수집하고 편집하고 분석하여 드라큘라의 행적을 추적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단순한 괴물 사냥의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적 지식과 기록의 실천이 공포에 맞서는 이야기라는 점도 보여준다. 21세기의 독자들은 『드라큘라』에서 감염과 면역의 서사, 그리고 제국 영국이 트란실바니아와 동유럽을 ‘타자’로 상상하고 전유하는 방식을 함께 읽게 된다. 이렇듯 『드라큘라』는 고정된 의미의 고전이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공포와 질문을 불러오는 열린 텍스트로 오늘날에도 거듭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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