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넬라 라슨 Nella Larsen
1891년 미국 시카고에서 서인도제도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녀 교육에 밝았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피스크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복장 규정 위반으로 퇴학당했다. 그 후 코펜하겐대학교에서 청강생으로 학업을 이어 갔다. 1914년 간호학교에 진학했고 병원과 시 보건국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1920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할렘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8년 첫 소설 『유사』, 1929년 『패싱』을 출간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뛰어난 업적을 이룬 흑인들에게 수여하는 윌리엄 하몬 브론즈 어워드와 구겐하임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초기의 활발한 창작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혼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출판사와의 불화 등으로 세 번째 소설을 출판하지 못한 채 1964년 세상을 떠났다. 흑인 여성 최초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앨리스 워커 등이 1980년대 이후 다른 흑인 여성 작가를 재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넬라 라슨의 작품이 재평가되고 문학사 속 위치가 복원되었다.
역자 : 서숙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서숙 교수의 영미소설 특강 시리즈’(전 10권)가 있으며, 『돌아오는 길』, 『아, 순간들』, 『따뜻한 뿌리』 등의 산문집을 썼다. 옮긴 책으로 『런던 스케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등이 있다. 넬라 라슨의 『패싱』으로 제1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흰색을 향한 위험한 욕망, 패싱
“그래, 정말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난 무슨 일이든 하고 누구든지 상처 입히고 어떤 것도 던져 버릴 수 있어. 정말이야, 난 위험해.” (121쪽)
‘매혹적인’, ‘모서리에 서 있는’, ‘고양이 같은’……. 클레어를 설명하는 단어는 하나같이 위태롭다. 그녀는 가난한 고아라는 절망적인 신분에서 탈출하기 위해 밝은 피부색과 아름다운 외모를 무기로 백인 사업가와 결혼해 상류층에 편입한다. 하지만 ‘검둥이’에 대한 혐오와 무지로 가득 찬 인종차별주의자와의 결혼 생활은 단 한시도 백인 행세를 그만둘 수 없는 감옥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백인 전용 호텔의 루프탑 카페에서 클레어는 십이 년 만에 동창생 아이린을 만난다. 흑인이지만 클레어처럼 밝은 피부색을 가진 아이린은 흑인 남편과 결혼한 뒤 흑인들의 권리 향상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그녀 역시 종종 패싱을 한다. 백인 전용 호텔이나 헤어숍을 이용할 때, 그러니까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는 작고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는 건 위험해. 그랬다가 끝이 안 좋은 경우를 여러 번 봤어.” (98쪽)
이 두 여성의 이야기는 백인 상류층의 삶을 누리던 클레어가 아이린을 통해 할렘 사회를 엿보고 그 아슬아슬한 활기를 그리워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할렘으로 돌아오겠다는 클레어, 그리고 이를 만류하는 아이린 사이에 운명적 연대뿐 아니라 알 수 없는, 불길한 긴장이 공존한다.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넬라 라슨
1920년대 뉴욕 맨해튼의 빈곤 지역인 할렘에서 흑인들이 주도했던 문예부흥운동을 일컫는 ‘할렘 르네상스’는 신흑인 르네상스(New Negro Renaissance)라고도 불린다. 전후 경제 호황에 따른 소비 만능주의가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헤밍웨이의 ‘길 잃은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감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팽배하던 시기. 문명에 억눌렸던 원시에 대한 향수, 무의식과 본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는 흑인 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예찬으로 이어졌다.
한편 ‘패싱’은 백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흑인들이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하는 것을 뜻한다. 즉 흑백 인종 간의 경계에서 백인으로 넘어간다는 것인데, 이는 경제 호황에 따라 흑인 중산층이 증가하고 검은 피부, 가난한 흑인이라는 등식이 깨졌음에도 여전히 ‘흰색’이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우위를 점했음을 보여 주는 사회적 증후라고 볼 수 있다.
넬라 라슨의 『패싱』은 백인 피부를 지닌 두 흑인 여성 클레어와 아이린을 통해 할렘 르네상스 시기 신여성들의 ‘패싱’에 주목했다. 사회적 차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흰색이 주는 사회적 보호와 이익을 욕망하고 인종 정체성의 경계를 탐색하는 여성 인물들의 행보는 근 백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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