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이라는 웅장한 건축물의 축조 비결이 집약된 최고의 3부작
모든 것을 욕망하는 의지가 냉혹한 사회에 맞서 벌이는 사투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전 3권)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발자크 자신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은 『잃어버린 환상』은 91편의 『인간극』 총서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자, 독립적이지만 뚜렷한 연속성을 갖는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신화적 아름다움과 시적 재능으로 반짝이는 뤼시앵, 대가의 도량을 지닌 우직한 인쇄업자 다비드, 앙굴렘 중등학교 동문인 두 친구는 생김새도 기질도 정반대지만, 남다른 가능성을 타고난 가난한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꼭 닮은꼴이다. 발전 없는 지방 생활에 한계를 느낀 뤼시앵은 성공을 꿈꾸며 파리로 가고, 다비드는 고향에 남아 19세기 제지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기술 개발에 전념한다. 부, 명예, 지위, 사랑과 쾌락까지, 모든 것을 욕망하는 의지가 냉혹한 사회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잃어버린 환상』은 『인간극』이라는 웅장한 건축물의 축조 비결이 집약된 최고의 3부작이다.
목차
3권
3부 발명가의 고뇌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상세 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오노레 드 발자크
1799년 프랑스 투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급 관리로 자수성가한 부르주아였고, 열여덟 살에 32세 연상의 남편과 결혼한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심했다. 1816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 법학을 공부하고 소송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했으나, 스무 살 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학의 길로 들어설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창작에만 전념하기에는 파리에서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가명으로 삼류소설들을 다작하고 인쇄업과 출판업에 뛰어들지만,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된다. 서른 살이던 1829년, 역사소설 『올빼미당원들 혹은 1799년 브르타뉴』를 처음 본명으로 발표하고, 이후 1848년까지 20여 년 동안 『인간극』 집필에 생애를 바친다. 갖가지 인간 삶을 그린 개별 작품 91편이 서로 유기적으로 엮여 하나의 거대한 ‘총체’가 되도록 구성한 『인간극』은 크게 《풍속 연구》 《철학 연구》《분석 연구》의 세 계열로 분류되며, 약 250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서사시로, 세계 문학사에 걸작으로 남았다. 1832년 우크라이나 대귀족 한스카 백작 부인의 익명 편지를 처음 받은 이래로 18년간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842년 한스카 부인이 남편을 사별하자 적극적으로 구애해, 1850년 3월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누적된 과로로 이미 수년째 건강이 악화했던 발자크는 5개월 후인 1850년 8월 파리에서 사망한다. 산문 형식으로 ‘19세기 프랑스 풍속의 역사’를 그려내고자 했던 발자크는 소설의 제재를 넓게 개척하고 그 개념을 현저히 확대해 사실주의의 시조가 되었고,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졸라, 프루스트, 스트린드베리 등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인간극』 총서 가운데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대표작으로는 『루이 랑베르』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어둠 속의 사건』 『잃어버린 환상』 『골동품 진열실』 『사촌 베트』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 등이 있다.
역자 :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3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오노레 드 발자크, 세기의 창조자』 『광기, 본성인가 마성인가』 『스크린 위의 소설들』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공저), 역서로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 『13인당 이야기』 『결혼 계약』, 콜레트의 『여명』, 르 클레지오의 『폭풍우』 『빛나』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등이 있다.
발자크의 전체 작품을 일컫는 총서명인 『인간극』은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라는 3개의 하위 그룹으로 나뉘며, 이중 《풍속 연구》는 다시 6개의 ‘장면’으로 세분된다. 1833년 최초의 전집 구상에선 ‘사생활 장면’, ‘지방 생활 장면’, ‘파리 생활 장면’만으로 이루어졌다가, 나중에 ‘정치 생활 장면’, ‘군대 생활 장면’, ‘시골 생활 장면’이 추가되었다. “19세기 풍속의 역사”를 실제 그대로 그려 보이겠노라 선언한 발자크는 이러한 분류 체계를 통해 개별 작품의 배경, 제재, 주제 등을 명료히 하고, 작품들 간 연계성을 효율적으로 제시한다.
3부작 장편 소설 『잃어버린 환상』은 1836년부터 1843년까지 8년에 걸쳐 집필되었으며, 처음에는 각기 독립된 단행본으로 순차 출간되었다.(1부 1837년, 2부 1839년, 3부 1843년.) 이후 3개 부를 한 작품으로 묶어 『인간극』 전집에 수록할 때, 발자크는 『잃어버린 환상』을 《풍속 연구》 중 ‘지방 생활 장면’ 시리즈의 맨 마지막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배치는 철저히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며, 이어지는 ‘파리 생활 장면’ 시리즈와의 접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지방 생활과 파리 생활이 접합된 이 ‘장면’이야말로 본 작품이 말하려는 위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3부 서문」)
『잃어버린 환상』은 『고리오 영감』(1835)에서 시작된 『인간극』 총서의 한 축이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1847)으로 마무리되는 긴 여정의 본체에 해당한다. 『고리오 영감』의 여러 인물들이 그사이 저마다 사회적 입지를 굳히고 『잃어버린 환상』에 재등장하며, 『잃어버린 환상』에서 처음 시작된 뤼시앵의 일대기는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무리된다. 즉, 낱낱의 조각(개별 작품)을 이어 붙여 완성한 대규모 모자이크화(『인간극』)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작품이기에, 발자크의 『인간극』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잃어버린 환상』의 중요성은 특히 두드러진다.
■ 3부 「발명가의 고뇌」: 『인간극』의 축조 비결이 집약된 3부작의 정점
“오! 여보, 이 길을 포기해. 이미 다져진 길을 따라가. 빨리 부자가 되려 하지 말자. 행복하기 위 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아. 특히 이토록 큰 고통을 겪은 후에는!”
패잔병 뤼시앵은 빈털터리로 앙굴렘에 돌아온다. 그사이 뤼시앵의 여동생 에브와 결혼한 다비드 세샤르는 사랑하는 아내와 처남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주려면 자신이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큰 부를 이루기 위해 다비드가 선택한 길은 가장 험한 고난의 길, 즉 발명가의 길이다. 19세기 산업과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종이 수요의 폭증을 예측한 다비드는 값싼 원료로 질 좋은 종이를 제조하는 비법을 찾아내 특허를 받을 계획이다. 불굴의 의지와 성실함을 지닌 다비드에게 자연을 관찰하고 물질의 법칙을 연구하는 일은 다만 시간이 걸릴 뿐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집안에나 골칫덩이가 한 명쯤 있기 마련이고, 세샤르 부부에게 그 존재는 뤼시앵이다.
앙굴렘에서 인쇄소와 제지공장을 경영하는 쿠앵테 형제는 다비드가 몰두하는 발명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간파하고 이를 탈취할 계략을 세운다. 서민 출신으로 소송대리인이 되었으며 장차 법무부 장관을 꿈꾸는 야심가 프티 클로가 상류층 여성과의 결혼 주선 조건으로 쿠앵테 형제의 작전에 가담한다. 이들의 음모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뤼시앵의 위조 어음이다. 자본가 부르주아들의 이전투구, ‘합법적’ 절차로 악용되어 한 가정을 파괴하는 비정한 소송까지, 1부와 2부에서 전개되었던 서사들이 3부에서 기막힌 반전과 함께 마무리된다. 특히 『잃어버린 환상』 3부는 『인간극』 세계관에서 대표 악당인 보트랭(본명은 자크 콜랭)이 모든 희망을 잃고 생을 포기하려던 뤼시앵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악’과 ‘시’의 결합이라 할 이들의 만남은 이후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에서 펼쳐질 대서사의 서막이 된다. 이처럼 한 작품의 끝이 새로운 작품의 흥미진진한 출발점이 되는 서사 구조는 『인간극』 시리즈의 가장 개성 넘치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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